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상



소설 속 '루브르의 보물 찾기' 라고 표현된 루브르의 3대 미술품(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날개) 가운데 하나. 높이 204cm.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한다. 1820년 4월 8일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출토된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도 없이 비스듬히 몸을 비틀고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여신의 모습이다. 완벽한 인체의 비율을 구현한 이 조각상은 아름다운 여성의 표상으로 여겨져 영화, 광고 등에 자주 등장한다.

헬레니즘 양식의 특징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고전적인 인체 비례에도 불구하고 지그재그로 비튼 굴곡이 강조된 인체 묘사, 성숙한 둔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의복의 복잡한 주름 등이 헬레니즘 특유의 관능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비너스상은 1820년 발굴 당시 이미 두 팔이 손상된 상태였다. 유실된 한 손은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었으며, 또 다른 손은 '파리스의 심판'의 금사과를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조각상의 기단부에 아가산드로스, 혹은 알렉산드로스라는 조각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나, 분명히 확인할 수가 없어 작자 미상으로 남아 있다.
 
 
소설 속에서 랭던이 잠에서 깨었을 때 묘사된 방


소설 속에서 랭던이 잠에서 깨었을 때 묘사된 방이 루이 16세 시대의 가구들 및 수작업 프레스코 벽화, 르네상스 풍의 침실 이라고 한것으로 보아, 이 곳 임페리얼 스위트 풍의 방일 것으로 추정된다.

리츠에는 총 162개의 객실이 있고, 이들 가운데 55개가 스위트룸인데 한 호텔의 스위트룸 숫자로는 어마어마하다. 가장 크고 비싼 방인 임페리얼 스위트는 황실 가구로 치장한 거실, 베르사유 궁전 마리 앙투아네트의 침실을 본떠 만든 방,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 Marquise de Pompadour에게 헌정된 곳인 또 다른 침실에는 그녀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세계 각국의 최정상만을 위해 비워두는 이 방에 묵었던 유명인으로는 스페인 왕 알폰소 13세(Alfonso XIII)와 모로코의 하산 왕,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등이다.

리츠 파리는 영화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오후에는 사랑하세요? Love in the Afternoon?'에서 오드리 헵번과 게리 쿠퍼가 두 뺨을 맞대고 바이올린 음악에 맞춰 로맨틱한 춤을 추던 곳 역시 리츠 파리다. 애슐리 주드와 케빈 클라인이 촬영 중인 영화 '이것들 중 단 하나 Just One of Those Things'의 배경 중 일부도 리츠 파리의 프랑스풍 안마당과 볼룸, 객실로 꾸며진다
 
랭던이 묵던 호텔


소설 속 로버트 랭던이 파리에서 초청 강의를 마치고 묵게 되는 호텔. 호텔의 아버지라 일컫는 세자르 리츠(Cesar Ritz)가 플라스 방돔(Place Vendome) 15번지에 자리한 18세기에 지어진 맨션을 개조하여 1898년 6월 1일 문을 연 리츠 파리 호텔의 명성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최고의 VIP들을 비롯한 명사들이 이곳에 투숙 하였는데, 후일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영국 황태자,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러시아 공작과 이란의 왕이 이곳을 선택했다. 찰리 채플린도 리츠를 파리에서의 거주지로 삼았다.

리츠 파리의 유명한 게스트들의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44년 파리가 탈환되었을 때 4년간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했던 리츠 파리를 해방시킨 연합군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현재 리츠 파리에는 그의 이름을 붙인 '헤밍웨이 바 The Hemingway Bar'가 있다. 헤밍웨이 바는 작가가 자신의 군대 시절 친구를 위해 마티니를 주문하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혼녀와 사랑에 빠져 왕위를 포기한 영국의 윈저 공과 심프슨 부인 또한 리츠의 유명한 게스트였다. 이들의 이름을 붙인 윈저 스위트룸에는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영국 저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또한, 코코 샤넬은 1937년부터 1971년까지 리츠 파리에 둥지를 틀고 바로 길 건너에 있던 자신의 숍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붙인 샤넬 스위트는 침실 두 개와 거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코코 샤넬이 직접 상하이에서 가져온 중국의 오리지널 가구들이 현재도 보존되어 있다.

