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출판시장 바라본 ‘키워드로 읽는 책’


다가오는 설 연휴를 30대 여성 95%가 두려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이 11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절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923명(73.7%)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30대 이상에서는 95.4%인 1922명이 명절증후군 증상을 호소했다. 미혼자들이 많은 24세이하 응답자 중에도 52%인 388명이 여파가 있다고 밝혔다.

한때 미혼여성들에게 결혼기피 대상 1위로도 꼽혔던 ‘장남’ 가족이라면 설연휴마다 손님대접과 명절증후군에 더명절을 두려워 할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장남’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과연 어디쯤일까.

2005년 출판시장을 전면 분석한 <키워드로 읽는 책>(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5)에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명진. 2004)를 분석하며 ‘불안한’ 한국사회의 남성상을 조명했다.

책에 따르면 한소장은 <대한민국...>을 보자마자 숨이 막혔다고 한다. 순간 장남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5남1녀의 장남, 장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이 물밀 듯 밀려왔다. 대학 1학년, 설을 지내러 고향에 들렸을 때마다 작은 할머니는 새벽 4시반에 그를 깨웠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세배는 9시가 되서야 겨우 끝났고 세배하는 집집마다 계속 떡국을 먹어야 했다. 9시가 넘어 오후까지 이어지는 제사순례의 절이 지겨워 2시에 줄행랑을 치곤했는데 그때 마다 느낀 것은 “사실 제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족보상 내 위에 올라 있을 뿐 나와는 어떤 추억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불만과 의구심 뿐이었다.

무수한 손님을 접대하느라 힘들어하는 집안 여자들과 많은 제사들을 보며 장남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아내와 다투는 대부분의 이유가 ‘집안일’ 때문이었고 아들을 기대하는 집안의 바람과 달리 딸만 둘 두었던 그에게 장남은 억압과 사슬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베스트셀러의 정의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 책은 은행지점장, 자영업자, 개업의 등 평상시에는 책을 잘 읽지 않던 사람들까지 손을 내밀게 했고 눈물 흘리게 했다. 전교조 출신의 한 교사는 대전에서 서울로 오는 동안 이 책을 읽으며 아버님, 어머님, 동생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에 한참을 울었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보기는 처음이라는 고백을 했다고도 한다.

저자 윤영무의 장남 인생은 자신의 인생에 비하면 약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버젓이 두 아들을 둔것만으로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한국 사회의 코드를 정확하게 건드렸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한겨레에 쓴 한 소장의 독후칼럼은 포털 사이트에 ‘대한민국 서글픈 이름, 장남’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본 기사 1위에 랭크됐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이런 현상을 보며 그는 장남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여성억압에서 남성억압으로 완전히 코드가 옮겨가고 있다. 특히 책 시장에서는 1970년대 이래 여성억압이 ‘장사’가 되는 중요한 코드였지만 한물간 것으로 인식된다.”(본문 중)

출판시장의 변화를 시대별 대표작품을 예로 들어 구분하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들을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 출판시장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들여다본다.

책은 일하는 여성을 나타내는 조어(造語) ‘에그제리나’를 소개한다. 여성 중 상급 관리직 종사자가 많은 것을 고려해 ‘executive(관리직, 중역)’의 ‘exe`와 발레리나의 ’리나‘를 묶어 만든 이 단어는 상급관리자의 경직된 느낌을 여성의 향기가 나는 말로 풀어준 매력적인 단어로 일본 여성지 ‘MISS` 편집장 소고 히로미가 만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바뀐 여성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변화를 반영하며 많은 주목을 받은 ’에그제리나‘ 에서도 달라진 여성상을 엿볼 수 있다.

한 소장은 펑펑 눈물 흘리는 남성들을 받아들이는 변화된 사회분위기에 주목한다. ‘장남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슬로건을 내건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10만부를 넘어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유를 “앞뒤를 충분히 재고 나서 자기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그냥 주저앉아 마구 울어댈 만큼 이 시대의 남자들이 ‘절박한’ 처지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남자의 스트레스는 여자의 세배나 된다지 않는가” 라고 분석한다. 출판전문가로서, 수십년간 한국사회에서 장남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남성으로서 갖는 남다른 견해가 돋보인다.

책이 말하는 출판계 30개 키워드는 장남과 여성을 비롯 ▲임파워먼트 ▲심리학 ▲남성 ▲중년 ▲노년 ▲팩션 ▲18세기 ▲미시.생활사 ▲고전 ▲일본소설 ▲리메이크 출판 ▲영상과 책 ▲요다형 책 ▲블루오션 ▲10년 후 ▲땅테크 ▲평전 ▲이순신 ▲코엘료 ▲요리 ▲여행 ▲사진 ▲육아 ▲지도 ▲자기계발서 ▲공부 ▲한자 ▲토익 등이다

이를 통해 출판시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점점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의 키워드(테마)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분야의 지식을 통합해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기호 소장은 사석에서도 출판시장을 인문, 아동, 청소년 등 영역중심이 아닌 키워드 중심으로 볼 것을 권유해 온지 오래라고 한다. 책의 컨셉이 선명해지고, 키워드를 정해 타깃 독자를 배려한 구성으로 책을 만들면 훨씬 더 시장성이 큰 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 한 인터넷 서점담당자로부터 독자들이 키워드 검색을 통해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80퍼센트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제경영서 ‘블루오션 전략’의 ‘블루오션’이 2005년 경제-경영 분야를 뛰어넘어 전 사회적인 주목을 받은 사실은 좋은 예다.

책은 출판시장을 뛰어넘어 사회전반에서 확장돼가는 이런 `키워드` 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기획회의>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어냈으며 출판시장을 읽는 주요맥락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출판 관계자와 애서가들이 탐낼 만한 책이다. 2006년 출판시장을 예견해 볼 수 있는 안목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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