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이준희 지음 / 문이당 / 2004년 10월
품절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시간도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한 달 여를 그렇게 보내다가 퍼뜩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억울하게 먼저 간 아이들에게 차마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자. 향진과 철환에게 미처 다 쏟지 못한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자. 사랑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을 테니.'
-18쪽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슴으로 전하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눈물과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어디 있겠어요?
-19쪽

희망을 놓으면서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떠는 증상이 생겼다. 천둥이라도 치는 날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고 집중력도 흐려져 뭐든 조리 있게 생각하기도 힘들어졌다. 눈을 감으면 헬리콥터의 굉음, 피융 소리를 내며 스쳐 가는 총알 소리, 내장 깊숙한 곳까지 울려 대는 포 소리, 단말마적 비명이 들렸다-47쪽

모르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모두에게 원초적인 것이다.
"매번 시합을 하기 전에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고 불세출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도 고백하지 않았던가.
-56쪽

세상이 어지럽고 살아가는 일이 힘겨울 때면 문득 마음속 고향처럼 선연히 떠오르는 곳,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만 같은 간이역은 그 이름만으로도 애틋하다.
-75쪽

확실히 청계천에서는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여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것들이 있지요. 정과 믿음, 싼 가격 같은 것입니다."
-95쪽

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향연을 매일 보며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좋지요. 그렇지만 어떨 때는 너무나 냉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별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거든요."-101쪽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삶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하늘, 아니 우주가 내게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내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내가 미물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실감하게 되지요.
-103쪽

언제부턴가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 고통이 언제 어떻게 축복으로 돌변할까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시련은 축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재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141쪽

하지만 절제된 감정이 더 깊은 아픔을 자아내는 법. 그의 하모니카 소리가 그랬다. 듣다 보니 전 씨는 하모니카를 부는 게 아니었다. 그건 자신과 세상의 어둠을 향해 내지르는 그의 목소리였다.
-153쪽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타들어 가는 장작을 보는 일도 공부다. 불을 잘 타게 하는 조건인 아궁이와 장작의 습기는 자연의 선험적 조건을, 크기와 재질에 따른 적절한 장작의 배치는 자아실현에 필수적인 관계성을 생각하게 한다. 완전히 타버린 한 줌 재에서는 진정한 자기 초월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172쪽

왜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What 이 아니라 How의 문제 아닐까?
-173쪽

"죽은 자는 모든 것을 얘기합니다. 시신에는 그가 살아온 사연이 숨김없이 담겨 있지요."
그러니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삶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드러날지니.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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