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유통기한을 묻지 마세요!"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에로스와 타나토스
ⓒ2006 살림
죽음의 공포와 에로스를 멍에처럼 짊어진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 뭉크는 현대인의 불안과 갈등, 애정, 공포 등의 감정을 왜곡된 선과 격렬한 색깔로 표현한 새로운 미술운동, 즉 표현주의의 선구자다. 뭉크의 이런 작품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전시회 도중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책장을 펼치면 자연스레 주인공 뭉크를 만나게 된다. 책 속에서 만나는 뭉크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불안하고 황홀해야 할 사랑 언저리에 어두운 그 무엇이 불안하게 도사리고 있다. 사랑에 빠진 소녀는 죽음과 입 맞추고(죽음과 소녀), 한 여자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 할 만큼 죽음에 스며들고 있다(입맞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다. 무엇이 뭉크로 하여금 사랑과 죽음을 혼동하게 하는 걸까?

뭉크는 81세라는 짧지 않은 생을 사는 동안,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사랑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작품을 그렸다.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었고, 병약한 자신을 보살피던 2살 아래 누이마저 같은 병으로 잃었다. 누이는 소녀의 나이인 15세 때 세상을 떠났다. 뭉크에게 삶은 곧 죽음 그 자체였다. '죽음과 소녀' '입맞춤'이란 그림에는 '삶=죽음'이란 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정된 연애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필 뭉크의 첫 사랑은 강한 자유연애주의자였다. 연상의 유부녀 하이베르크는 풋사랑 뭉크를 철저히 농락하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첫사랑에 실패한 뭉크는 실신하였다가 정신을 차리고 '남자의 생명을 짓이기는 메두사'라고 여자를 정의하고야 만다.

이런 뭉크에게 다시 찾아든 사랑, '다그니 유을'은 유년 시절의 친구였다. 뭉크는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기 시작하고 들뜨고 설레었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하려는 즈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두 번째 여인마저 빼앗기고 만다.

다그니 유을을 표현한 '마돈나'는 뭉크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데, 사악한 메두사로 표현된 사랑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인다. 쳐다보지 말아야 할 수많은 뱀이 달린 메두사의 머리였다. 실연의 좌절은 계속됐다. 이후 관능적이고 매력 있는 한 여인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뭉크에게 이제 사랑은 쳐다보는 순간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팜므파탈', 메두사에 불과했다.

뭉크에게 삶과 죽음은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전혀 없는, 같은 존재다. 죽는 날까지 사랑과 죽음의 멍에로 불운하였던 그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죽음을 경험했다. 진정한 탄생, 즉 '죽음'이라는 존재가 나를 기다린다"고 고백했다. 비단 뭉크뿐이랴. 책 속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사랑은 죽음과 애증으로 치명적이며 끈끈하다.

사랑의 유형 '남녀간 사랑' '자기애' '팜므파탈' '동성애'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삶의 충동인 에로스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Thanatos)에 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하는 에로토스는 어떤 모습일까? 사랑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저자는 죽음을 각오한 사랑, 즉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랑을 4가지로 제시하는데, '남녀간의 사랑'과 '자기애', '팜므파탈'과 '동성애'다. 뭉크의 이야기는 세 번째 주제 '팜므파탈' 편에 등장한다.

솔깃했던 주제는 마지막 장인 '동성애'였다. 저자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카라바조('이단아'로 불렸던 초기 바로크 화가) 등 몇몇 유명한 화가들의 동성애를 들려주는데 유명한 화가들 이야기라 더 눈길이 갔다. 요즘 동성애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련 영화가 심심찮게 제작되고, 매스미디어 등에서 제법 활발하게 이야기되지만, 편견은 여전한 듯 보인다.

모든 주제가 비극적인 느낌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유형인 '남녀간의 사랑'은 '사랑의 영원'과 '사랑의 완성'을 이야기한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연애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늘 관여하고 있지만 '사랑과 죽음'이란 주제는 어려웠다. 특히 그림을 보는데 불쑥 등장하는 시(詩)편은, 가슴에 느닷없이 날아드는 사랑의 무법자처럼 대책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놓지 않고 읽었다. 우리들이 일생 동안 본능처럼 지녀야 할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사랑의 유통기한이 짧게는 3개월, 길어 보았자 1년 6개월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이 흔하고 쉽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내 사랑의 유통기한을 묻지 마세요!"

죽음을 각오한 사랑을 한 책 속 주인공들이라면 이 말에 적극 동조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