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티를 꼭 한 점 먹고 싶구나 - 소설가 황석영이 곱씹어내는 잊을 수 없는 맛의 추억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4
황석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5월
구판절판


프로이드 선생의 말씀을 들지 않더라도 성욕과 식욕은 어릴 적부터 잠재되어 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배한다. 남녀가 함께 밥을 먹으면 '정든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영혼의 집>으로 유명한 칠레의 작가 이자벨 아옌데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같이 먹었던 요리에 대한 얘기로 책 한권을 쓸 정도였다. 어는 먼 산골이나 바닷가 어촌에서 두 사람이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 아무데서나 다시 찾아 먹을 수 있는 흔한 먹거리라 할지라도 다시는 되살려 낼 수가 없다. 또한 그네가 가끔씩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하던 달그락거리는 그릇 부딪는 소리와, 식탁 맞은편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이편을 건너다보던 날의 맛을 어디서 되살려 낼 것인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물처럼 지나간 시간은 자취도 없지만 그 감각만은 생생하다. (흘러간 사랑)-13-14쪽

내가 전화에다 대고 그네에게 말했을 것이다. "나 많이 늙었어"하니까 그쪽에서 "그건 나두 그래"하고 대답했다. (흘러간 사랑)

-39쪽

개개인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신성한 의무라는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에게는 젊은 꿈을 유보시키고 일정 기간 국가 권력의 군율로 족쇄를 채우는 악몽임에는 틀림없다. 지나고 보면 늘 사람 사는 곳의 그럴듯한 ‘인정’으로 달리 채색되어 있지 않던가. (유배지의 한 끼니)

-98-99쪽

"도둑질, 그거 부지런해야 먹구 삽니다. 미리미리 털 집을 봐 둬야죠, 시간 맞춰 현장 도착해 망봐야죠. 숨어서 기다려야죠, 직접 털어야지요, 무거운 짐 지고 도망가야죠, 장물아비 찾아서 처분해야지…… 한두 가집니까? 그애들 여기오면 참 양순한 애들입니다. 부지런하고 순하고 아주 소지로 맞춤이지요." (유배지의 한 끼니)

-119쪽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때의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 변했든지 했을 터이기에. (잃어버린 그 맛)-192쪽

하여튼 입맛이란 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과 노동을 한 뒤의 것이 훨씬 맛있고, 풍성한 자연 속에서는 더욱 살아나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그 맛)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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