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거부한 호랑이는 어떻게 됐을까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옛날 옛날 호랑이와 곰이 살았다.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인간이 되는 것. 호랑이와 곰은 천지신령께 열심히 빌었다. 제발 인간이 되게 해주세요. 천지신령은 답을 내렸다.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100일을 버틴다면 사람이 되게 해주마. 곰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이 시험을 이겨내어 인간이 되어 단군을 낳았고 후세에 두고두고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참을성 없고 경솔한 호랑이는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 나가고 말았고 이후 다시는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르지 못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렇게 잊혀졌던 호랑이다.

 
▲ 제1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수상한 식모들>
ⓒ2006 문학동네
순종과 인내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호랑이는 비록 사람이 되어 건국 설화의 중요한 인물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후 사람에게 은근히 스며들어 호랑아낙으로 이어졌다. 이 호랑아낙들은 호랑이의 기를 받아 역사적 순간마다 물밑에서 중요한 작업을 해내며 근근히 맥을 이어갔다.

...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전날, 호랑아낙 여럿이 모두 한양으로 몰려와 궁궐 앞에서 통곡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군졸들이 창을 디밀어 호랑아낙들을 몰아내고 궁녀들이 그 자리에 소금을 한 바가지 뿌렸다.

비단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냄새만 기막히게 맡는 건 아니었다. 한일 합방이 이뤄지기 며칠 전부터 정신이 반쯤 나간 호랑아낙 몇몇은 가슴을 그러쥐고 경복궁 구위를 기어다니며 통곡하였다...


호랑아낙, 그리고 그 계보를 잇는 '수상한 식모들'은 역사의 저변에서 남몰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명성왕후 시해사건 때는 물론이고 연산군 때,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때, 광주민주화 운동 때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후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무당이나 점쟁이 비슷한 존재, 현대에 들어서는 남의 집 가사일을 해주는 사소한 존재로만 여겨졌던 그들이 사실상 조직을 만들어 음모를 꾸미고 '복수'를 시행해 왔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신선하지 않은가.

그러나 줄거리만 들었을 때 상당히 신선하고 놀라운 소설 <수상한 식모들>(박진규, 제1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의 문을 젖히고 본격적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움과 기대는 의구심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결국 지루함과 실망으로 이어진다.

건국설화 속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았지만 이후 누구에게도 회자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 호랑이와 부르주아 가정에서 대부분의 가사일을 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와 밀접한 연관을 맺지만 존재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식모'라는 존재를 연결지어 소설의 소재로 삼은 건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엉성한 구성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로 시종일관 이어져 독자들은 책을 덮으면서도 도대체 작가가 얘기하려 했던 바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뚱뚱한 몸집을 가진 경호는 어느 날 집에서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가 담긴 메모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추적해 가던 도중 친엄마도 이 식모군단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어느 날 경호는 그의 여자친구인 선재의 도움으로 마지막 '수상한 식모'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의 귀에 쥐를 집어넣었던 바로 그 식모라는 것을 알고 경악하지만 결국엔 그녀에게 설득당해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 서술자로서 대필을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상한 식모들의 기나긴 역사와 그들의 숨겨진 비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이 기발한 소재의 소설에서는 비만, 역사, 가진 자와 빈자, 혁명, 소외계급에 대한 다양한 암시와 묘사가 나온다. 가족관계와 성에 대한 고찰도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종류의 소재는 그저 소재로 머물 뿐이다. 이 소재가 소설화되려면 일단 등장인물의 성격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재가 소재 자체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에 반영되어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매끄러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어느 한 인물도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해 있고, 호랑이와 식모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이 모호하고 인위성이 훤히 보이는 등장인물들 사이로 그저 가능성을 품은 채 둥둥 떠다닐 뿐이다.

거창하게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도(명성황후 시해사건,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등) 소재 자체만 화려할 뿐, 이야기 밖에서 겉도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그런 역사적 사건들과 호랑아낙, 수상한 식모들이 어떻게 개연성 있는 인과관계를 맺었다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이런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이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를 더욱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문학동네는 이 소설에 왜 소설상을 주었을까.

...수상한 식모들은 대부분이 완전범죄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보복의 모습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으니 꼬리를 잡기 힘들다.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건 개인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가정의 분위기를 손에 움켜쥐었다. 식사 때 올리는 음식의 맛, 주인집 식구들과의 애매한 친분관계, 실내에 감도는 맡을 듯 맡아지지 않는 수상한 공기의 촉감.

수상한 식모의 계략하에 이 가정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이 닥쳐오기 전까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식모를 내쫓는 사람은 없다. 소파의 장식보를 바꾸고 모피를 한 벌 사고 도배를 하고 애완동물을 바꾸지만, 그들은 문제가 식모에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심장에 벌집처럼 구멍이 빵빵 뚫린 것 같은 알코올릭 상태에 이르러서야 현실을 바라보는 판단력이 생긴다. 집주인은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사물이 두 겹으로 겹쳐 보일 때에야 비로소 수상한 식모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 또한 얼마나 예리한 통찰력인가. 식모가 하는 일은 단순한 일 같고 식모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상을 준 것은 이 작가의 이러한 통찰력, 그리고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호랑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잡아낼 줄 아는 상상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통찰력과 상상력을 보고 그 가능성에 상을 준 것이리라.

그러나 문학상이 과연 가능성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가능성은 지녔지만 매끄러운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 작품들은 사실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작품의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이 작품의 참신함과 기발함을 장점으로 꼽았으면서도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 수상자는 먼저 작품을 읽었던 이들의 염려가 한낱 기우였음을 앞으로의 행보에서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 신경숙

... 부디 더 밀도 있는 작품으로 이 우려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길. - 류보선


찬사 일색인 심사평 말미에 붙인 짧은 우려의 문장은 '주례사 비평'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심사위원들의 최소한의 자기방어막이란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제를 보고 책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문학상'이란 아직도 절대적인 가치에 준하는 무엇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용이 가볍다거나 기존의 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작품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가벼워도 얼마든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기존의 문법과 달라도 충분히 존재미학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가벼운 것과 산만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참신한 소재를 가졌다고 해서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 부족이 가려지는 것도 아니다. 문학이 사라져간다거나 종이로 된 문자의 소멸을 이야기하기 앞서 문학계 스스로 문학상 선정에 엄정하고 성의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문학상'의 공정성과 권위에 대해 씁쓸하게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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