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그녀의 연인이자 이 호텔의 주인 알 파예드가 리츠에서 나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 역시 이 호텔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방돔광장


로버트 랭던이 프랑스 경찰에 의해 루브르 박물관까지 이동하면서 호텔을 나와 지나가게 되는 광장. 보석 광장으로 불리는 방돔 광장은 과거 앙리 4세의 사생아였던 방돔 공의 저택과 수녀원이 있던 장소였다. 그러나 루이 14세 때 재상 루보아는 전세계에 태양왕 루이 14세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광장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여 방돔 광장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건축가 아르도앙 만살의 설계에 따라 건립된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건물로 둘러싸인 8각형의 형태의 광장으로, 광장 중앙에 서 있는 원형탑은 1805년 나폴레옹의 오스텔리츠 전투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 대포 1천 2백 50문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그 정상에 있는 동상은 나폴레옹 1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과 보석상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대부호나 국제적인 저명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뉴 모드의 효시가 된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우제니의 재단사였던 윌트 ,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자유스런 패션의 선구자로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모드의 제왕으로 불렸던 폴 프와레 , 재능과 명성을 경합하며 화려한 인생을 펼쳤던 코코 샤넬과 엘자 스키아파렐리 등도 모두 방돔 광장과 함께 한 역사적인 인물에 속한다.

다이애나비가 약혼 반지를 택한 곳도 바로 이 광장에 있는 보석상에서였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같은 거물급 보석들은 호화 아파트 한 채를 사고도 남을 정도의 고가품이다.
 
튈르리 공원


랭던이 경찰과 루브르로 가는 도중 지나치는 장소.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브르 궁전까지 이어지는 대정원으로서, 동부는 지난 날의 궁전 터이고, 서부는 유명한 조원가(造園家) 르노트르가 설계한 프랑스식 정원이다.

튈르리는 '기와 공장'이라는 뜻으로, 기와 공장이 있던 자리에 앙리 2세의 비(妃)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건축가 필리베르 들로름에게 명하여 1564년 궁전을 조영한 데서 비롯된다. 역대 왕실이 이를 확장하고, 설계도 바꾸어 보았으나 건축면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때 군중에게 손상을 입었으나 왕정복고와 함께 복구하여 왕가의 주거로 삼았다. 그러나 1871년 파리 코뮌 때 불이 나서 루브르궁(宮)에 이어져 있는 2개의 동쪽 날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었다. 정원은 중앙부에 8각형과 원형의 연못을 연결하는 프롬나드가 있고, 여러 곳에 신화나 역사와 관련 있는 조각이나 화단을 배치하여 지난 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루브르의 카루젤 개선문, 튈르리 공원,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개선문,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까지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맑은 날씨에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아름답다. 파리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튈르리 공원은 파리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사진은 정원 내부 원형분수에서 바라본 카루젤의 아치와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이다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튈르리 정원 맞은편 퐁 솔레리노 다리 근처에 있는데, 옛 오르세 역을 개축하여 만든 미술관이다. 낡아 쓰러져가던 건물이 1973년 문화재로 지정이 되고, 1977년 데스탱 대통령의 제창으로, 1979년 이탈리아 건축가인 가에 아룰렌티에 의해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개조공사를 시작하여 21세기를 위한 미술의 전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제1기 공사가 끝난 1986년 12월 9일에 개관을 했는데 관광객은 루브르 미술관을 능가할 정도다.

