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 X파일
시즈미 마사시 지음 / 좋은책만들기 / 1999년 12월
절판


선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그림의 '응징'은 섬뜩한 면이 있다. 그에게 선과 정의는 빨간 모자와 할머니, 사냥꾼이며, 악과 불의를 상징하는 것은 늑대뿐이다. 못된 늑대에게 잡아먹혔지만 정의의 사자 사냥꾼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 이상, 빨간 모자는 온갖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늑대를 벌해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내린 가혹한 벌에 대해 놀라거나 너무 심하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빨간 모자의 행동, 즉 커다란 돌을 뱃속에 넣고 꿰맨 것을 보면 늑대를 향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 모두 빨간 모자의 잔인한 행동을 용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귀여운 여자아이를 잡아먹은 늑대는 나쁘다. 하지만 늑대의 배를 가르고 그 속에 돌을 집어넣고 꿰매는 일을 능청스럽게 저지르는 세 사람, 즉 빨간 모자, 할머니, 사냥꾼 역시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닌가?
(계속)-.쪽

동화뿐 아니라 여느 소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편협한 생각에 치우쳐 있는 작가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두말할 것도 없이 『빨간 모자』의 화자는 빨간 모자 편에 서 있으므로 늑대는 어떻게 되든 중요하지 않다. 늑대는 이 작품 속에서 악역만을 맡아야 하며, 만약 늑대의 입장을 변호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작품 전체가 뿌리부터 흔들릴 우려가 있다. 화자의 입장에서는 늑대의 악행을 단호히 처벌하고 모든 독자에게 빨간 모자의 복수를 정당화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선을 부르짖는 그림은 뱃속에 커다란 돌을 넣은 늑대를 가엾게 여기는 독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듯하다. 아니면 스스로 정의의 사자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독일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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