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귀족 가문의 자존심
바롱 필립 드 로쉴드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로쉴드 가문의 전설의 시작은 18세기말부터 시작된다.
프랑크프루트의 유태인 집단거주 지역에 살던 로쉴드 가문은 처음부터 포도주 사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마이어 암셀 로쉴드는 이 가문의 선각자로 알려져 있다.
중개상이었던 그에겐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자신의 곁에서 비즈니스 기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아들들이 모두 장성한 후에 그는 4명의 아들을 비엔나, 런던, 나폴리, 파리로
보내고 나머지 한명은 프랑크푸르트에 남아 유럽의 대도시의 정보를 교환하여 그의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들 가족은 유대가 깊어 각 도시에 떨어져 있어도 항상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18세기말 유럽은 격동기라고 할 만큼 사건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지만 이들
가족은 변화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만큼 영리하고 수완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왕실의 은행가에서 국민의 정부의 은행가들로 변신하였고, 금융가로서 그 위치를
공고히하며 유럽의 금융계를 지배하는 큰 손들이 되었다.
  4명의 아들 중 런던으로 건너 간 나탄(Nathan)이란 아들은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아 남작(Baron)이 되었다. 나탄의 아들 바롱 나다니엘은 1850년 파리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호탕한 성격이었던 나다니엘은 귀빈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접대하는 것을 즐겼다.

와인의 종주국에서 와인에 대한 재발견을 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 그는
자신만의 와인으로 손님들을 접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1853년 프랑스 메독 지방의 중심에 위치한 뽀이약 마을의
샤또 브란느 무똥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샤또
무똥 로칠드라는 포도주를 탄생시켰다.
  샤또는 성이란 뜻의 불어로 귀족이나 왕족이 살던 큰 성을 의미한다. 무똥은 양이란 동물을 지칭하는 말로 18세기 이전 이 성의 언덕 근처에서 양을 키웠던 것을 의미한다고 어떤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포도원을 갖게 된 나다니엘 남작은 와인에 대한 열정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1855년 만국
박람회때 샤또 무똥 로쉴드는 2등급 와인 중에서 가장 최고의 와인으로 분류되었다.
와인에 대한 로쉴드 가문의 열정을 나다니엘 남작과 그의 아들과 손자를 지나 증손자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되었다.

1922년 바롱 필립은 20살의 나이로 이 포도원을 물려받게 되었고 그의 모든 것이라고 할만큼 와인에
대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의 60년간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어 샤또 무똥 로쉴드는 1973년 프랑스
농업성 으로 부터 1등급(Premier Cru)로 인정받게 되었다.
샤또 무똥 로쉴드는 해마다 라벨을 유명 화가의 작품으로 장식하여 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라벨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현재, 바롱 필립은 그의 고명딸인 바론느 필리핀 드 로쉴드가 이어받아 그 명성을
더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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