파리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했을때 르네상스 및 로코코 시대의 작품들은 일반인에게도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들의 회화와 조형물 및 다다이즘 작가들의 작품, 60년대의 팝아트물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작품들은 퐁피두 센터에,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1848년 2월 혁명부터 1914년까지 기술적, 정치적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발전한 미술작품들은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이곳 오르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


미술관 내부 전경. 타원모양의 높은 유리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인상적인 오르세 미술관에는 우리가 미술 교과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파들의 유명작품들을 대거 접할 수 있다.

미술관은 3층으로 되어 있고, 흔히 19세기 미술관으로 불리고 있으나 내용은 종합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1층에는 1850~80년의 회화와 장식품,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앵그르의 '샘' 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2층에는 제3공화국 시대의 예술과 장식품, 1880~1900년 초기의 그림과 아르 누보 공예품 및 초창기 영화의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3층이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인데, 르누아르의 '물랭 들 라 갈레트' 를 비롯하여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과 로트렉, 고흐, 피사로, 마네, 드가, 세잔 등의 명화가 총망라되어 있다.

전시품은 그림 2500여 점, 조각 1500여 점, 공예품 1100여 점, 사진 1300여 점 등 방대하며, 이들을 모두 관람하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3층에는 휴식을 위한 카페도 있다. 이 카페의 오른쪽 문 밖에 있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의 조망이 일품이다.
 
오르세 미술관 세계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인 대형 시계의 내부 통로. 이 미술관이 예전에 기차역이었음을 말해주는 상징물로, 건물 바깥쪽에 달린 두 개의 시계탑 중 하나이다. 내부에서 밖을 보면 대형 시계 사이로 세느강과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퐁피두 센타


퐁피두 센터는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퐁피두 대통령이 제안하여 만든 초현대식 건물이다. 보부르(Beaubourg)라고도 부르는 퐁피두 센터는 창녀촌과 술집이 밀집해 있던 유흥가를 재개발하고 1977년 문을 연 파리 문화의 중심지다.

681점의 응모 작품 중에서 뽑힌 퐁피두 센터 건물은 이탈리아 출신 렌조 피아노와 영국인 리차드 로저스의 합작품으로 건물 안팎의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여, 밖에서 보면 마치 미완성의 중화학 공장같은 느낌을 준다. 배관 및 배선 등의 복잡하고 보기 흉한 시설들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한편, 종전의 완성미와는 거리가 먼 거친 벽 등을 그대로 방치해 건축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로 그 중 2, 3층이 도서관이고 4, 5층은 국립현대미술관, 7층은 현대미술 전람회장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세기 이후에 창작된 예술작품을 4만5천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데, 20세기 초 뷔야르, 보나르, 야수파들로부터 최근 60~70년대 미국 작가 팅그리, 라쉰, 버그, 뉴만, 제스퍼 존스까지 현대적 의미의 작품들이 망라돼 있다.

센터 앞의 광장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공연을 감상하는 젊은 여행객들로 항상 붐빈다.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Obelisk)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 놓은 상징적 건조물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오벨리스크는 일종의 해시계의 역할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한복판 콩코드 광장에 솟아 있는 네모진 이 돌기둥은 위로 올라 갈수록 사각뿔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기둥의 사방에는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다.

원래 이것은 이집트 테베에 있는 룩소 신전에 서 있었던 2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무게는 230톤, 높이는 23m나 된다. 이 오벨리스크는 1831년 이집트 총독이자 군사령관인 무하마드 알리(권투 선수가 아님)가 프랑스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현재 이집트 전역에 있던 120개의 오벨리스크는 6개만 남기고 다른 나라로 모두 유출되었다. 런던의 템즈강 워털루 다리 북쪽에도 있으며,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도 서 있다.
 
