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9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절판


네 가지 울이 갖는 공통점은 모든 집들이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한 마을이 한 집안처럼 감추는 것 없이 터놓고 살며 서로서로 정을 나눈다는 친족의식과 집단의식의 표현이었다.-8쪽

곡식이 땅이 없고 씨만 있어가지고는 소출을 못 보듯이 사람 목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그것을 뱃속에 넣고 키워낸 정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9쪽

"참으로 만산에 진달래고, 꽃잎마다 뻐꾹새 피울음이오."
(중략)
"혹시, 염 동지는 밥 대신 진달래꽃을 따먹어본 적이 있소?"
"예, 어렸을 때 봄이면 꼭 그래습니다."
염상진은 위원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나도 저 꽃을 많이 따먹었소. 뻐꾹새 울음을 내 어머니 넋이거니 생각하며서 말이오."
염상진은 그때서야 위원장의 말이 퍼뜩 깨달아지는 것을 느꼈다. 뻐꾹새의 피울음이 어머니의 넋이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었다. 그는, 뻐꾹새 울음이 배고파 죽은 자식들을 찾아다니는 어머니의 환생이라는 전설을 떠올리며 위원장의 말이 결코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37쪽


전쟁이란 대개 국가 대 국가가 싸우는 것이고, 그럴 때는 적과 아군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은 이념이 작용하고 있는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면서, 또 남과 북이 똑같이 외국군대가 개입된 국제전이거든요. 이런 복잡한 양상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여러 갈래로 얽힐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전쟁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고, 이번 전쟁에서도 그 편갈이는 표나게 나타났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전 원장님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건 그게 이념적 민족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친일반민족 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승만 정권이야 절대로 옳을 수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공산주의를 지지할 수도 없고,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한묶음으로 정치적으로 중도파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은 결국 양쪽에서 다 환영받을 수가 없지요.
-166쪽

전쟁은 일단 터지면 그 누구에게도 방관을 용납하거나 중립을 허용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어느 쪽으로든 입장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니까요. 그것이 서로의 이익을 앞세운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고 사회개혁의 혁명성을 가진 민족세력과 반민족세력 간의 전쟁일 때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까?-217쪽

그보다 먼저 할일은 내가 절름발이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일이야, 나 스스로 그 생각에서 해방돼야 하고,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날 해방시켜야 해. 병신이라고 생각해선 안돼. 창피스럽게 생각해서도 안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당당해져야 해,의식이 멀쩡한데 절름발이 정도가 문제야, 절름발이의 상처가 의식을 병들게 하도록 방치해선 안된다, 그건 자포자기의 허약일 분이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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