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을 알 수 없는 물건을 물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양이가 다른 집 신발이나 헝겊 조각 같은 것을 물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고양이가 사람의 손바닥 이하가 잘린, 그리고 손가락 두 개가 붙어 있는 손을 물어온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일단 으스스 하세요?
‘20세기의 애드거 앨런 포’라고 평가 받고 있는 미국 퍼트리샤 하이스미스(Highs mith·1921~1995)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민음사)를 권해 드립니다.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요, 최근 번역됐습니다. 원래 1981년 첫판은 책 제목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검은 집’(The Black House)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어 번역판을 내면서 두번 째로 실린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Not One of Us)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의 첫 단편 ‘고양이가 물어 온 것’을 보면, 단어 만드는 게임인 스크래블을 하던 등장인물들이 고양이가 물어온 사람 손목 때문에 경악하는 대목이 시작입니다. 하이스미스는 우리 무의식 속에 억눌린 상태로 존재하는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남선녀인 것처럼, 고매한 인격과 교양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주변 인간들은 얼마나 추악하고 독선적인 면을 감추고 있는가를 파헤치는 작품들입니다.
아, 하이스미스의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장편 ‘낯선 승객’(1950) 또한 교환 살인이라는 색다른 소재와 낯선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차갑고 우울하고 거무칙칙하게 묘사하면서, 추리적으로 인생의 비밀을 파고 들어가는 수법은 어김없이 독자를 매료시키고 맙니다. 하이스미스가 무쟈게 재미있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영화 ‘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유명한
앤서니 밍겔라 감독,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 같은 영화감독이 앞다투어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영화로 탐을 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영화가 ‘리플리’, ‘미국인 친구’, ‘
올빼미의 울음’ 등입니다.
이 책의 끝에 실린 ‘검은 집’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동네에 있는 폐가 한 채가 배경입니다. 한 무리의 중년층 사내들이 술집에 모여 ‘검은 집’이라고 불리는 그 폐가에 대해 허풍을 떱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티모시라는 한 청년이 혼자서 그 폐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폐가가 사실은 검은 집이 아니라 갈색이며, 오랜 세월 방치된
빈집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검은 집’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졌던 카리스마와 신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용감하게 증명한 것이지요. 그런데 티모시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검은 집의 카리스마를 모독한 죄값을 받았던 것일까요?
하이스미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쥐가 오르가슴을 느끼듯 시도 때도 없이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요정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면서 늘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것이지요.
설 연휴, 모두다 어딘가로 떠나고 없는 빈집을 홀로 지키고 계세요? 그렇다면 방마다 불을 환하게 켜놓고, 안방에 홀로 앉아서 이 책을 펴 들고 한편씩 그 으스스함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단편들을 읽고 설날 고향에 가시면 얼나들 앉혀 놓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