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과 금기서 건진 인간희망 ‘그랜드 피날레’

도발과 저항의 작가 무라카미 류의 시선은 늘 ‘건조’ 하다. 복잡한 실타래처럼 엮인 관계들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늘 `상실감`과 `외로움`을 향해 있다.

<그랜드 피날레>(대표배텔스만. 2006)의 작가 아베 가즈시게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무라카미 류에 가깝다. 금기시 되는 소재에 저항해 온 무라카미 류처럼 아베 가즈시게는 `롤리타 취향을 갖고 외동딸에게 집착하는 이혼남의 이야기`라는 도발적인 소재로 아쿠타가와 을 수상했다.

수상작 ‘그랜드 피날레’ 외에도 단편 ‘마구간 아가씨’ ‘신주쿠 요도바시 카메라’ ‘20세기’ 등을 수록하고 있지만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그랜드 피날레’다.

15년간 도쿄의 교육영화 제작사에서 일했던 주인공은 현재 무직이다. ‘미스터리’ 구조를 갖춘 작품은 초입부터 주인공의 이혼사유를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어린 딸을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심정은 감히 ‘롤리타 취향’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만큼 ‘애절’ 한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해서 백화점 어린이 의류 매장을 손님으로서 방문 할 권리까지 상실한 건 아니다. 치하루... 딸기 우유와 마이멜로디(일본 만화영화의 주인공)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 나의 단 하나뿐인 딸.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꼭 아빠의 침으로 소독해야 한다고 졸라대는 나의 사랑하는 딸 치하루”(본문 중)

‘그랜드 피날레’, 즉 ‘위대한 종말’을 꿈꾸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세상을 비난하거나 조롱하기 보다는 그 안에 ‘풍덩’ 빠져든다.

특정한 직업 없이 때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프리터’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유행하는 패션, 음악, 영화, TV, 인터넷을 등장시키는 아베 가즈시게는 이런 대중문화의 혜택들이 인간을 점점 건조하게 만들고 이기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마치 일체의 감정이 ‘제거’ 된 듯한 거리두기는 무라카미 류를 떠오르게 만든다. 자살을 꿈꾸고 있는 초등학생 두 명에게 연극 지도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주인공의 삶에서 굳이 작가는 ‘희망’을 강요하지않는다. 큰 다툼 없이 평범하게 지내왔던 아내와 ‘우발적’인 다툼으로 이혼까지 하게 된 것처럼 삶이란, 그렇게 생각지 못한 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베 가즈시게는 신예는 아니다. 1994년 <아메리카의 밤>으로 주목받는 데뷔전을 마쳤지만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몇 차례 상의 후보작품으로 선정 되다 ‘그랜드 피날레’로 수상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문학이 마침내 아베 가즈시게를 따라 잡았다`는 평단의 호평은 단비를 맛보기 위해 지리한 가뭄의 시간을 견뎌온 작가가 마땅히 누려야할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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