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구판절판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5쪽

해질녘이면 나는 목욕하기를 좋아한다. 공기에 아직 따스함이 남아 있는 시간.-14쪽

지나와 파올라가 사들이는 앙티크는 정말 멋지다. 하나하나가 그 안에 담겨있을 사연을 환기시킨다. 늙은 자매는, 액세서리는 사랑받은 여자의 인생을 상징한다고 했다.-21쪽

"책은 좋아하면서, 정작 사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오이는."
마빈은 종종 이상스럽게 여긴다.
"읽고 싶을 뿐이지, 갖고 싶은건 아니거든요."-49쪽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인걸요.-50쪽

한 시간쯤 지나자 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졌다. 흙 냄새가 물씬 났다. 책을 덮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비를 바라보았다. 뽀얀 연둣빛 목련 잎을 한잎 한잎 적시는 비. 집으로 돌아와 따스한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 사락사락 공기를 휘감고, 물통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57쪽

"예쁘네." 안젤라는 말하고,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는데." 라고 신비로운 조용함으로 덧붙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는 비가 잎을 흔들고, 공기를 흔들고, 7월의 거리를 적시고 있다. 사륵사륵 희미한 빗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시간도, 장소도, 모든 것이 형태를 빼앗기고 만다.-69쪽

여름은, 모든 거리거리 위에 평등하게 군림하고 있다. 유리창 밖도로에도, 뒷문 앞 쓰리게장과 도둑 고양이 위에도, 일을 끝내고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딘 순간의, 밤공기의 달콤하고 눅눅한 냄새와 벌레 소리 속에도.-76쪽

오후, 안개비가 내렸다. 소리도 없이 공기에 휘감기는 보슬비.-160쪽

상처를 입으면 공격적이 되는 것은 남자들의 본성일까.-199쪽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페데리카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거의 혼자 중얼거리듯.-210쪽

누군가의 가슴속.
비 냄새 나는 싸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것일까.-211쪽

고독할때, 친절과 우정은 고독을 더욱 조장한다. 겨울은 기억을 소생시키는 계절이다.-2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