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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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가의 책을 사백 권으로 제한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책은 감정적 가치 때문에, 도 어떤 책은 틈만 나면 되풀이해 읽는 것이라 서가에 남았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한평생 정성을 다해 꾸민 서가라도, 주인이 죽고 나면 결국 무게 단위로 팔아치우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모든 책을 집에 모셔놓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친구들에게 교양을 과시하려고? 벽이 허전해서 장식용으로? 내가 산 책들은 내 집에서보다 공공도서관에서 훨씬 널리 읽힐 것이다.-99~98쪽

우리의 책을 여행시키자. 다른 이들의 손에 닿고, 다른 이들의 눈이 즐길 수 있도록. ‘다시는 펼쳐지지 않을 책들’이 나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 한편이 어렴풋이 떠오른다.-100쪽

이젠 기억에도 아득한 베를렌의 시구가,
더는 발길 닿지 않을 거리가,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비춰본 거울이,
다시는 열지 않을 문이 있다.
내 눈앞 저 서가에
다시는 펼쳐지지 않을 책들이 있다.

내가 책들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감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다. 나는 그 책들을 다시 펼쳐보지 않을 것이다. 새롭고 흥미로운 책들은 부단히 쏟아져나오고, 나는 그런 책들을 계속 읽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서가를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이다. 어린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펼쳐보게 되는 책들은 대개 그림과 글씨가 섞인 그림책 전집류라고 한다. 하지만 사인회 때,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내 책을 들고 오는 독자들을 만나는 것 역시 멋진 일이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여남은 번도 넘게 돌아다닌 책. 그 책을 쓰는 동안 작가의 영혼이 여행을 했듯이, 책 역시 나름의 여행을 한 것이다.-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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