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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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하사관들 중에는 검은 머리의 작은 슬로바키아인이 하나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전혀 잔혹성도 없고 온건한 하사였다. 그가 착한 것은 그저 바보라서일 뿐이라고 빈정대는 이들도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우리 사이에서 그는 평판이 좋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하사관들은 우리와 달리 무장을 하고 있었고 이따금 사격을 하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이 자그마한 하사가 사격 연습에서 최고 점수로 특상을 받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마구 그를 추켜세우자 그는 뿌듯해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날 우연히 그와 단둘이 있게 된 적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나는 그냥, '도데체 어떻게 총을 그렇게 정확하게 쏘세요?'라고 물을 건넸다.
그 작은 하사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 나는 특별한 게 있지. 이건 양철 표적이 아니다, 이건 제국주의자다, 그렇게 속으로 말하는 거야. 그래서 분노로 부글부글 끓으며 과녁 복판을 직방으로 맞춘다니까'
-78쪽

나는 그게 제국주의자라고 하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어떤 인간을 상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심각하고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너희가 왜 그렇게 나한테 박수를 치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 생각해 봐. 전쟁이 터지면 어쨌거나 내가 총을 쏘게 되는 건 바로 너희들일 텐데!'
우리에게 목소리를 높여 야단 한번 친 적이 없는=그래서 나중에는 전속이 되기까지 한 - 이 순진한 존재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때, 나는 당과 동지들에게 나를 연결시켜 주었던 끝이 이제,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내 손에서 스르르 풀려 떨어지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의 길 밖으로 내던져 진것이었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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