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품절


도시 전체가 카니발 준비로 들썩였다.
베네치아의 여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흰 살결을 드러낸 그녀들은 번쩍이는 온갖 장신구와 보석, 목걸이, 진주, 새틴 드레이프로 몸을 치장하곤 웃옷을 꼭 조여 가슴을 반쯤 드러내 보였다. 하늘거리는 옷자락과 레이스의 향연이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운 황금색 머리칼이 돋보이도록 최대한 공을 들여 쪽을 지거나 왕관 주위로 말아 올리는가 하면, 모자를 쓰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모양대로 풍성하게 흘려 내리기도 했다. 또 거꾸로 빗어 올려 부풀리거나,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기도 하면서 기상천외한 모양새들을 시도했다.
변장을 마치면 그녀들은 고귀한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행동 규범에 따라 머리를 곧게 세우고 걸었으며, 최고 귀족의 위엄을 짐짓 가장하면서 옷매무새며 몸가짐 모두를 우아하고 당당하게 연출했다. 카니발의 계절이 돌아오면 그녀들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강렬한 연모와 욕망의 대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니던가. 이런 무언의 자신감이 그녀들 미감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실로 미의 홍수, 유혹의 색들이 그리는 무지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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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않았다. 낭떠러지 옆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그를 보며 사람들은 현기증을 느꼈고, 이는 그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자유에는 대가가 따랐다. 자유를 얻는 대신, 그는 사람들의 격렬한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신앙이나 도덕의 결여는 대부분의 경우 그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하지 못한 욕망의 반영에 불과했다. 그는 권력에 봉사하는 동시에 권력을 불편하게 했고, 모든 형태의 권위에 반발했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바로 그것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들이 그의 언행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를 비방하는 자들의 내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모방하길 원하는 것까지는 쉬웠다. 그러나 문명사회라면 어디서든 금기시될 마음의 소리에 투신을 감행한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피에트로는 결코 불안에 압도된 나머지 고개를 돌리는 일이 없었다. 그가 마음의 흐름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은 바로 이 불안이 주는 현기증을 마주하기 위해서였고, 그는 현기증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거기에서 흥분을 느꼈다. 신, 사랑, 여자는 모두 그의 영혼에 불을 지피며 그 안에서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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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레토, 인간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게 뭔지 아나?"
"아뇨, 하지만 주인님이 가르쳐 주시겠죠."
"저 빌라들을 봐. 저 궁전, 아름다운 석호, 이 풍요로움을 봐. 그리고 저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를 들어 봐. 인간을 죽이는 건 빈곤이 아니야."
"그래요?"
"그래. 빈곤은 인간의 탐욕을 불러일으키지 않거든."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건 풍요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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