 
황도12궁


황도 12궁은 태양과 행성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12개의 별자리를 말한다. 황도 전체를 30°씩 12등분하여 각각에 대해 별자리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양자리(Aries)에서 시작하여 황소자리(Taurus), 쌍둥이자리(Gemini), 게자리(Cancer), 사자자리(Leo), 처녀자리(Virgo), 천칭자리(Libra), 전갈자리(Scorpio), 궁수자리(Sagittarius), 염소자리(Capricorn), 물병자리(Aquarius), 물고기자리(Pisces)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궁이라는 것은 원래 중국에서 별자리를 나타내던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관습에 의해 황도 상에 있는 12 개의 별자리를 차례로 황도 제1궁, 제2궁,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다. 태양, 달, 행성들이 이들 별자리 사이를 이동하는 것을 보고 고대 오리엔트에서 점성술을 위해서 설정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이 동물 이름인 데서 수대(獸帶)라고도 한다. 태양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도 황도를 따라 움직이므로 황도를 이루는 별자리와 황도 상에 있는 밝은 별들의 위치를 알아두면 행성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달이 움직여 가는 길인 백도는 황도와 약간 기울어져 있지만 대체로 황도와 비슷하다.

소설 속 로버트 랭던이 프랑스 경찰의 브쥐 파슈 반장을 '토로'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 황소를 의미함을 떠올리게 되는 부분에 언급되는 내용이다. 참고로 12궁의 불어 발음은 다음과 같다.

양자리: Belier (벨리에)
황소자리: Taureau (토로)
쌍둥이자리: Gemeaux (게모)
게자리: Cancer (캉세)
사자자리: Lion (리옹)
처녀자리: Vierge (비에르주)
천칭자리: Balance (발랑스)
전갈자리: Scorpion (스코르피옹)
궁수자리: Sagittaire (사기테르)
염소자리: Carpricorne (카르프리콘)
물병자리: Verseau (베르소)
물고기자리: Poissons (푸아송)
 
 
앙크 십자가


소설속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는 재임기간 중 여신과 관련된 지상의 예술품을 모으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나오며, 앙크 십자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앙크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상형문자로 '생명', '살다'라는 뜻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T자 위에 타원형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모양인데, 이것은 여성의 성기라는 학설부터 시작하여(우리가 흔히 '비너스의 거울'로 알고있는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 '♀'는 이 앙크 십자가에서 유래되었다) 삶과 관련된 모든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신전에 봉헌할 조각이 완성되면 최후로 사제가 앙크를 조각의 코에 대어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을 불어 넣는 축성을 한다. 생명을 주관하는 신과 여신의 상을 보면 이 앙크를 손에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앙크 십자가가 강력하고도 불가사의한 힘을 불어 넣는다고 믿었으므로 각각의 앙크 십자가 마다 고유의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호신용 부적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집트에 기독교가 전파된 후부터는 콥트 교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상징물(십자가)처럼 되어졌다
 
호루스를 기르는 이지스


이집트 신화에서 하늘의 신과 땅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를 문명국으로 발전시켰으나 그의 동생 세트(Seth)는 형을 시기하여 흉계를 꾸며 형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어 이집트 각지에 뿌렸다. 그런데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남편의 시체를 모아 부활시켜 저승의 왕이 되게 하였다. 이런 연관성 때문에 이시스는 사자(死者)와 장례의식의 여신이기도 하다.

이시스는 죽은 오시리스로부터 임신을 해서 곧 호루스를 낳았다. 출산은 나일강 삼각주에 있는 Khemmis에서 비밀리에 했는데, 아기를 파피루스 늪에 숨겨 세트의 눈을 피했다고 한다. 호루스는 나중에 세트를 물리치고 통일된 이집트의 첫 번째 지배자가 되었다. 이시스는 호루스의 어머니로서 그 역할이 확장되어 파라오의 어머니와 수호자로 여겨진다.

이시스와 호루스의 관계는 아마도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와 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시스가 어린 호루스를 안고 있거나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은 확실히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아이콘의 고전적인 형태일 것이다.
 
