"혀가 마비될 만큼 '죽'만 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책만 읽고 '본죽'에 관심을 두면서 부인이 남편을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을 하였고, 같은 여자로서 참 부러웠는데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제 생각과는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참 잘 만났고, 이런 부인을 둔 남편은 행운일 거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최복이 사장님, 만나보니 참 대단해요.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이렇게 당차고 아름답게 사는데 그간 나는 뭐했는가. 한 가정에 여자의 힘이 정말 중요하구나' 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 교육생

 
ⓒ2006 김현자
느닷없는 방문에도 최대한 시간을 내주고,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는 최복이 사장에게 "흉 좀 보겠습니다"라고 하니 "많이 보셔도 됩니다"라며 서슴없이 웃는다.

그녀가 떠난 후 한참 동안 세 명의 교육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삼일 동안 죽 만드는 법부터 신선한 재료 구입까지 비법을 교육받고 며칠 후면 체인점의 당당한 주인이 될 사람들이었다. 교육 첫 날인 오늘 오전 내내 가르쳐 주는 대로 죽을 쒀 보았는데, 그야말로 '대충대충 적당히'도, '어림짐작'도 절대로 없다고 한다.

"땅콩 반쪽, 참기름 아주 쪼금이라도,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가고까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는 데요. 뿐만인가요. 국산을 쓰는지, 수입산을 쓰는지, 싼 것을 쓰는지 최상품을 쓰는지 까지 맛만으로도 알아낼 정도라네요.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귀신으로 통한다잖아요." -교육생

그녀는 천성적으로 태어나기를 우리와는 다른 혀의 감각인가 싶었다.

"음식을 무척 잘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아이들 먹을 것 해 먹이는 정도였습니다. 죽 장사를 한다고 하니까 친정어머니는 울면서까지 말렸습니다. 종가집 며느리인 어머니 음식 깊이가 오죽했겠어요. 어머니의 음식은, 전통적인 맛과 절도가 배어있는 음식이었지요. 이런 어머니이니 그야말로 '죽'은 시장에서 한번 맛있게 사먹는 음식이거나, 환자의 음식이었을 뿐이지요. 우리 속담에 "죽 쒀서 개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사업을 하다가 부도까지 갔었고, 그로 인해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음에도 죽 장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으니 울면서 말리실 법도 하지 않겠어요?

처음에 죽을 개발한다고 수도 없이 쑤면서 일년 가까이 식구들이 죽만 먹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처음 6, 7개월, 그 이후 4개월 동안 눈만 뜨면 죽을 쑤고, 하루에도 셀 수도 없을 만큼 맛을 보다 보니 나중에는 혀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혀가 맛은커녕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결국 혀의 감각을 찾았을 때는 땅콩 한쪽까지 소홀히 다루면 안 된다는 음식에 대한 철칙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우연히 '본죽'의 이야기를 담은 <꿈꾸는 죽 장수>란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본죽'은 나에게 넉넉한 자본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 있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배부른 프랜차이즈에 불과하였고, 이런 편견이 있는지라 매체를 통하여 소개되는 이들의 성공사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침 불황 속에 장사가 안 되어서 심란하던 중에 이 책을 우연히 접하였는데 책을 통하여 어정쩡한 나의 현재를 어떤 식으로든 가닥 잡아 보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들은 본죽을 얘기할 때 김철호를 말하지만, 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의 윗 부분이라면, 정작 그 배를 떠 있게 만드는 바다 속의 가라앉은 부분은 바로 당신이야" - 꿈꾸는 죽 장수에서

절망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절대적인 운명이 아니라,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 아닐까? 그 무엇보다도, 강한 그녀를 통하여 어정쩡한 제자리 걸음인 나의 가능성을 다지고 싶었다.

ⓒ2006 김현자
"…부도가 나고 하루 아침에 주저앉게 되었는데 남편은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면 되지만, 저는 눈만 뜨면 셀 수도 없이 빚 독촉 전화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망갈 수도 없었고 아플 수도 없었습니다. 시부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아파도 아프면 안 되는 며느리, 엄마였습니다. 속으로는 무너져도 꼭 해야 하는 도리나 역할이 있었고,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제 스스로도 아무런 의지가 없더라고요. 의지가 없다는 것마저도 의식이 없을 만큼…."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의 눈자위가 붉어지고 언뜻 눈물이 보였다. 그녀에게 살아오는 동안 제일 아픈 시절임에는 틀림없었다.

