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29 개봉 / 15세 이상 / 119분 / 드라마,시대극(사극) / 한국

감 독 : 이 준익

출 연 : 감 우성(장생), 정 진영(연산), 강 성연(장녹수), 이 준기(공길)



세 번의 공연, 그 절체절명의 순간들!

첫 번째, 먹고 살기 위해 한판 놀아라!

“왕을 가지고 노는거야!
개나 소나 입만열면 왕 얘긴데, 좀 노는게 뭐가 대수야?”

조선시대 연산조.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은 힘있는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과 그의 애첩인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공연은 대성공을 이루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



두 번째, 목숨을 부지하려면 한판 놀아라!

“왕이 보고 웃으면 희롱이 아니잖소! 우리가 왕을 웃겨 보이겠소!”
“왕께서 보고도 웃지 않으시면 네놈들의 목을 칠 것이다”


의금부에서 문초에 시달리던 장생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해 왕을 웃겨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왕 앞에서 공연을 시작하자 모든 광대들이 얼어붙는다. 장생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왕을 웃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왕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바로 그 때 얌전하기만 한 공길이 기지를 발휘해 특유의 앙칼진 연기를 선보이자 왕은 못 참겠다는 듯이 크게 웃어버린다. 이들의 공연에 흡족한 왕은 궁 내에 광대들의 거처, 희락원을 마련해 준다.



세 번째, 누군가의 목숨을 걸고 한판 놀아라!

“소극을 할 때마다 누가 작살이 나니 살 떨려서 하겠어 어디?”


궁에 들어온 광대들은 신바람이 나서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왕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중신들의 분위기가 싸늘함을 감지한 왕이 중신 중 한 명을 웃지 않는다는 이유로 탐관오리라는 명목으로 형벌을 내리고 연회장엔 긴장감이 감돈다.
연이은 연회에서 광대들은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이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을 연기하고, 연산은 같은 이유로 왕에게 사약을 받았던 생모 폐비 윤씨를 상기하며 진노하여 그 자리에서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베어 죽게 한다. 광대들이 공연을 할 때마다 궁이 피바다로 변하자, 흥을 잃은 장생은 궁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공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겠다고 한다. 그 사이 왕에 반발한 중신들은 광대를 쫓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왕의 관심을 광대에게 빼앗겼다는 질투심에 휩싸인 녹수 역시 은밀한 계략을 꾸민다.

*



<왕의 남자> 그 시각적 볼거리의 향연!

땀으로 빚은 신명 나는 놀이판!!!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부터 공중제비를 넘는 화려한 재주까지 선보이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온 광대들. 광대들의 재주에 시선을 빼앗기던 우리는 어느덧 그들이 풀어놓는 풍자와 해학에 빠져들게 된다. 조선최초의 궁중광대를 주인공으로 신명이 살아있는 유쾌한 광대놀이를 완벽하게 재연해낸 <왕의 남자>의 통쾌한 놀이판은 오랫동안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의 사랑을 받아온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전통의 힘을 보여준다. 재치 있는 말장난과 음담패설, 성대모사로 언어유희의 절정을 보여주는 광대놀이는 그들이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이자 삶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특히, 광대들이 궁중을 뒤흔들며 선보이는 궁중연회의 역동적인 놀이판은 세상을 희롱하는 동시에 광대들 자신을 아슬아슬한 운명으로 몰아넣는 희열과 파란의 명장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 같은 완벽한 광대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가장 많은 열정을 쏟아야 했던 이들은 바로 감우성과 이준기를 비롯한 광대 역할을 맡은 배우들. 이들은 2개월여 동안 '안성남사당 바우덕이'에게 직접 광대 놀이판에 필요한 기예와 신명을 익혔다. 또한 연기력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배우들이지만,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광대들을 연기하는 데 있어 광대 놀이판에서 신명을 흉내만 내서는 작품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배우들 스스로가 광대 훈련에 매진했다.

특히 세계줄타기대회 최고기록 보유자인 명인 권원태 선생에게 직접 사사 받은 감우성은 실제 촬영에서 5미터 상공에 매달린 외줄 위에서 능숙하게 걷는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이며 '장생'으로 거듭났다. 이는 감우성이 자택 마당 한 켠에 직접 외줄을 설치하고 개인시간에도 꾸준한 연습을 통해 노력한 결과였다.

<왕의 남자>가 광대들의 놀이판만을 담은 작품이 아님에도 '광대'라는 캐릭터 설정을 더욱 리얼하게 전하기 위해 노력한 배우들의 열정은 보다 작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시대 궁의 완벽재현! 세트

민가는 물론 궁 내부, 왕이 정사를 논하던 수조지조(受朝之所)와 왕의 처소 내부까지 다양한 장소를 담아내야 했던 <왕의 남자>는 부안영상테마파크와의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제작방식을 구현할 수 있었다. 궁중 세트와 내부를 제작했을 때 소요되는 80억원 규모의 순제작비를 45억원 규모로 절감하게 해 준 것. 190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부안영상테마파크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리얼리티를 살린 시대극의 촬영지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현재까지 궁을 제대로 재현한 세트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시대물은 궁의 외경만 제작해 외부만 촬영하고, 실제 궁 안은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해야 했다. 그러나 부안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한 <왕의 남자>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으로 궁궐 외부의 전경과 화려한 내부가 하나의 화면에 담기는 스펙터클하고 밀도 있는 영상을 담아낸다.