 
생 레자르 기차역




소설 속 랭던과 소피가 프랑스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릴리행 기차표를 구입하게 되는 생라자르 기차역 내부.

1937년 만들어진 프랑스 국영철도인 에센쎄에프(Socit National des Chemins de Fer Franais, S.N.C.F)는 장거리 노선(Grandes Lignes)과 교외선(Banlieues)으로 운행되고 있다. 파리에는 생라자르역(Gare Saint-Lazare), 북역(Gare du Nord), 동역(Gare de l'Est), 리옹역(Gare de Lyon), 오스텔리츠역(Gare d'Austerlitz), 몽파르나스역(Gare Montparnasse)과 같은 6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이곳에서 거의 모든 지역으로 기차가 떠나고 도착한다.

마르세이유나 리옹, 니스 등과 같은 지방은 리옹 역에서 출발하고 투르나, 보르도, 툴르즈 등 프랑스 서부 지방은 몽파르나스 역에서, 릴이나 브뤼셀 등은 북역에서, 스트라스부르는 동역에서, 오를레앙은 오스텔리츠 역에서, 일 드 프랑스나 노르망디 지방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생라자르 역에서 출발한다.
 
 
생 레자르 기차역


모네는 생 라자르 기차역에 관한 십여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다른 작품들에 반해 이 그림이 가장 환벽한 형태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기차역을 자세히 관찰하고자 역 근처에 집을 얻어 그 작품들을 완성했다고 한다.

삭막해 보이는 철골 구조의 역안으로 지금 막 들어서는 기차의 푸른 연기가 내겐 너무 쓸쓸해보인다.
 
시스트럼


기원전 3천5백년 이집트왕조의 유적에서 발견된 시스트럼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악기로 알려져 있다. 시스트럼은 의식 때 쓰던 악기로 하토르 여신의 상징이며, 이 여신을 달랠 목적으로 연주되었다. 악기를 흔들면 느슨하게 꽂힌 막대기에서 방울들이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나 춤과 행렬에 박자를 맞추는 데 쓰였다. 아치모양으로 구부러진 틀에 가로로 봉을 넣어 전체를 좌우로 흔들어 움직여 소리를 낸다. 이 악기는 고왕국시대부터 쓰였으며, 이집트 역사 전반에 걸쳐 사제와 여사제의 손에서 발견된다. 왕들은 사원 의식 때 신 앞에 서서 이것을 연주했는데, 신왕국시대부터는 때때로 왕비가 이 역할을 맡기도 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에서 제2막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집시의 노래' 혹은 '시스트럼의 노래'로 알려진 '시스트럼 악기를 흔들어 울리면(Les tringles des sistres tintaient)' 에서 집시와 카르멘이 탬버린을 흔들며 정열적으로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에도 등장한다
 
콘스탄티누스


소설 속 빌레트 성으로 피신한 랭던과 소피에게 레이 티빙이 신약성서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새로 씌어졌음을 설명한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에 거점을 둔 막센티우스와 대립, 밀비우스다리 싸움에서 막센티우스의 전군 2000여 명을 테베레강에 몰아넣어 전멸시켰다. 그리스도교 역사가들은 이 전투때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의 가호를 받아 하늘에 그리스도의 머리문자로 된 십자가 환상을 보고 승리하였다고 전하며, 이것이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에 입성한 그는 제 1 정제임을 선포하고 리키니우스와 밀라노에서 만나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인과 종교자유의 원칙을 결정하였다(밀라노 칙령). 또한, 옛 도읍 비잔티온 옆에 새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하고 330년 로마종교와 그리스도교 두 의식에 의하여 이곳을 수도로 봉헌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태양신을 믿었고 유일신 숭배에 호의를 지녔다. 콘스탄티누스에게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와 참된 개종의 실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도를 관직에 발탁하여 교회와 성직자를 보호하고 여러 가지 입법을 실시하였다. 324년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하였고 아프리카의 드나티즘 분쟁을 조정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관계는 뒷날 비잔틴교회 황제교황주의의 실마리가 되었다. 죽기 직전 아리우스파 주교에게 영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로마시에는 그의 개선문이 지금도 남아 있고, 카피톨박물관에는 머리부분을 포함한 그의 거대한 입상의 일부분이 소장되어 있다.(사진)
 
 
브아 드 블로뉴


소설 속 랭던과 소피가 악소가 24번지로 가는 도중 지나치는 숲으로 변태와 성도착자의 쉼터로 묘사한 곳이다.

