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뎁은 주로 반항아에 사회 부적응자를 연기했지만 스크린 밖에서도 문제아이긴 마찬가지. 15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마약에 빠지는가 하면 고등학교가 때려치우는 등 현실로부터 이탈을 즐겼다. 94년 어느 날 호텔에서 난동을 부린다 체포된 사건은 그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런 영화 안팎의 삐딱함은 그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보다는 자신만의 영역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만을 골라 필모그라피를 채워가고 있는 조니 뎁은 1963년 6월 9일 미국 켄터키주 오언즈버러에서 태어났다. 원래 꿈은 록 뮤지션. 고등학교 이후 여러 록밴드를 거치며 연주를 했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플로리다에서 '키즈'라는 밴드를 하던 무렵 헐리웃으로 갔다가 그럴듯한 외모 덕분에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84년 공포 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나이트메어 1-엘름가의 악몽(Nightmare on Elm Street)’에서 여주인공의 남자친구로 등장해 때이른 죽음을 맞은 게 그의 스크린 데뷔작. 이후 폭스 TV의 시리즈물 ‘점프 스트리트21’에서 소년탐정을 연기하면서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TV를 통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자신의 이미지를 털고자 잠시 연기를 접기도 했지만 이내 컬트 영화의 신화적인 인물 존 워터스의 ‘사랑의 눈물(Cry-Baby)’과 팀 버튼 감독을 ‘가위손(Edward Scissorhands)’으로 복귀했다. 특히, 90년대가 발굴한 '기묘한 작가' 팀 버튼의 ‘가위손’은 조니 뎁에게 연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엉뚱할 만큼 색다르지만 기억할 만한 연기로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의 행보는 또래의 스타들(‘브래드 피트’나 ‘키아누 리브스’ 같은)과 확연하게 달랐다. 93년작인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나 에밀 쿠스트리차의 ‘애리조나 드림(Arizona Dream)’, 94년 팀 버튼의 ‘에드 우드(Ed Wood)’, 짐 자무시의 95년작 ‘데드맨(Dead Man)’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팀 버튼 감독과 다시 조우한 영화 ‘에드 우드(Ed Wood)’는 익히 알려진 대로 '사상 최악'의 영화감독인 '에드워드 D 우드 2세'의 전기영화. 이 기이한 감독은 여성 속옷을 수집하는 변태이며 3일 만에 영화를 완성해 내는 비상한(?) 재주를 지닌 감독이다. 흑백의 연출 솜씨도 뛰어 났지만 '에드워드 D 우드 2세'를 멋지게 소화해낸 조니 뎁의 연기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제레미 레밴 감독의 ‘돈 주앙(Don Juan DeMarco)’은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전형으로 알려진 '돈 쥬앙'을 현대판으로 재구성한 영화로 자신을 스페인의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쥬앙이라고 믿고 있는 스물 한살의 청년이 정신과 의사에게 털어놓는 사랑과 열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저 그런 영화로 평가받았지만 조니 뎁이 불멸의 배우 말론 브랜도와 조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짐 자무시의 낯선 서부극 ‘데드 맨(Dead Man)’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황량하고 기이한 여정에 오른 '윌리엄 블레이크'의 무표정함과 황폐한 정서가, 담백한 흑백화면이 그럴 듯하게 어울린다. ‘데드맨(Dead Man)’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단명했지만 '데드맨'을 연기한 조니 뎁은 다시 한번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인상을 심었다.

조니 뎁은 97년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주연을 겸한 첫 연출작 ‘용감한 자(The Brave)’는 인종차별과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던 멕시코계 전과자가 가족과 함께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제로 살인을 자행하는 스너프 필름에 출연한다는 줄거리. 이 '사회적 낙오자'의 이야기는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이후 출연한 97년작 ‘도니 브래스코(Donnie Brasco)’는 개봉 첫주 미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며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원작은 전직 FBI 요원인 조 피스톤이 6년 동안 마피아 세계에 잠입해 보낸 삶을 담은 ‘도니 브래스코, 마피아에서의 비밀스런 생활’이란 자서전.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으로 흥행사가 된 영국출신의 마이크 뉴웰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감독의 솜씨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진짜 매력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있다. 알 파치노는 말할 것도 없고 조니 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얼굴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도니'의 연기로 훌륭하게 성인식을 치렀다는 게 평가다.

팀 버튼 감독과 세 번째로 조우한 영화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는 목 없는 기사의 전설을 다룬 전형적인 팀 버튼표 영화. 조니 뎁이 과학을 신봉하는 조사관 '이차보드 크레인'으로, ‘아담스 패밀리’에서 당돌하고도 묘한 분위기의 소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크리스티나 리치가 '아차보드'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연인 '카트리나'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나인스 게이트(Ninth Gate)’는 1666년 쓰인 '악마의 경전'을 소재로 만든 스럴러물. 섬뜩한 미소를 흘리던 ‘악마의 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평이지만 조니 뎁의 냉철한 연기력만큼은 눈 여겨 볼만하다.

"그냥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걸 해야 한다. 모두 각자 장애를 뛰어넘어 살아남고 나아가야 한다. 내가 더 심하게 세상에 물들지 않고 물질 때문에 자멸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곧 내가 순응주의자란 얘기는 아니다. 난 아마 그런 순응주의자가 못돼 내가 원해도 더 나아지거나 잘 되지는 않을 거다. '잘' 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다 도박이다. 헐리웃 게임이든, 착한 놈이 되는 게임이든 혹은 뭐든 간에 난 이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진 않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다. 그게 내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멋진 일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무시하는 거다. 성공의 노예가 되고 싶진 않다"

- 조니 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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