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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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냉담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이중 삼중으로 덧칠이 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디까지가 위대한 열정이고 어디부터가 지독한 감상인지. 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위대한 열정에 대한 가능성을 비웃고, 진실하고 심오한 감정을 감상이라고 치부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프란체스카 존슨과 로버트 킨케이드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요구되는 따스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런 상투적인 태도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인 콜리지가 말했듯이, 의심의 먹구름을 걷우고 다음의 이야기에 다가선다면, 틀림없이 당신은 내가 경험한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심했던 당신의 가슴 안에서 다시 춤출 수 있는 여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프란테스카 존슨이 그랬던 것처럼.-14-15쪽

렌즈통을 내려다보면 그 끝에 당신이 있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소. 당신에 대해서 말이오.-38쪽

세대는 굴러야만 한다. 구르고 또 구르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것만이 필요하다.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 그 힘은 무한하고도 아름답다. 이런 힘이 작용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조금도 어긋나는 법이 없이 단순하고 또렷하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복잡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뿐. 프란체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그 힘을 느꼈다. 세포 속속들이 자석과도 같은 그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녀를 영원히 변하게 하는 일이 시작되었다.-45쪽

‘분석하는 것은 전체를 망쳐 버린다. 무언가 신비로운 것들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한다. 조각조각을 보면 신비는 사라지고 만다.’ 바로 이것이 그의 생각이었다.-56-57쪽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생활은 아니에요."
마침내 고백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묵혀 두기만 하고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이었지만, 정말 하고 싶던 말이기도했다. 프란체스카는 지금 초록색 픽업 트럭을 타고 워싱턴주의 벨링햄에서 온 어떤 남자에게 그 말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60쪽

"사진은 찍는게 아니라 만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일요일에 스냅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와 사진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프로의 차이가 그거지요. 오늘 우리가 본 다리 촬영을 끝내면 부인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사진이 나올 겁니다. 렌즈를 선택하고, 카메라 각도나 일반적인 구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조화로 내 나름대로의 장면을 만들게 될 겁니다. 사물을 주어지는 대로 찍지는 않습니다. 뭔가 내 개인적인 의식이 정신이 반영되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이미지에서 시구를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중략)"
-69쪽

모르는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그와 함께 순무를 다지고, 그러다보니 낯선 느낌이 스러져 버렸다. 낯선 느낌이 없어지니, 친밀감이 들어설 공간이 생겼다.-72쪽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초지와 초원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 하늘 색깔에 흥분하는 사람, 시를 약간 쓰지만 소설은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기타를 치는 남자, 이미지로 밥벌이를 하고 장비를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남자. 바람 같아 보이는 남자. 그리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자. 어쩌면 바람을 타고 온 사람.-79쪽

"시대에 낙오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피를 몸에 지닌 사람 말이에요. 세상은 조직화 되고 있어요. 지나치게 조직화되어서 나 같은 사람은 끼여들 여지가 없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고, 모든 것이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죠. (중략)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다가오는 세계에서도 잘 적응하겠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 몇몇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중략) 우린 자유를 포기하고, 점점 조직화되어 가면서 우리 감정을 하찮게 여깁니다. 효능과 효율성, 지성적인 기교 같은 것만 강조하죠. 자유를 상실하면서 카우보이가 사라졌죠. 아메리카 라이언도, 얼룩이리도 함께 사라졌죠. 이젠 방랑자들이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마지막 카우보이 중의 한 명이죠.(중략)"-125-126쪽

추억을 절제하는 것,그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추억의 조각들이 세세한 곳에 이르기까지 자주 밀려들긴 했지만, 이제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녀의 마음 속으로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울타리를 치워 버렸다. 이미지는 분명하고, 현실적이고, 늘 현재 같았다.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인데도. 22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일인데도. 추억 속의 이미지들은 이제 다시 그녀의 현실이 되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현실이었다.-129쪽

아침이 밝을 무렵, 그는 몸을 약간 일으키고,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이 혹성에 살고 있는 이유가 뭔 줄 아시오. 프란체스카? 여행하기 위해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아니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혹성에 살고 있는 거요. 이제 그걸 알았소. 나는 머나먼 시간 동안, 어딘가 높고 위대한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떨어져 왔소. 내가 이 생을 산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그리하여 그 많은 세월을 거쳐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된 거요."
-134쪽

"당신이 내 안에 있는지. 또는 내가 당신 안에 있는지. 내가 당신을 과연 소유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어. 적어도 난 당신을 소유하고 싶지는 않아. 우리 둘은 우리가 ‘우리’라고 새로 만들어낸 다른 존재의 안에 있다고 생각해. 물론 우리는 그 존재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 우리가 바로 그 존재니까. 우리 둘 다 스스로를 잃고 다른 존재를,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얽혀들어 하나로만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창조해낸 거요. 맙소사. 우린 사랑에 빠졌소. 더 이상 어찌할수 없이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140쪽

"할 이야기가 있소. 한 가지만.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을거요. 누구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요."-143쪽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도 않고, 대신. 당신을 발견한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우주의 먼지 두 조각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졌던 것 같소. (중략)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매 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시간이.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리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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