하지만 <왕의 남자> 제작진은 기존의 세트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보다 풍성한 화면을 만들고자 오픈세트를 제작했다. 광대들이 궁중에서 왕과 중신들 앞에서 신명난 놀이판을 벌이는 무대이자, 정치적인 음모와 암투가 벌어지는 궁중연회장면을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공간으로 만들기에는 영화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던 것. 또한 연회가 거듭될 수록 더해가는 광대들의 신명과 이들이 휩싸이는 정치적 음모를 표현하고자 광대놀이의 컨셉에 맞춰 매 공연마다 연회장 전체를 새롭게 세팅했다.



한편, 부안영상테마파크는 <왕의 남자>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서울에서 4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부안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던 배우와 스탭들은 아침이면 감우성이 발굴한 산책코스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등 <왕의 남자> 제작진이 여느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돈독한 친목을 다지게 해준 것. 또한 정진영은 숙소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순례해 왕이 사복을 입고 백성들을 순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처럼 부안영상테마파크와의 전략적인 제휴는 <왕의 남자>가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한 단계 발돋움하게 하는 초석이 되었고, 의상과 미술, 소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절감한 제작비를 재투자한 <왕의 남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멋지게 입는다! 의상

<왕의 남자>의 광대들은 민가에서는 소박한 전통미를 살린 자연주의 의상을, 궁중에서는 단아한 화려함이 살아있는 궁중의상을 선보이며 그 신명을 더해간다. 특히 궁중연회를 배경으로 하는 광대놀이에서 사용될 '종이의상'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새로운 시도로 주목 받았다. '종이의상'은 중국 경극 공연 때 실제 사용되던 옷으로 영화속에서 광대들이 경극 공연을 할 때 한국적으로 변형시켜 입은 옷이다.



천을 안감으로 삼고, 한지로 겉감을 대는 것을 기본으로 한 종이의상은 <혈의 누>에서 한차례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겉감이 되는 종이 마다 전체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독특한 한지의 질감은 물론, 그림이 걷고 있는 듯한 독특한 미를 발산한다. 배우들은 단 한 벌뿐인 귀한 종이의상을 입은 덕분에 옷이 상할까 극도로 신경을 쓰며 연기에 임해야 했으며 스탭들은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종이의상이 땀에 젖을까 배우 곁에서 부채질을 해대며 의상 보호작전에 나서는 등 종이의상은 배우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종이의상은 제작에만 한 벌당 3명이 꼬박 한 달 밤낮을 들여 완성해낸 땀과 열정의 산물로 가격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



한편 궁중의 주인인 연산과 녹수는 비단 원단 전체에 화려한 자수를 입혀 화려하면서도 권위감을 드러내는 의상으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연산의 의상은 그간의 왕을 대표하는 색감인 적색보다 청색을 기본으로 한 의상으로 연산이 간직한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고, 희대의 요부 녹수는 팔색조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각의 색감이 어우러지도록 저채도 저명도로 색감을 조정하는 등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의 조화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또한 제작진은 각각의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주연배우들은 물론 궁인에서 저잣거리의 군중 의상까지 손수 제작하는데 장장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6백여벌의 의상을 완성해냈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움으로 작품을 풍성하게 만든 <왕의 남자> 의상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영상미를 선보일 것이다.




숨결이 살아있다! 소품

광대들이 놀이판에서 사용하는 '버나'에서 궁중에서 왕이 타고 다니는 가마 '홍연'까지 <왕의 남자>는 광대들의 일상과 궁중의 화려한 모습을 개개의 소품으로 화려하게 형상화했다. 광대들의 얼굴이 되어주는 탈, 자신을 대변하는 손인형은 또 하나의 신명을 실어주고 손자수로 수놓은 방석과 침구, 부채 하나하나가 궁중의 화려함을 더한다.

특히 녹수의 처소에는 소 뼈에 각양각색의 문양을 넣어 만든 가구 '화각장'을 배치해 강렬함을 발산하는 요부 캐릭터를 강조했다. 한 점에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이들 소품을 보호하기 위해 제작진은 별도의 자물쇠를 세트에 채워둬야 했고, 별도 소품 보험으로 특별관리하기도 했다.



또한, <왕의 남자> 제작진은 주 촬영지인 부안영상테마파크 내에 200여평의 별도 소품 창고를 제작해 궁중에 필요한 모든 소품을 재현해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과거의 물건들이지만 여느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는 <왕의 남자>의 소품들. <왕의 남자>는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10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소품이 돋보이는 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는 2004년 5월, 전체 미술 컨셉회의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왕의 남자> 크랭크인까지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한 결과다.

관객들은 <왕의 남자>를 만나면서 배우들의 명연기와 신명 나는 놀이판은 물론 디테일이 살아있는 소품을 찾아보는 재미까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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