파리시(市) 서단(西端)에 펼쳐지는 면적 약 9,000ha의 대공원. 예부터 대삼림(大森林)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의 블로뉴(Boulogne) 숲은 그 일부이며, 나폴레옹 3세에 의해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숲이 우거진 도시 가운데 하나다. 불로뉴 숲은 파리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산책 장소이자 휴식 공간이다.

이 광대한 숲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35킬로미터에 이르는 보행자용 산책로, 자동차 경주장, 승마 코스, 자전거 경주로, 경마장, 수영장, 국립 민간 예술·전통 박물관, 보트 대여장, 카페, 레스토랑 등 여가 시설이 풍부하여 파리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호수들과 카틀랑 공원, 셰익스피어 정원, 아클리마타시옹 정원, 바가텔 공원 등 수많은 녹지대가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좋은 쉼터를 마련해주고 있다
 
콜레 드 부트


소설 1권 313페이지에 소피에게 랭던이 '시온의 쐐기돌'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클레 드 부트라는 건축학적 용어를 사용한다.

옛부터 인류는 돌이나 벽돌을 쌓아 올려 많은 장대한 구조물을 쌓았는데 그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 아치였다. 아치의 원리는 쐐기이다. 쐐기형의 돌을 반원형으로 놓으면 돌은 서로 밀어내느라고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위에서부터 무게가 걸리면 밀어내는 힘이 더욱 긴밀해져서 오히려 강도를 더해 간다. 위의 무게는 아치 맨 끝에 집약되어 있어서 가느다란 기둥으로도 받칠 수 있다. 나무나 돌로 된 기둥은 가로나 비스듬한 방향에서 힘이 가해지면 부러지기 쉽지만 위로부터 수직으로 힘이 걸리면 아주 강해진다.

유럽이나 이슬람 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중세의 묵직한 석조건축이 아치의 열로 받쳐지고 그 아치가 다시 아주 가느다란 기중으로 받쳐지고 있어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보기에도 아치와 가느다란 돌기둥의 열은 매우 아름답다.

아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발명되어 지중해 세계로 퍼져 페르시아 건축을 통해 유럽 건축에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는 옛부터 전해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건축법이 다리 등에 이용되어 아치식 돌다리가 남아 있다. 중앙 아메리카의 마야 문명 유적, 서남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동남 아시아에 걸쳐서 분포되어 있는 오래된 힌두교 사원이나 불교의 석조 사원 건물 등이 아치식 건물이다.

기독교의 대성당이나 이슬람교의 큰 모스크 안에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 보면 건축 공간이 넓직하고 천정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기법이 바로 아치, 돔, 볼트이다
 
히에로스 가모스


소설 속에서 소피는 우연히 할아버지인 자크 소니에르가 신입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히에로스 가모스에 참가한 모습을 목격하고 10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히에로스 가모스란 '성(聖)스런 성(性)의식'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성한 결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으며 고대 다산 숭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여사제로 교육받은 여성과 성적 결합 의식을 치름으로써 남자는 '깨달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거나 신을 직접 접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자는 원래 불완전한 존재로, 여성과의 결혼만이 신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기본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에서도 주인공 역의 톰 크루즈는 히에로스 가모스 의식을 경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히에로스 가모스는 현대에 있어서도 비밀스런 의식으로 어딘가에서 행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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