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국고대사 - 고조선에서 발해까지, 우리 역사를 찾아서
조법종 외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월
품절


단군관련 기록을 신화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시조 제사의식에 초월적이고 신비한 이야기 형식으로 구전되다가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면서 종교적 신화형태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쪽

과거 일본 학자들은 신화를 '만들어져 정해진 이야기'인 설화로 규정해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 전승 집단이 이야기 형식으로 공동의 기억(역사)과 신념 체계(신앙)를 전승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다. 특히 단군신화는 건국 시조신화 및 정치적 국가 체제의 출발을 설명한 최초의 기록임과 동시에 후속 국가의 건국 시조신화의 원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사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쪽

단군신화는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종족이 서로 융합해 우리 민족을 형성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족 시조신화이자 건국신화로 정리 되었다.-.쪽

부여의 건국설화와 관련되어 '논형'에 수록된 부여의 '동명설화'와 '위서'에 실려 있는 고구려의 '주몽 설화'는 서로 뒤얽혀있다. '논형'의 '동명'은 보여의 시조로서, 고구려 시조인 '주몽 혹은 추모'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이해하되, 고구려의 '주몽 서로하'는 부여의 '동명 설화'에 바탕을 둔것이라고 이해함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쪽

우리 선학들은 이미 윷놀이판의 '모,개,걸,도'등이 부여의 '4가'와 유사함에 착안해 윷판이 당시 부여의 관제를 표시한 것으로 주장한 바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 '4가'와 '4출도'를 연계시켜 '4가'를 지방 통치조직의 운영자로 파악하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쪽

고구려의 역사 가운데 흔히 4-5세기의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의 발전기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광개토왕의 활발한 정복 활동은 소수림왕이 정비한 국내 정치의 안정에서 가능하였다. 소수림왕은 국가적인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드는데 훌륭한 역할을 한 지도자로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쪽

박혁거세의 등장을 알린 말은 고대 사회에서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또 부여나 고구려의 시조신화에서 볼수 있듯이, 하늘에서 비추는 빛 또한 임신과 출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혁거세 신화는 하늘의 자손이 강림하는 촌송강림형 요소와 함께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난생신화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쪽

가야 제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600년 동안이나 독자적인 역사를 영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삼국 시대라는 말에 익숙하다. 우리의 고대사를 삼국만의 역사로 인식할 때, 가야 제국을 비롯한 다른 고대 왕국의 역사는 무시 될수 밖에 없다. 우리 고대사를 완전하게 복원하는 데도 문제가 있고, 600년 동안 가야의 역사가 전개되었고 고대 영남 지역의 역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북쪽의 만주에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라는 한민족의 또 다른 고대 국가가 무려 1천년 이상 존재하였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우리의 고대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고대사를 연구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삼국 시대가 아니라 부여나 가야를 모두 포함하여 열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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