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려면 듣기부터 제대로 배워라
 
[오마이뉴스 양승요 기자] "어디 말 잘하는 비법 좀 없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거의 매년 화술 관련 도서가 올라온다. 사람들의 말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탓이다. 2006년 역시 벽두부터 화술 관련 책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좀 엉뚱한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말 잘하고 싶은 분들에게 '경청'에 대한 책 두 권을 소개하고 싶다. 똑똑한 한국인이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잘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것=내 말 못하는 것?

한국인은 잘 듣지 않는다. 대화가 시험이라면 경청은 문제를 읽는 것인데, 우리는 '답' 생각하느라 건성으로 읽거나 심지어 읽지도 않는 셈이다. 틀린 답이 속출하고, 비효율적인 회의나 답답한 말싸움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듣는 것=내 말 못하고 기다리는 것' '남의 말을 들어주면 손해' '목소리 낮췄다간 모두 잃는다'는 피해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즉 우리는 아직도 '듣는 것=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화가 됐다지만, 주먹이 말로 바뀌었을 뿐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독재 시절의 문화적 관성은 여전히 우리들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0~20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이제는 더 이상 말싸움의 논리로 대화에 임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손석희씨의 사례에서도 보듯, 사회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논리적인 화법이 인정받는 추세가 뚜렷해진 것이다(물론 목소리 높여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2006 21세기북스
<대화의 심리학>, 경청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책

주위 사람들이 화술에 대한 책을 물어올 때마다 필자는 제일 먼저 <대화의 심리학>을 추천한다. 화술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대부분 '말싸움'의 논리에 빠져 있는 반면, 이 책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말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를 분석해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대로 듣지 않아서 그렇다.

이 책은 우리의 대화 속에 지뢰처럼 숨겨진 '전제'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가 잘 모르는 내용, 서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맥락을 무의식 중에 전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의외로 상대를 잘 모른다. 반면 습관적으로 추측하고, 단정하고, 감정을 폭발시킨다. 기다리고, 경청하고, 생각해서 숨은 지뢰를 제거하며 대화를 풀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의 감정과 의도에 대한 성급한 단정, 방어본능, 내 기준에 맞아야 진리라는 맹목성 등이 우리가 대화의 도로 위에 파묻는 '지뢰'이다. 이들의 실상과 위력만 알아도 대화가 변할 것이다.

까다로운 대화, 역발상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2006 이아소
두 번째로 <경청의 힘>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인간의 듣기 행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집필했다. <대화의 심리학>을 읽으며 좀 부족하다 싶었던 '경청의 기술'을 비교적 알차게 다뤘다고 판단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간의 4가지 듣기 성향에 대한 분석이다.

<경청의 힘>은 인간은 대화하는 사람, 대화의 시간 여유, 대화의 내용성, 대화의 실용성 등 네 가지 가운데 한두 가지 요소에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한다. 이 관심사에 따라 듣기 성향이 갈리고, 대화의 스타일과 장단점도 뚜렷하게 구별된다(책 속의 체크리스트로 검사해 본 결과, 필자는 극단적인 시간 중심 성향이었다. 걸핏하면 시계를 보고, 느긋한 대화는 절대 못하는 그런 스타일).

필자의 판단으로는 관계 집착, 시간 중심, 행동 지향, 내용 선호 등 이 책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듣기 성향 테스트는 변별력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자신의 대화 실력 향상은 물론 상대방의 듣기 성향 파악을 통해 보다 유리하게 대화를 풀어가는 데도 실용적으로 보탬이 될 것 같다.

경청이 설득과 화술의 달인을 만든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1) 우리말 듣는 법도 배워? (2) 안 그래도 귀가 아프게 들어! (3) 남의 말 듣다가 내 말은 언제 해?'라고. 하지만 말을 잘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이어진 안 듣는 문화에 어느덧 우리 자신의 '청력'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경청은 문제를 잘 읽고 심사숙고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분명 잘 듣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을 평가해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대화나 협상, 설득 역시 '말귀 밝은' 사람이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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