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구판절판


당시의 자식 된 도리란 - 확실히 뭔가를 외우는 일에서 시작해 뭔가를 외우는 일로 끝을 맺곤 했다. 예컨대 구구단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국민체조의 순서를 외우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애국가의 1,2,3,4절 가사를 외우고, 교과서를 외우고, 공책을 외우고, 전과를 외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압권은 단연 국민교육헌장이었다. 실로 지극한 효성의 자식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그 도리를 다할 수 없을 만큼이나 그것은 길고, 까다로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잇었다.-.쪽


그날 밤 나는, 낡고 먼지 낀 내 방의 창문을 통해 - 저 캄캄한 어둠 속에 융기해 있는 새로운 세 개의 지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서민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지층들이었고, 각자가 묻힌 지층 속에서 오늘도 화석처럼 잠들어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얼둘을 떠올릴수 있었다. 나는 보았다. 꽤 노력도 하고, 평범하게 살면서도 수치와 치욕을 겪으며 서민층에 묻혀 있는 수많은 얼글들을. 무진장, 혹은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면서도 그저 그런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중산층에 파묻혀 있는 수많은 얼굴들을. 그리고 도무지 그 안부를 알 길이 없는 - 이 프로의 세계에서 방출되거나 철거되어- 저 수십 km 아래의 현무암층이나 석회암층에 파묻혀 있을 수 많은 사람들을 나는 보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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