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연은 어떤 존재일까. 서양 중심의 사유가 시작된 이래, 특히 근대 이후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각종 기술에 의해 인간의 이기는 감춰진 채 자연을 사람에 의해 정복이 가능한 대상, 혹은 인공을 초월한 힘으로 여겨왔다.

프랑스의 동물 사진작가 부부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담은 포토에세이집 <지구걷기>는 이러한 통념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이 책에 담겨있는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남극까지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이다.

이 책의 저자 롤랑 세트르와 쥘리아 세트르 부부가 바라본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공동체는 관조의 대상도 정복의 대상도 아니다. 그곳에 생명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운명인 셈이다. 왜 필자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저자들에게만큼은 '지구'가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프랑스의 알포르 국립수의학교를 졸업한 이들 부부가 선택한 삶이 바로 그 운명이다. 그들이 선택한 삶은 동물병원의 수의사 대신 동물 사진작가였다. 이러한 삶을 선택한 것은 우연히 참가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물보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수의학을 전공한 우리는 동물병원을 차리고서 가끔 바캉스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동물보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카메라를 들고서 자연을 취재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야생과 함께할 수 있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이들의 삶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이 험난한 삶의 여정을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첫째 아이 아리안느와 둘째 아이 코랑탱이 세 살 되던 해, 그리고 막내 마오가 생후 4개월 되던 때부터 이들은 자연 탐험에 합류했다고 한다.

<지구걷기>는 이러한 탐험의 결과로 맺어진 일종의 '가족 앨범'이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마다가스카르 남극대륙 북아메리카 유럽 등의 대륙과 섬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생명체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한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이 단순한 기행집이나 사진첩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들이 생명체와 함께 했던 경험에 바탕을 둔다. 이들이 만난 생명체의 이야기는 차를 타고 움직이며 멀리 떨어져있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사파리식의 여행담이 아니다. 직접 다양한 생명체를 피부로 접촉하고 함께 진흙을 묻혀가며 뒹굴었던 경험의 기록들이다.

책장을 넘기며 시선은 저자들의 세 자녀들에게 주목된다. 대부분 사진의 포커스가 그들에게 맞춰져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처럼 행복한 유년기를 경험한 이들도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그 특별한 경험을 엿들어보자.

▲ <지구걷기> 겉표지
ⓒ2005 작가정신
아리안느가 달라고 떼쓰는 우유병은 자기 것이 아니라 원숭이 것이다. 물론 절대로 같이 쓰는 우유병은 아니다. 어린 비비원숭이는 리타의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 공동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아리안느는 별 문제없이 비비원숭이들과 친해졌지만, 그 무리의 일원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후에 만나게 될 원숭이들은 아리안느를 또다른 원숭이로, 그들의 친구로 받아들였다. (38쪽)

과연 이 아이들에게 '피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이 피박이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만큼은 더 이상 '나'와 '타자'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아니라 서로 접촉하는 통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지구걷기>는 이 세 아이들의 행복한 유년기의 기록인 셈이다.

결국 긴 시간의 여행을 통해 그들이 얻은 교훈은 자연이 인공을 초월했으며 결국은 그 자체인 상생의 공간이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남극에 이르는 긴 여정의 기록인 <지구걷기>는 생명감 넘치는 아름다운 사진으로만 본다면 아주 귀중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 책이 제작된 의도가 가족 앨범 성격의 포토에세이집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대륙과 섬에서 만난 생명체의 기록인 만큼 각 지역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으면 더욱 알찬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혹 개정판을 발간하게 될 때 이러한 정보가 포함된다면 충실한 독자가 <지구걷기>를 읽어나가며 지도를 찾아보는 수고로움은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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