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구본희 옮김 / 큰나무 / 2001년 2월
품절


하늘을 바라보면 처음에는 밝은 것처럼 느껴진다. 안개를 뚫고 별이라도 보일 것 같지만 별들은 시야에서 벗어나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사라지고, 다만 얼굴과 털외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만이 보일 뿐이다.-33쪽

이때 나는 비단옷 차림의 마음씨 착한 내 친척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분은 이렇게 무서운 죽음의 광경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양산을 들고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수로도 그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판명되자 그녀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깃들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순박하고 이기적인 사랑을 표하며, "얘,이제 가자. 아이 끔찍해라! 앞으로도 네가 여기서 혼자 목욕하고 수영을 할 텐데!"라고 말했을 때 느낀 가슴 아픈 수치감을 기억한다.-43쪽

왜 고향에 돌아오냐고, 혹시 친척이나 집이 고향에 있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건 없지만 항상 고향에 돌아오고 싶어져요." 그가 설명했다. "고향에는 항상 뭔가 사람을 잡아끄는 게 있기 때문이죠."-90쪽

1857년 7월19일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루체른의 호텔 앞에서 방랑하는 초라한 유랑가수가 1시간 반이나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쳤다. 백여 명 가량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었다. 유랑가수는 모두에게 무엇인가 달라고 세 번이나 요청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그를 조롱했다.-106쪽

사회에서는 하인이 유랑가수보다 잘 차려 입었다는 이유로 유랑가수를 모욕하고도 비난받지 않는다. 나는 하인보다 잘 차려 입고 하인을 모욕한다. 스위스인은 나를 자기보다 높다고 생각하나 유랑가수는 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유랑가수와 벗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우리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것이다. 나는 스위스인에게 오만하게 행동했고, 스위스인은 자신이 나보다 열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웨이터는 유랑가수에게 오만하게 행동했고, 유랑가수는 자신이 웨이터보다 열등하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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