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4
유일한 지음 / 청어 / 2003년 8월
절판


7층에서도 역시 엘리베이터는 멈췄지. 이번에야말로 내려서 계단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 그런데 내려서 복도 저쪽 끝에 있는 계단을 보니, 전등이 나갔는지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어. 아직 7층에는 입주자가 하나도 없는지, 복도에는 불빛 한 점 없는 거야. 단지 복도 끝의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파란불만 보일 뿐,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였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가볼까 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공포감은 평소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어. 난 도저히 그 암흑 속으로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 기분 나쁜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탔지. 그때까지 엘리베이터는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이 올라가지 않고 있었어.

-> 정말 보이지 않는 공포는 자신의 심장을 갉아먹는것 같을것 같네요.-.쪽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자유야! 나도 알아!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얼마나 흔하고 빤한 얘기인지! 그런데 어떡하니? 나는 정말로 그런 일들을 경험했는데……. 너희들 잘 생각해봐. 그런 떠도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다 지어낸 것일까? 혹시 누군가가 경험한 얘기가 퍼지고 퍼져 사람들이 흔히 알게 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잖아. 나도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한 귀신 얘기를 내가 경험하고 있더라고. 마치 무슨 흔해 빠진 삼류 공포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관습적인 귀신 얘기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미칠 것 같았어."-.쪽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는 교실로 귀신이 지나가면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진다는 사실을 일본에서 심령학자와 통계학자가 과학적으로 증명한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났다. 60명이 이야기하다가 동시에 소리가 그칠 확률은 100만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언어의 음절 수, 말의 평균 길이 등을 감안한 계산 결과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100만분의 1이란 희박한 확률과 종종 마주친다는 것이었다.-.쪽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1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그러다 보니 삶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1분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시간이리라.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1분은 나의 지난 전 생애보다도 더 값진 시간이었다.
숫자 12에서 출발했던 시침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결국 1분은 그렇게 끝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1분이 지났는데요. 지금은 3시 46분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이 몇년도 몇월 며칠이지요?"
그녀는 나의 뚱딴지 같은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되겠군요. 2002년 5월 13일 3시 45분부터 46분까지 나는 당신과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단 둘이서……. 이 시간은 아무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마저도……. 정말 감사합니다. 나에게 이처럼 소중한 추억과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그녀는 처음엔 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띠곤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행복하십시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고개를 드니 병원에서 보았던 일한이라는 사내가 저편에서 바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서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 나에게도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비록 1분에 불과했지만, 난 불성실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서 한 사랑보다 더 깊이 그녀를 사랑했노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마음속은 더없이 평온했다. 그동안 험악하게 몰아치던 분노와 시기의 태풍도 피눈물을 동반한 비바람도 멎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행복을 간절히 빌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룬 사람처럼 행복했다. 이제 그녀의 행복을 빌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아주 짧지만 그녀 인생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었으니까……. 아무 여한도 없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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