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 오래 전 우리가 사랑했을 때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절판


어느 날, 문득 지금 이렇게 사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진 한 여자가 있었다.-5쪽

그녀는 손자들을 사랑했다. 하나하나 모두 다.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생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할머니 목소리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피곤한 때도 가끔 있었다.-73쪽

레베카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밀려드는 후회감에 가슴이 아렸다.-119쪽

여자들은 임신기간에는 결혼이 쓸모있다고 여기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은 점점 덜 필요하게 되지만 남편은 아내를 점점 더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남자는 자기 말을 들어주고 놀라면서 ‘여보, 정말 그렇네요’라고 맞장구쳐주고, 균형 잡힌 식사를 준비하고, 발래를 해주고, 바닥에 왁스를 먹이는 아내를 필요로 하지. 그 정도가 아니라 혈압을 재주고, 저염식을 준비해주고, 은퇴하면 손을 잡아주기를 원하지. 자기는 뭘 어째야 좋으œ 생각조차 못 하는 거야. 한편 아내는 자유를 갈구하기 시작하지. 여자들만의 점심모임이니 독서클럽 모임이니 여자끼리의 야생지대 여행에 쭈르르 달려가기 시작하는 거야.-134쪽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게 담배를 끊는 것 같다고 상상하지. 첫날은 진짜 힘들지만 다음날에는 덜 힘들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수월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물을 잃은 것과 같아. 하루하루 그 사람의 부재가 더 확실해지는 거야.-162쪽

"매일 밤 같은 음식을 먹으면 싫증 안 나?"
"전혀. 아니 싫증이 난다고 해도 어때서? 이 나라 사람들의 싫증 공포증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니까. 왜 우린 계속 다양함과 재미를 느껴야 하지? 난 지루한 구석이 있더라도 내 생활에 푹 빠지는 편이 좋아. 어떤 때는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응시하지. 새로움 자체를 위한 새로움은 필요없어."
"글쎄…… 맞는 말이야. 그래! 왜 그렇게 지루함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190쪽

오종일 전화벨이 울려대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날도 있다. 누구나 다 그럴까? 어떤 날은 쉴새없이 전화가 울려댔다. 한 사람이 끊으면 다음 사람이 전화를 걸고 그런 식으로 계속 통화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전화기가 없는 집 같았다.-214쪽

그렇게 전화를 뚝 끊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 후면 늘 이렇게 가슴이 찢기는 느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219쪽

눈물이 날 듯해 레베카 자신도 놀랐다. 파피 숙부의 존재가 짐 같아서 늘 화가 났는데. 숙부를 돌보는 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게 너무 싫었는데. 가끔 그의 죽음을 상상해보기까지 했잖은가. 하지만 뭐든 손에 맡겨진 것에는 점차 애정을 갖게 되지 않던가.-225쪽

가끔 레베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길이 갈라졌던 그곳에 되돌아가서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할 수도 잇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처음에 선택한 길의 종점에 이른 시점이기는 하지만?
속임수 같았다. 자기 케이크를 다 먹고 남의 것마저 욕심내는 듯했다.
그녀는 윌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기억했고, 윌은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기억했다. 그들의 과거는 둘이 가위로 잘라서 나눠 가졌던 한 장의 천 같았다.
-268쪽

젭이 이런 말을 했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가 그래요? 누가요? 감히 누가 그런 말을 해요?"
레베카는 벌컥 화를 냈다.
젭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하느님인가?"
그 말에 레베카는 웃음을 터뜨렸다. 뺨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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