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석 [─石, Rosetta Stone]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 포병사관 부샤르가 알렉산드리아시(市) 동방 약 60km 떨어진 나일강 하구의 로제타 마을에서 진지(陣地) 구축 중 발굴한 비석조각이다. 발견 당시에는 흑색의 현무암 또는 화강암으로 추정했으나 오늘날에는 화강섬록암으로 보고 있다.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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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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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조각 |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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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로제타 마을 |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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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5세 |
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로 표면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14행의 성각문자(聖刻文字), 중단에는 32행의 디모틱(고대 이집트의 민중문자), 하단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다. 본래는 신전 경내에 세워져 있던 것을 후에 요새구축의 석재로 이용한 것이다. 발견 당시에는 아직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비석의 문자 해독이 그 열쇠라고 생각되어 매우 소중하게 보관되었는데, 1801년 알렉산드리아 개성(開城) 때에 영국군에게 몰수당하여 현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문은 나폴레옹이 간행한 《이집트》지(誌)에 발표되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필사(筆寫)되어 학자들의 연구에 제공되었다. 1802년 S.웨스턴이 그리스문(文)의 영역(英譯)을 발표하였는데, 비석은 국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 대하여 그 독실한 신앙과 덕행을 칭송한 신관(神官)의 송덕문(頌德文)으로 왕의 대관식 거행 다음해인 BC 196년의 기념식날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해 스웨덴의 외교관 J.D.어케르블라드는 민중문자를 연구하여 2∼3개의 고유명사를 해독하였고, 1822년 프랑스의 J.F.샹폴리옹은 이 로제타석과 필레섬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의 건조물)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비교 연구한 결과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왕명(王名)을 실마리로 하여 1822년 성각문자의 해독에 성공하였다.
[출처] 로제타석 [─石, Rosetta Stone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