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듯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다. 이런 발상은 끔찍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예시에서 여자는 남자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11쪽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란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에게 공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거의 같은 뜻을 지닌 연민은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관용심을 암시한다.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 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28쪽
신분상승을 끊임없이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이 갖춰진 전망대에서는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71쪽
러시아 제국 시절에 발생했던 모든 범죄는 은밀한 그늘 속에 가려져 자행되었다. 50만 명에 달하는 리투아니아인의 수용소 수감,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 학살, 크리미아의 타르타르족 멸족등, 이 모든 것은 사진의 증거가 없으니 머지 않아 꾸며낸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기억에 남을 뿐이다. 반면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어 세계 도처의 문서 보관소에 보관 되어 있다.-78쪽
그것은 침공 후 일곱번째 날이었고, 그 당시 저항 세력의 대변인으로 변한 한 일간지 편집실에서 그녀는 이 연설을 들었다. 그방에서 두브체크의 연설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증오했다. 그가 양보했던 타협안에 대해 그를 원망했고 그의 모욕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으며 그의 허약함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지금 취리히에서 그 순간을 생각하니 그녀는 두브체크에 대해 더 이상 어떤 경멸감도 느끼지 않았다. 허약함이란 단어도 더 이상 비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두브체크처럼 운동 선수의 체격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자기보다 우세한 위력을 대하면 항상 허약해지는 법이다. 당시에는 참을 수 없었고 역겨웠던 이 허약함, 또한 자신의 나라로부터 추방당하게 만든 이 허약함에 대해 그녀는 측은함을 느꼈다. 그녀는 약한 사람들의 편, 약한 사람들의 진영, 약한 사람들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그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약했기 때문이고 연설중에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현기증에 끌리듯 이런 허약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자신도 허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그녀는 다시 질투에 빠졌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토마스가 이를 눈치채고 평소에 하던 동작을 했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잡고 손가락을 꼭 눌러주었다. 그녀가 손을 꼽았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야?" "당신이 늙어 있길 바래요. 지금보다 열 살 더. 스무 살 더요."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약하길 바래요. 당신도 나처럼 약하길 바래요"였다.-85쪽
배신.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학교 선생님들은, 배신이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것이라고 누차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배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배신한다는 것은 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신이란 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사비나에게 미지로 떠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107쪽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몰랐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였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 벗어날 수 있을까? (중략) 그래서 토마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상기했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줄 몰랐었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그는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토마스는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았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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