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펼쳐지는 장면이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와인.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그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이지만 사용되는 알코올류를 통해 그 영화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은 물론 나아가서는 주인공의 생활 수준, 성격 등을 가늠해볼 수 있기도 하며,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복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와인은 아주 좋은 최상급의 와인이거나 마니아 취향의 독특한 종류가 등장할 때가 많아 애호가들의 눈길을 끈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장면에서도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가 지닌 와인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영화인들 중에서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처럼 자신의 와이너리를 경영할 정도의 전문가도 있으며, 와인 구매를 위해 전용 비행기로 자주 프랑스를 방문한다는 톰 크루즈 같은 와인 애호가도 있다. 또한 로케 지역의 호텔에 지정된 와인이나 샴페인을 준비시키는 배우도 많다고 하니, 그들에게 와인은 자신을 표현하거나 확인받기 위한 브랜드의 제품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다음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영화와 와인, 그중에서도 샴페인이 함께 빚어내는 특별한 풍미를 음미해보자.

코르동 루주 브뤼 <카사블랑카>
샴페인이 가장 빛을 발하는 영화라고 하면 1942년 제작된 <카사블랑카>를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아도 애틋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명화로, 영화에 등장하는 샴페인은 주인공인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짧지만 애틋한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자체가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두 주인공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채 사랑에 빠지는 파리에서의 영상과, 카사블랑카에서 우연히 재회한 후 이루자의 배신을 용서할 수 없던 릭이 사랑을 되찾는 장면에서 샴페인이 등장한다.
릭은 방에서 샴페인을 따며 베일에 싸인 여성 이루자에게 묻는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독일에 의해 파리가 함락당하던 그날. 파리 클럽 오로라에서 샘의 ‘시간이 흐르는 대로’를 들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릭은 마음에 드는 샴페인의 코르크를 딴다. “다 마셔버리자구. 독일인에게 샴페인을 주기는 싫으니까.” 샘이 대답한다. “조금이나마 우울함을 달래줄 거야.” 이루자에게 글라스를 내밀면서 그가 속삭인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Here`s to looking at you, kid)!”
여기에 등장하는 맘(G.H.Mumm)사(社)의 ‘코르동 루주 브뤼(Cordon Rouge Brut)’는 깔끔한 맛의 샴페인이다. 라벨은 흰 바탕에 빨간 사선이 있는 대담한 디자인으로 흑백 영화임에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빨간 리본은 실제로는 프랑스의 레종 도네르 훈장이 모티브로, 영예와 프라이드로 가득 찬 샴페인이고 싶다는 제조사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G.H.맘사는 독일 출신의 맘 형제가 1876년 샹파뉴 지방의 란스에 만든 하우스로, 1876년 ‘코르동 루주 부뤼’를 발매해 인기를 얻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때에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 자산으로 몰수되고, 그후 경매에서 프랑스인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영화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수많은 샴페인 중에서 왜 코르동 루주를 골랐나 하는 것이다. 물론 코르동 루주가 릭의 조국인 미국에서 당시 인기 있는 샴페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적국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즉, 프랑스의 국토가 독일에 점령되는 당시 상황에서, 일찍이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빼앗은 샴페인을 마신다’는 도식이 아닐까 하고. 독일군의 침공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고 있던 릭의 “독일인에게 샴페인을 주기는 싫으니까”라는 대사에도 적국 독일에 s대한 저항의 감정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브뤼 임페리얼 <타이타닉>
1998년 사상 유례없는 롱런 기록을 세우고 많은 화제를 낳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도 샴페인이 등장한다. 잭이 바다에 뛰어들려던 로즈를 구해준 대가로 참석하게 된 만찬 장면에 샴페인이 등장하는데, 사실 스크린을 통해 보았을 때는 병을 싸고 있는 냅킨에 가려 그 종류를 잘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일본을 방문한 모엣(Moet)사(社)의 양조 책임자를 통해 그것이 ‘브뤼 임페리얼(Brut Imperial)’임을 알게 되었다.
잭이 마시던 브뤼 임페리얼은 모엣사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논 빈티지 샴페인으로, 마일드 스타일이다. ‘브뤼’란 드라이한 맛이라는 의미이므로 스파클링 와인의 라벨에 브뤼라는 표시가 있으면 드라이한 맛을 지녔다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샴페인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제조상 차이점에 따라 와인은 일반적으로 와인이라 불리는 ‘스틸(Still)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으로 분류된다. 스파클링 와인은 발포성 와인이라 번역되는데, 즉 기포가 있는 와인이 샴페인인 것이다. 샴페인에 관한 규정이 엄격한 프랑스 국내에서는 샹파뉴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칭한다.
샴페인에는 수확년도 표시가 없는 ‘논 빈티지 샴페인’과 수확년도가 표시되어 있는 ‘빈티지 샴페인’, 또 최고급의 ‘퀴베 프레스티지 샴페인’의 3종류가 있는데, 빈티지 샴페인은 극히 드물어 전체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혹 빈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와인은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나, 샴페인의 경우에는 다르다. 파리 분지의 동쪽에 있는 샹파뉴 지방의 연간 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포도 재배의 북한계선에 가깝기 때문에, 수확하는 해에 따라 포도의 상태나 수확량에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이 지방에서는 각기 다른 빈티지나 여러 곳의 포도밭, 혹은 3가지 품종의 포도에서 만든 원액을 블렌딩함으로써 매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논 빈티지 샴페인은 출하량이 가장 많으며, 각 제조사가 지닌 제조 기법이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제조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보자. 만찬 장면에서 사용되던 샴페인 글라스는 일반적인 파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쿠프형’이라 불리는 것이다. 낮고 넓은 디자인의 쿠프형은 디저트용 용기와 같은 모양으로 안정감이 있어 서비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편리하다. 또한 손님, 특히 목의 주름을 신경쓰는 중년 여성들이 턱을 들지 않고도 마실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따라서 유럽 및 가까운 일본의 황실에서는 파티에 참가하는 귀부인을 배려해 지금도 이 쿠프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라스의 단점은 샴페인의 꽃이라고 하는 기포가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금방 사라져버린다는 데에 있으며, 잔의 입구가 넓어 샴페인의 독특한 향을 즐기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샴페인 본래의 맛이나 향을 즐기고 싶다면 쿠프형보다는 목이 길고 좁은 프루트형 글라스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 위에서 소개한 영화들을 사랑하는 가족, 혹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 자리에 샴페인도 함께 한다면 더욱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 브뤼 임페리얼(Moet& Chandon Brut Imperial)
샴페인업계 1위의 실적을 자랑하는 수출업자 모엣 & 샹동(Moet& Chandon)사의 간판 샴페인. 원료인 포도의 순수함을 그대로 살린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 코르동 루주 브뤼(G.H.Mumm Cordon Rouge Brut)
프레시한 배 그리고 갓 구운 빵의 향기가 나는 소프트하면서 부드러운 샴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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