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
그중에서도 우안에 위치한 생테밀리옹과 포메롤은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의 보고로 손꼽힌다.
 
보르도 지방 도르도뉴강 우측에 위치한 생테밀리옹(St.-Emilion)이나 포메롤(Pomerol) 지구의 와인은 왼편의 메독(Mêoc)이나 그라브(Graves) 지구에 비해 와인의 품질에 상응하는 평판을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
생테밀리옹 지구는 상당히 고지대에 위치한다. 토양의 성분은 메독이나 그라브와 달리 석회암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와인의 품종은 메를로(Merlot)가 중심.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이 주가 되는 메독, 그라브 지구의 와인과는 다르게 부드러우면서도 보디가 있으며 떫은맛이 적은 와인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또한 생테밀리옹 지구는 높은 언덕의 동쪽 경사면은 석회암 지질, 평지는 자갈이 많은 지질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자를 코트(언덕), 후자를 그라브(자갈)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그라브 지역을 보르도의 그라브 지구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코트 지역 와인은 경질(硬質)로서 섬세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반대로 그라브 지역의 와인은 부드러우면서 풍만한 보디의 여성 이미지를 지닌 따뜻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리브르느를 뒤로 하고 도르도뉴강을 건너 동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생테밀리옹의 언덕에 오르는 좁은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왼쪽 약간 높은 경사면 위에 있는 있는 것이 ‘샤토 오존(Châeau Ausone)’으로, 보랏빛이 도는 회색 지붕의 품격 있는 건물이 자리해 있으며, 지하 와인 창고 역시 신비한 적막감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이 주변은 코트 지역을 대표하는 샤토인 벨에르(Belair), 라 가페리에(La Gaffeliere), 파비에(Pavie) 등이 인접해 있는데, 샤토 오존의 와인은 자연스럽게 갖추어진 색과 향, 그리고 기품 있는 맛으로 유명하다.
한편, 언덕 위 샤토 피작의 밭 저편에 보이는 ‘샤토 슈발 블랑(Ch뎥eau Cheval Blanc, 백마의 샤토)’은 역사나 건물 모두 오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로맨틱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입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운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의 왕’이라고 불리던 앙리 4세(1589~1610)가 샤토의 전신인 숙소에 백마를 타고 와서는 와인을 마시면서 즐겁게 하루를 지냈다는 이야기에서 슈발 블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 와인은 다양한 향과 맛이 짙게 섞여 있어서, 구름이 피어오르듯 향이 올라오고, 부드러운 터치와 보디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 블랑은 생테밀리옹 지구 와인에 대한 1955년 제1회 공식 등급 이후 몇 번에 걸쳐 반복된 등급 심사에서 항상 초특급A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 두 가지 와인을 동시에 마실 기회가 있다면 우선은 슈발 블랑, 그 다음 오존의 순서가 좋을 듯싶다. 슈발 블랑을 통해 풍부한 와인의 보디를 감상하고, 오존을 통해 그 위에 입는 의상의 우아함을 느끼면 좋겠다.
생테밀리옹의 코트 지역과 그라브 지역에는,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 블랑을 각각의 톱(Top)인 초특급A에 두고, 그 아래 제1특급, 특급, 우수급 3개의 등급으로 나눈 실로 수많은 샤토가 있다. 라벨에 제1특급은 ‘Premier Grand Cru Classe’, 특급은 ‘Grand Cru Classe’, 우수급은 ‘Grand Cru’라는 표기가 있으므로 구입 시 잘 살펴보도록 한다.
생테밀리옹의 북서쪽으로 리브르느시(市) 뒤쪽 고지대에 위치한 와인 산지가 포메롤이다. 특별히 훌륭한 샤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뜻 보면 평범한 시골마을과 와인밭이 있을 뿐이지만 이곳에서 생산하는 레드 와인 중에는 보르도에서도 손꼽히는 명품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품질로, 메독의 초일류 와인인 샤토 라피트나 샤토 라투르, 샤토 무통 이상의 고가로 통하는 와인이 샤토 페트뤼스(Petrus)이다. 13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포메롤의 토지는 성 요한 기사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판매가 아닌 순례자 접대용이나 교회, 수도원에서만 이용되었다. 그후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생테밀리옹이나 포메롤 와인의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메독 지구의 공식 와인 등급 등에서 이 두 곳은 시골의 세련되지 않은 와인, 진흙 향이 나는 와인으로 평가되어 등급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포메롤에는 이른바 진흙 속의 진주라는 표현처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걸작이 많았다.
1889년 파리박람회에 출품된 포메롤의 샤토 페트뤼스가 당시를 풍미하던 유명 와인을 제치고 금상을 차지했다. 성 페테로에서 이름을 딴 이 와인은 뛰어난 품질로 자신의 샤토뿐만 아니라 포메롤 지구 전체의 와인에 영광을 안겨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뉴욕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레스토랑 ‘라 파비용’에 케네디 일가, 윈저 공작가(家), 그리스의 해운왕 오나시스 등 세계의 유명인들이 자주 들르곤 했는데, 그들의 목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뿐만 아니라 오너인 앙리 소레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레드 와인인 샤토 페트뤼스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유명한 와인이라는 와인은 전부 마셔보고, 미식(美食)에 익숙해 있던 세계의 명사들이 페트뤼스의 맛에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곧바로 추앙자가 되어버린 것.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상류층이 마시는, 말하자면 지위를 나타내주는 상징이 되었다.
모튼 샹드는 ‘막 피어난 제비꽃 향과 감추어져 있는 이끼 향의 흔적을 남기는, 풍부한 송로버섯 향’이라고 페트뤼스를 평가했다. “생테밀리옹에 있어서는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 블랑이 함께 영광의 자리를 나누어 갖고 있지만, 샤토 페트뤼스는 자랑스럽게 혼자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어떠한 공식 등급도 아닌 전세계 와인 애호가의 찬미에 의해서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디비드 페파콘. 둘 다 와인계에서는 저명하고 뛰어난 평론가이다.
포메롤 지구의 와인에는 공식 등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다른 지역에서 평가되는 등급이나 와인 전문가의 감정보다는 역사를 통해 자연적으로 무언의 평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샤토 페트뤼스는 그 정점에 위치하는 ‘무관(無冠)의 제왕인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와인들을 일생 한 번이라도 마실 기회가 있다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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