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귀한 질병, `탐서광증` 걸린 사람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 규모가 2만3600여권에 시가 2천만달러(원화 약 200억원)에 이른다면 얘기가 다르다.

1980년대 스티븐 캐리 블룸버그(58)는 20년동안 워싱턴DC, 미국내 45개 주를 포함 캐나다의 2개주의 도서관 268곳을 순회하며 훔친 희귀본으로 개인소장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블룸버그 컬렉션`.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 따르면 이 기상천외의 `장물` 실어나르기 위해 운송회사에서 19톤-12미터짜리 견인트레일러를 빌렸고 연이은 길이가 1000미터가 넘는 철제책장에 보관해야 했다고.

그는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물건이 얼마나 엄청난 차마 짐작하지 못했다"며 "포장용 종이 상자가 872개였고 그걸 다 끄집어내는 데만 모두 17명이 동원돼 꼬박 이틀 작업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책은 일종의 지식보관소이며 그 안의 지식과 예술은 당연히 누군가와 공유돼야 한다"

처음 책을 훔칠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블룸버그는 80권이 넘어서자 나름대로 책도둑으로서의 철학을 마련하면서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넉넉한 품안에 일부러 만든 주머니 속에 책을 숨겨나오던 블룸버그는 엘리베이터와 트럭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고 훔친 신분증으로 대학 조교수를 사칭하면서 `북 컬렉션`의 꿈을 이루어갔다. 하지만 그의 20년 절도행각은 FBI의 수사망에 걸렸고 결국 `블룸버그 컬렉션`은 해체됐다.

감옥에 들어간 블룸버그는 함께 수감된 마피아 두목이 "왜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닌 책을 훔쳤느냐"고 묻자 "나는 팔기 위해 책을 손에 넣은 게 결코 아니라 다만 책을 갖고 있을 생각이었다"고 대답했다. 마피아 두목은 그를 진짜 `미친 놈`으로 여겼다는 후문.

20세기 최고의 책도둑이라 불리는 블룸버그의 행각은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2006)에 자세히 담겨 있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탐서광증(耽書狂症)에 일찌감치 푹 젖어버린 사람`이라고 한 표현을 빌려 `책에 미친 젊잖은 사람`들의 역사적 흔적을 더듬는다.

5년간에 걸친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1부에서는 고대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도서 수집의 역사를, 2부에서는 1980년대의 도서수집 현상을 주요 인물별로 소개하며, 3부에서는 방대한 관련 인명 사전을 실었다.

저자인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는 책 서문을 통해 "시대를 통틀어 다양하게 나타났던 이례적이고 열성적인 수집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역사, 문학, 문화 전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보전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 사로잡힌 영혼들의 열정과 헌신이야말로 이야기의 주제"라고 덧붙였다.

1100여쪽이 넘는 이 역작은 출판평론가 표정훈, 소설가 김연수, 출판기획자이자 번역가인 박중서 등 `책에 미친 세 사람`이 3년만에 번역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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