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구판절판


"우리 소아자를 제게 돌려주십시오. 폐하, 은덕을 베풀어 제발 소아자를 출궁시켜주십시오."
"저 노파가 대체 뭐라는 거냐? 소아자가 누구냐?"
나는 금의위 무사에게 물엇다.
"소인도 잘 모르옵니다. 아마도 민간에서 뽑혀 온 궁녀인 듯 싶습니다."
"소아자가 누구냐? 누가 소아자를 아느냐? 저 노부인이 소리 지르며 우는 소리를 들으니 몹시 심란하구나."
나는 창 너머로 마차를 타고 있는 한 궁녀에게 물었다.
"소아자는 선왕을 모시던 궁녀었던지라, 선왕께서 붕어하셨을 때 함께 순장되었습니다."-70쪽

나는 소아자라는 궁녀의 모습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섭궁의 팔백 궁녀는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아리따운 자태를 지니고 있어서 모두 엇비슷해보였다. 그들은 마치 삼궁육원의 수많은 나뭇가지에 피러아는 꽃들처럼 남몰래 자라나서 흐드러졌다가는 또한 소리 없이 져버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소아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고, 다만 동척산 아래 무덤만이 생각났다. 갑자기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기묘하게도 코끝을 파고 들었다.-71쪽

나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불현듯 아주 오래전에 승려 각공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대섭궁이 언제까지나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순식간에 그것을 산산조각 내서 저 하늘 멀리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느 날 그대가 왕이 된다면, 왕궁 안에 가득한 미인들과 수많은 금은보화를 갖게 된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이 텅 비어, 한 조각 나뭇잎처럼 바람속을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180쪽

시간이 흐르자 팽나라와 진나라, 적나라가 서로 사우게 되었다. 전쟁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아이들과 여인들의 손을 잡고 하나둘씩 고죽산으로 들어왔다. 고죽산은 차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은 산 아래에 모여 살게 되었다. 맑은 아침이면, 그들은 산허리에 있는 절에서 어떤 괴팔한 승려 하나가 두 소나무 사이에 높디 높게 줄을 걸어놓고 새가 나는 것처럼 빠르게 내달리거나 학이 서 있는 것처럼 한가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낮에는 줄을 타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논어'를 읽고 도 읽으며 무수한 밤을 보냈다. 나는 어떤 날은 이 성현의 책이 세상 만물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고 느꼈고, 도 어떤 날은 거기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느꼈다.-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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