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따라 갈까 보다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2
황교익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0년 10월
품절


사람은 자신이 처음 들은 정보를 전적으로 믿는 버릇이 있다. -22쪽

보리밥은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이 땅에는 건강 때문에 보리밥을 먹는 사람과 쌀밥을 못 먹어 보리밥을 먹는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안현필 등 건강, 장수 비법 전파자들은 보리만한 건강 식품이 없다고 주장을 하지만, 돈 때문에 보리밥을 먹는 사람은 숟가락 놓고 뒤돌아 방귀 한번 뀌면 속이 텅 비는 질 낮은 식품이라고 말한다.-43쪽

비빔밥은 국내 항공사 국제선 기내식으로 나오고 있다. 김치, 불고기 등과 함께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먹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비비라고 나온 나물을 하나씩 반찬 먹듯이 먹는단다.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비벼 먹는 의미를 알지 못해 그런 것이다. 우주를 먹는다는 그 의미를.-90쪽

향토 특산물은 다들 진상품이라고 제 자랑을 하는데, 돌산 갓김치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지역 특산물 중 유명하다 싶으면 다들 진상품이니 하는 말들을 붙이는데, 실제로 맛이 있어서 진상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탐관오리들의 축재 수단으로 진상이 이용된 것이 조선 시대의 현실이었다. 따라서 진상을 많이 했다는 것은 그 지역에 가렴주구가 횡행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진상품이라고 자랑할 만한게 못 될수도 있다. 오히려 ‘옛날부터 서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정감 있지 않을까 싶다.-113쪽

갈비에 대한 열망은 여타 음식에도 전이되어 나타난다. 갈비가 아닌 게 틀림없는 부위로 조리된 닭갈비와 돼지갈비를 우리는 ‘갈비’라는 이름으로 맛있게 먹는다. 심지어 한때는 고등어 구이에다가도 고갈비란 근사한 이름을 붙여 먹었다.-133쪽

과연 미식이란 부르주아만의 것일까. ‘면사또의 잔칫상’에서나 정말 맛을 느낄수 있는 것일까. 단단히 오해들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의 10원짜리 쫄쫄이에서 최고의 맛을 느낄 수도 있고, 서울역 앞에서 부랑자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밥에서도 지고지순의 맛을 볼 수 있다.-154쪽

우리는 때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먹는다. 그 이야기가 맛이다.-155쪽

메밀이든 메밀이든 한 식물을 말하므로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경을 쓸 일이다. 언어란, 특히 그 언어를 재료로 하는 문학이란, 말하여지고 창작되는 그 시기와 장소, 사람의 시대적, 문화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메밀이 사투리라도 이효석의 소설 속 메밀은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규정은 규정이고 문학은 문학이다. 모든 것을 ‘중앙의 규칙’에 따르려는 발상은 문화를 주눅들게만 할 뿐이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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