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가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건 바람 같은가 하면 안개 같기도 했고, 그런가 하면 물 같기도 했다. 바람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으면서 어느 순간마다 언뜻언뜻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결정적인 경우에는 폭풍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 양조장 정 사장 사건을 처리하면서, 평소에는 있듯만듯하던 그들 민간인들의 힘이 네 소작인을 구해내는 연판장으로 일시에 뭉쳐졌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작은 힘들이 모아져 폭풍으로 돌변하는 모습이었고, 전에는 전혀 경험해본 바 없는 힘의 섬뜩함이었다. 어느 길목에서 갑자기 맞닥뜨릴 때 황급히 옆걸음질치며 피하는 그들은 흐릿흐릿 흩어지는 안개발에 지나지 않았고, 장날이면 호의를 가지고 말을 걸어도 잔뜩 주눅이 들어 말더듬이가 되는 그들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한 방울의 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순간에 한 발 앞도 분간 못하게 하는 진한 안개로 뭉쳐지고, 어떤 계기에는 강둑을 사정없이 무너뜨리는 성난 물줄기로 한덩어리가 될 수도 있었다.-11-12쪽
그 여자는 가엾고 불쌍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나라 잃어버린 남자들의 밍충맞음으로 여자들이 당한 수난이었다. 그렇게 고통받은 여자들이 도대체 몇 명일까. (중략) 분명 해방이 되었는데도 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한번도 거론된 일이 없지 않았는가. 심재모로서도 그건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22-23쪽
새야 새애야 파아랑 새애야아 녹두우밭에에 앉지 마라아 녹두꽃이 떨어어지이며언 청포장수우우 울고 간다아아 -56쪽
그나마 뻘밭에서 꼬막을 캐낼 수 있는 것은 빈한한 사람들에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꼬막이라는 것이 빈한을 면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꼬막이 자갈밭의 자갈처럼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꼬막을 캐는 뻘밭일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꼬막은 찬바람이 일면서 쫄깃거리는 제맛이 나기 때문에 천상 뻘일은 겨울이 제철이다. 꼬막은 뻘밭이 깊을수록 알이 굵었다. 뻘밭이 깊으면 발이 그만큼 깊이 빠지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용기가 아니었고 무모함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생계였다. 꼬막을 잡아야만 하루 목숨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살을 찢는 겨울 바닷바람에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려 맨살을 드러낸 채 뻘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중략) 겨울바람 속의 여인네 모습은 그대로 극한에 달한 빈궁의 표본이었고, 모진 목숨의 상징이었으며,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이었다. 아니, 그것은 눈물이고, 아픔이고, 한이었다.-82쪽
가난이란 육신을 배고프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의 굶주림을 모면할 길이 없는 빈한 속에서 배움을 얻을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봉건사회의 착취계층은 그 상관관계를 교활하게 이용함으로써 지배계층으로서의 지위까지 대대로 향유할 수 있었다.-100쪽
동백은 남도지방의 꽃이었다. 동백꽃은 질 때도 그 빛깔도 모양새도 변하지 않은 채 꽃잎 하나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꽃술만 남겨놓고 본래의 모양 그대로 뚝뚝 떨어져내리는 것이다. 마치도 핏빛의 눈물을 떨구는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동백꽃을 한 많은 처녀 넋의 환생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또는, 한 많은 청상의 환생이라고 했는지 모른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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