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밤잠 잘 자는 사람들, 세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간이 어둠의 시간과 빛의 시간으로, 즉 쉬는 데 써야 하는 밤과 움직이는 데 써야 하는 낮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 괴롭기만 하다. 밤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도는 유목민이다. 그러니 요즘 같은 세상에선 거주지를 제한당한 집시처럼 신세가 처량할 수밖에. 하지만 일단 그들만의 호텔, 접이식 의자가 침대를 대신하는 '야간열차 호텔'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들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그래서 야간열차 안은 아랍의 시장 바닥처럼 술렁거린다. 복도는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빈다. 이미 친한 사람들,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과거에 작별인사를 하고 미래를 마주하며 무자비한 현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느라 분주하다. 단골손님이라야 제대로 찾아올 수 있는 이 호텔에서는 꿈과 사색과 명상이 제자리를 찾는다. 지나치게 낮만 중요시하는 사회, 사람들이 자신만의 내밀한 영역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 사회가 불법적인 것으로 여겨 내칠 위기에 처한 그 모든 것들이.-.쪽
과학자들이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에게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는 아마 폴 랑주뱅Paul Langevin의 '쌍둥이 형제 패러독스'일 것이다. 가령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만 열차로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플랫폼에 남는다고 가정할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가만히 있었던 사람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덜 늙어 있다는 것이 쌍둥이 형제 패러독스의 내용이다. 떠나는 건 자신을 죽이는 거라고? 상대성이론은 이 케케묵은 속담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떠나는 건 자신을 살리는, 즉 조금 더 오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관념이 다르다고 말하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열차 여행, 그것도 야간열차 여행을 즐기는 사람의 인생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한층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철도는 요즘 세상에 몇 안 되는 특별한 순찰로, 시간의 틈새를 살펴볼 수 있는 순찰로니까. -.쪽
열차, 그중에서도 야간열차 덕분에 나는 느림에 대한 욕구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잃어버렸던 그 소중한 것을 되찾은 후 나는 글쓰기에 뛰어들었고 지금껏 그 속도에 맞춰 글을 써오고 있다. 열차 안에선 느림이라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거나 죄악시되지 않는다. 거기선 뭔가를 '한다'는 게 쓸데없는 짓이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해서 열차는 나름대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한다. 활동가들은 '무위'에 빠져들고 몽상가들은 활동가들의 재촉과 불평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물론 낮 시간대에 운행되는 열차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건 열차라기보다는 오히려 지하철에 가깝다. 승객들은 디브이디 플레이어로 영화를 감상하거나 노트북으로 회계업무를 처리하거나 휴대전화기로 주식시장에 주문을 외친다. 야간열차에는 이런 야단법석과 완전히 딴판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공원의 벤치나 흔들의자, 등대의 난간처럼. 야간열차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룰 수도 있을 그런 꿈을 엿보며 천천히 노닐 수 있는 산책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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