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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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나의 상자를 열 때마다 나는 외삼촌이 살았던 삶의 또 다른 부분, 어떤 정해진 날이나 주일 또는 달이라는 기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한때 외삼촌이 차지했던 것과 똑같은 정신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 같은 글을 읽고,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살고, 어쩌면 그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 느낌으로 위안을 받았다.-36쪽

나는 그 진공 세계에 두 명의 우주인이 첫발을 딛고, 달 표면에서 장난감처럼 뛰어다니며 자욱한 먼지 속에서 골프 수레같은 것을 밀고, 한 때는 사랑과 광가의 여신이었던 달의 눈에 깃발을 꽂는 것을 보았다.. 빛나는 달의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이제는 모두 우리의 마음 속에서 어두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49 쪽

남자들의 옆구리에는 청동성기가 매달려 있지요. 17세기 프랑스 남자들이 칼을 차고 다니던 것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달 사람이 어리둥절해진 시라노에게 설명해 준 말은 이런 거였습니다. 살상의 도구보다는 생명의 도구를 존중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62쪽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77쪽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142쪽

세상은 눈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어오지만, 우리는 그 이미지가 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뜻이 통하게 할 수 없다. 나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얼마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 거리는 6,7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손실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구에서부터 달까지의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178쪽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이었고 비록 벽을 구성하는 두 자으이 벽돌이 아주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동일한 것일 수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벽돌이라도 절대 같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대기와 추위와 더위의 영향을 받아 눈에 띄지 않게 부서지면서 마모되고 비바람을 맞아, 만일 누군가가 몇 세기에 걸쳐 관찰을 할수 있다면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모든 무생물은 분해되고 있었고, 모든 생물은 죽어 가고 있었다. 격렬하고 열광적인 분자들의 운동, 물질의 끊임없는 폭발과 충돌, 그리고 모든 사물의 표면 밑에서 끊어 오르는 혼돈...-179쪽

똑같은 숲, 똑같은 달, 똑같은 정적. 그 작품들에서 달은 언제나 똑같은 보름달이었다. 캔버스 한복판에서 창백한 흰색으로 빛나는 조그맣고 완벽한 둥근 원. 그런 그림들을 댕섯 점 보고 나자 그 달들은 차츰차츰 배경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을 달리 볼 수 없었다. 그 달은 캔버스에 뚫린 구멍, 다른 세상을 내다보는 하얀 구멍이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블레이크록의 눈일 수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은 것들을 내려다보며 우주에 떠 있는 텅 빈 원.-205쪽

누구든 자기가 속수무책인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끼면 고함을 지르고 싶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가슴에 응어리가 지면 그것을 몰아내지 않고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숨에 숨이 막힐 것이고, 대기 그 자체가 그를 질식시킬 것이다.-243쪽

비 냄새가 나. 빗소리가 들려. 아니 비의 맛까지도 느껴져. 그런데 우리는 하나도 젖지 않았어. 그게 바로 물질에 우선하는 정신이야. 포그, 우리는 마침내 그 일을 해냈어.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깨뜨렸어' 나는 마치 에핑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방들로 통하는 뚜껑문으로 기어들어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신비로운 경계선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단지 그의 미묘한 계략에 굴복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자유를 확인하는 궁극적인 몸짓을 보였다는 뜻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나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죽게될 것이지만 살아있는 한에는 나를 좋아할 것이었다.--- pp. 307, 311-311쪽

어느날 나는 4번가에 있는 중고 서점에 들러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테슬라의 자서전인 '나의 발명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은 원래 그가 1919년 <전기 기술>이라는 잡지사에서 출판한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문을 서너 페이지쯤 읽다가 거의 1년전쯤 달의 궁전의 쿠키에서 나온 점괘와 똑같은 문장을 보게 되었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쪽지를 지갑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그 말이 테슬라, 에핑에게 그처럼 중요했던 바로 그 테슬라가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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