"저도 남들이 보기에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차례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만나고 싶었습니다.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일어서면서 자신에게는 더 모질어지고 남에게는 그만큼 더 관대해지고… 남의 불행 앞에 내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은 어쩔 수 없고, 누군가의 아픔 앞에 말 한 마디 보태 위로해주어야 하는데 그 말 한 마디로 섣불리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백 마디 말보다 만원 한 장이 더 절실하던 때가 제게도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나요?"(필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목 메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는 순간 캄캄했고 아득하였습니다. 살아갈 자신도 힘도 아득하였으며, 보이지 않는 어떤 막연한 대상에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질고 힘든 때를 이겨내고 보니 오히려 제게 고난은 축복이자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도나기 전에는 제 앞의 것에만 연연하고 제 것이 남에게 갈까봐 꼭 끌어 쥐고 전전긍긍했지요. 그런데 어려움에 처하고 보니 이런 제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비로소 보였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게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제가 가장 많이 클 수 있는 때였고, 저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2006 김현자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린다는 것…. 오늘날 본죽의 본점인 대학로 점의 사장은 최복이 그녀다. 본죽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며, 본죽의 모든 맛과 기술을 만들어 낸 그녀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로 점과 계동 점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는 대학로 노숙자 200명(5시)과 천안의 노숙자 200명(12시~1시)에게 밥을 제공한다고 한다. 또한 나아가 앞으로 더 많은 사회사업에 삶의 가치와 보람을 두고 싶다고 한다.

워낙 당차고 의지가 확고해 보여서, 아이들 교육에는 어떤가 싶어 물어보니 과외 한번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대학(이화여대 언론영상학과)에 합격했다면서 대견스럽다며 뿌듯해 한다. 물론 앞으로도 다른 아이들 역시 특별한 과외는 계획에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일단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해낼 수 있다고 믿고 맡겨 보고 싶다고. 큰 아이에게도 그랬더니 당당히 합격했다고 한다. 이들 가족에게는 사랑과 믿음이 참 견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바쁘지만 매일 메일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위기는 사람을 크고 깊어지게 한다. 옳다. 그런데 간혹 사람에게 상처 받았으니 사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물질적인 것을 모두 잃었으니 재산을 모으는 것에 삶을 걸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옳지 않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절망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보니 많이 잃어 본 만큼 물질에 애착이 없어진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해지고, 그 대신 자신에게는 더 모질어지는데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본죽 최복이, 내가 그녀를 만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본죽의 화려한 성공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강하고 아름다운 그녀가 보고 싶었고, 불황에 이렇게 해보아도, 저렇게 해보아도 적자만 되풀이 하면서 흔들리고 있는 내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인 최복이는 누구?

한솜/김현자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 같습니다. 자라기를 멈춘 나무처럼 그렇게 서있습니다. 삶의 지도를 생각합니다. 어디를 지나 또 어디로 갈 것인지, 삶이란 결국 무인도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지, 스친 것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아닐지…. 시간의 가벼움에 더는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늘 분주했지만, 고통 속을 헤매 일 땐 모두 저만치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서운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통은 자기완성으로 가는 필수조건이므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가슴이 무너져도 잠잠히 끝나지 않은 길을 갈 것입니다. 가슴 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기를 닦으며 수척해진 영혼을 달랩니다.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직 사랑해야할 일이 남은 까닭입니다."-고독한 날의 사색
※기사에 적합하도록 임의대로 붙여 쓰거나 문장 부호(. ,)를 덧붙였습니다.

본죽 김철호 사장의 부인으로 오늘의 본죽이 있기까지 일등공신이라는 것만으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접했다. 만남의 의미를 실어 시집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고 제의를 해왔는데 받고 보니 자신의 시집이었다. 앞서서 동시집 <미루나무 길>을 냈으며, 3월 중에 두 번째 시집 <사랑의 묘약>이 나올 예정이라고.

시집 <고독한 날의 사색>에는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최근 몇 년 간의 고통에서 오는 자기성찰이 느껴지는 글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한솜 2005.6. 값은 6000원)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94년에 문학평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성균관대 국어 국문학 석박사 학위 과정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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