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과감한 행동에서 나는 우리의 은밀한 문자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다. 누슈는 여인네들의 수다를 적거나, 우리를 시댁 여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생긴 글자가 아니었다. 누슈는 우리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우리의 누슈는 전족을 대신해서 우리를 서로에게 데려갈 수단이자, 설화가 편지에 쓴 것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서 우리의 생각을 전할 도구였던 것이다. 양쪽 집 남자들은 설화와 내가 서로 주고받을 만한 중요한 얘기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우리가 감정이나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하리라고도 기대하지 않았다. 양쪽 시어머니를 포함한 시댁 여자들은 우리에게 더 큰 장벽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설화와 함께 있든 떨어져 있든 이 누슈를 통해 우리 삶의 진실을 쓸 수 있기를 갈구했다. 시집살이를 하는 부인들의 보편적이고 정형화된 어구를 벗어던지고 내 진짜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친정집 이층 방에서 함께 뒹굴며 떠들었을 때처럼 편지를 쓰리라고 결심했다.-.쪽
나리에게. 내 딸은 죽은 채로 태어났어. 이 세상에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에 인생의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내 손으로 아기의 발을 쥐었어. 그 발은 전족의 고통을 절대 모르겠지. 아기의 눈을 만졌어. 그 눈은 친정집을 떠나야 하는 슬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봐야 하는 슬픔, 죽은 자식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슬픔 따위는 결코 보지 못할 거야. 손가락을 아기의 가슴 위에 놓았어. 그 가슴은 아픔, 슬픔,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을 결코 모르겠지. 저승세계로 간 아기를 생각해. 우리 어머니도 내 아기와 함께 계실까? 두 사람 중 어느 쪽의 운명도 나는 알지 못해. 시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비난해. 시어머니는 "아들을 못 낳을 거면 왜 우리가 너를 이 집에 들였겠냐?"라고 말하고, 남편은 "당신은 젊으니 아기를 더 낳을 수 있다. 다음에는 아들을 낳도록 해라"고 하지. 내 슬픔을 털어놓을 길이 없어. 내게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있는 이층 방으로 네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한 마리 새가 된 상상을 해. 아래 세상이 아주 멀리 보일 정도로 구름 위로 아주 높이 올라가는 거야. 뱃속에 있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목에 둘렀던 옥 목걸이가 나를 짓눌러. 죽은 아기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 설화.-.쪽
계집애들은 쓸모없는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그건 우리가 친정집의 이름을 잇지 못하고, 오로지 출가한 시댁의 이름만을 잇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들을 낳는 행운을 누렸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여자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남편의 집에 영원히 속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진실이지만, 나는 요즘 설화와 내 핏줄이 곧 루씨 집안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모르는 여자가 배운 여자보다 낫다"는 옛 말을 항상 신봉했다. 인생 내내 바깥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귀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남자의 글씨를 배울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여자의 도리와 이야기, 누슈를 배웠다.계집애들은 쓸모없는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그건 우리가 친정집의 이름을 잇지 못하고, 오로지 출가한 시댁의 이름만을 잇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들을 낳는 행운을 누렸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여자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남편의 집에 영원히 속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진실이지만, 나는 요즘 설화와 내 핏줄이 곧 루씨 집안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모르는 여자가 배운 여자보다 낫다"는 옛 말을 항상 신봉했다. 인생 내내 바깥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귀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남자의 글씨를 배울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여자의 도리와 이야기, 누슈를 배웠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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