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와인을 그녀 앞에서 테이스팅하는 남자. 하지만 단지 좋다는 한마디
외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난감했던 상황,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좀더 멋지고 격조 있게 와인을 평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들. 이제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어택(Attack)
배구경기 용어로 친숙한 ‘어택’이라는 단어가 와인 표현에도 사용된다. 와인의 어택은 입에 머금은 순간에 느끼는 자극, 즉 맛의 첫인상을 가리킨다. 와인을 입안에 머금으면 혀끝을 통해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므로 어택은 혀끝부터 가운데쯤에서 느끼는 맛, 단맛과 신맛부터 먼저 느끼게 되는 종합적인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표현 방법은 ‘어택은 강하고…’, 혹은 ‘어택은 부드럽고…’등.

보디(Body)
보디란 와인의 감칠맛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감칠맛이 있는 무거운 와인은 ‘풀 보디(Full Body)’, 경쾌한 와인은 ‘라이트 보디(Light Body)’, 그 중간은 ‘미디엄 보디(Medium Body)’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왜 와인의 맛을 인간의 몸에 비유하게 된 것일까? 이는 와인 맛이 퍼지는 형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와인을 입에 넣는 순간 한번에 맛이 펴지는 것이 아니라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맛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고, 삼킨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 즉, 어택이라 불리는 첫인상,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서 맞게 되는 클라이맥스, 그리고 여운 이 3단계로 나뉜다.
이는 머리가 있고, 가운데가 가장 부풀어 있으며, 마지막이 길게 뻗은 인간의 몸과 비슷하다. 중간 부분이 굵고 무거운 와인의 맛. 이것을 인간의 몸체에 비유해 보디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만약 와인의 중량감이 느껴진다면, 단순히 ‘풀 보디’라고 표현하기보다는 ‘Glamour’라든가 ‘골격이 단단하다’등 사람의 몸에 비유하고, 가볍고 프레시한 인상이라면 ‘날씬하고 귀엽다’등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응축(Intensity)
와인의 맛을 표현할 때 역시 ‘응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좋다. 구체적으로는 ‘응축된 과일의 맛이 느껴진다’등으로 표현한다. 응축된 과일의 맛이라는 표현은 기후가 좋았던 해에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응축된 맛을 지닌 와인이란 살이 꽉 찬 맛있는 게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만약 맛있는 게 요리와 응축감 있는 샤블리 그랑 크뤼(Chablis Grand Cru)의 화이트 와인을 함께한다면 와인에 있어 응축된 맛이 어떤 것인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운(Length)
누구나 좋은 음악을 듣고 난 뒤, 혹은 훌륭한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고 난 뒤 그 작품의 뒷맛에 취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와인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그 맛의 여운을 즐긴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와인은 색, 향, 맛을 즐기는 술인데, 한 모금 마신 후 입안에 남는 감각, 이른바 여운이 상당히 중요시되며 여운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따라 그 와인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운이 오래 남을수록 질 좋은 와인, 즉 고급 와인이다.
이는 이웃나라 일본의 술 정종의 기준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물처럼 한 번에 목을 통하는 깔끔하면서도 드라이한 맛의 술이 일본에서는 고급술로 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맥주 역시 목으로 넘어가는 깔끔한 맛을 강조하곤 한다. 이러한 차이는 아무래도 깔끔한 맛을 중시하는 일본과 여운을 중시하는 서양 음식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담백한 맛의 일본 요리에 짙은 맛의 술을 곁들이면 섬세한 요리의 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짙은 맛의 프랑스 요리에 깔끔한 술을 곁들여도 술 맛이 요리 맛에 희석되어 제대로 감상할 수 없게 된다. 요리에 와인을 곁들일 때는 요리의 여운보다 약간 짧은 여운을 지니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요리와 와인을 동시에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와인을 마신 뒤 최소 3초 이상 목젖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면 여운이라는 표현은 타당하지 않다.

밸런스(Balance)
맛의 밸런스가 좋은 와인이란 대체 무엇과 무엇의 균형이 잘 맞는 상태일까? 우선은 화이트, 레드 와인의 맛의 구성 요소부터 살펴보자. 화이트 와인의 맛은 신맛과 단맛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레드 와인은 신맛과 단맛 그리고 떫은맛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즉,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큰 차이점은 ‘떫은맛’의 유무이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밸런스에 관한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 와인이라면 신맛에 대한 단맛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지, 레드 와인이라면 떫은맛과 신맛에 대한 단맛의 밸런스가 잡혀 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드라이한 맛의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은 완전 발효된 상태이기 때문에 포도 당분이 남아 있지 않아 단맛이 없지 않은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단맛’이란 포도에 포함되어 있는 당분의 단맛이 아니라 발효에 의해 생기는 알코올이나 글리세린이라는 성분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단맛을 가리킨다.

빌로드(Veludo)
와인의 감칠맛은 보디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이처럼 몸이 있는 이상 와인도 옷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와인 세계에서는 혀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옷의 소재에 비유해서 ‘빌로드’라고 표현한다. 숙성 타입의 레드 와인은 젊을 때 마시면 타닌의 자극이 강하고 톡 쏘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숙성이 진행됨에 따라 타닌이 순해지고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맛으로 변한다. ‘빌로드’란 레드 와인이 도달하는 최고의 혀끝 맛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또한 빌로드와 함께 ‘실키(Silky)’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된다. 실크 역시 촉감이 부드러운 고급 소재이지만, 빌로드만큼 두께는 없다. 그러므로 혀끝 감촉이 부드러우면서, 약간 가벼운 보디의 레드 와인에는 실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복잡성(Complexity)
‘Simple is Best’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패션이나 인테리어에서 ‘심플한 디자인’이라고 말할 경우, 심플하다는 표현은 칭찬을 의미한다. 그런데 와인의 경우에는 이와 정반대의 의미가 되어버린다. 와인 세계에서는 ‘Simple is Best’가 아니라 ‘Complexity is Best’가 상식. 복잡한 와인은 이른바 ‘그레이트한(Great) 와인’이라고 평가되며, 반대로 향이나 맛이 심플한 와인은 ‘심플’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단순’, ‘평범’등으로 평가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복잡한 향이나 맛을 지닌 와인이란 어떤 와인일까. 솔직히 지극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나, 향에 관해 굳이 말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과일잼 향이나, 향신료의 향, 요오드 향이라든지, 초콜릿 향, 동물성 향 등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다시 한 번 향을 확인하려고 코를 갖다 대면 또 새로운 향이 나는, 계속 변화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는 와인 표현에 곤란함을 느낄 때 ‘복잡한 향’이라든지 ‘복잡한 맛’이라고 대답한다면 평균 이상의 표현은 될 것이라 본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와인 테이스팅과 표현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와인도 긍정적으로 또한 좋은 점을 찾아 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그 와인과 같이하는 식사도 더욱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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