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장수에게 쫓길 때 아들의 말을 뺏어 타고 달아나 목숨을 건지고 뒷날을 기약했다. 그런데도 원소는 어린 아들의 병으로 마음이 흔들려 실로 얻기 힘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조조가 던져졌던 상황이 원소보다 더 극한적인 것이었고, 또 감상적인 이들에겐 원소의 그 같은 다감함이 훨씬 인간적으로 보일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천하를 다투는 싸움터에 발을 들여 놓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입장에서 볼 때 원소의 그 같은 다감함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뿐이었다.-37쪽
관우는 자부심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예와 덕성은 물론 외모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차있었다. 자부심이란 종종 그것이 성실한 인격의 뒷받침이 있는 한 자기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사실 관우를 한낱 떠도는 협객에서 천하가 알아주는 충의지사로 길러간 것은 바로 그런 자부심이 바탕된 자기 발전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또한 자부심은 종종 자신의 능력과 이상을 혼돈시키기도 한다는 데서 그 소유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기도 한다. 관우의 경우도 그 예외는 아니어서 일생을 그 자부심 때문에 부침을 되풀이하는데 그날 그를 아득한 슬픔과 비관의 정조에서 끌어낸 것도 그 자부심이었다.-62쪽
"지난날 내가 미인이며 비단과 금은을 보낼 때는 절하며 받는 일이 없더니 이제 말을 주자 이토록 기뻐하며 두 번 세 번 절하시는 구료. 어찌하여 사람은 천하게 여기면서 한낱 짐승은 이토록 귀히 여기시는 거요?"
그러자 관우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저는 이 적토마가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다행히 이 말을 얻게 되었으니 만약 형님이 계신 곳을 알게 된다면 하루로 달려가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승상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감탄할 만한 의리요 정이었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한편 놀라고 한편 후회하였으니 이미 늦은 뒤였다. 소태 씹은 기분으로 거듭 감사를 올리며 적토마를 끌고 가는 관우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