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5월
절판


국경을 넘어 한 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넘어 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어리숙하게 된다. 여태까지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체계가 바뀌면서 어리벙벙해지는 것이다. 그 순간은 자유롭기도 하지만 당혹스럽고 불안하기도 하다.
여행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 과정은 누구나 겪게 된다. 유럽 여행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인도에서는 초보자가 되고, 인도가 아무리 익숙해도 중국 가면 또 헤매게 된다. 물론 여행 경험이 많을수록 적응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쪽

기차가 이윽고 시나이아를 지나갈 때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소리를 지르며 창 밖을 가리켰다. 산 정상에 거대한 십자가가 서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웅가리(헝가리) 와 루마니아가 트란실베이니아 지방을 놓고 싸울 때 희생된 루마니아 사람들을 위해 세운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지만 말은 안 통해도 나는 눈치로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웅가리는 잘 살고 루마니아는 가난해. 하지만 루마니아는 석유가 나서 앞으로 잘 살 거야…… 루마니아 남부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 북쪽 사람들이 좋지. 특히 브라쇼프, 시기쇼아라, 클루지나포카 사람들이 좋아."
참 신기한 일이다. 어느 나라에든 지역감정이란 게 있었다. 수다스럽고 유쾌한 남부 독일 사람들은 북부 독일 사람들이 차갑다고 싫어했고, 일본의 관동 지방 사람들은 관서 지방 사람들이 거칠어서 싫다 했으며, 파키스탄의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한다고 싫어했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이 도둑질을 잘한다고 싫어했다. 물론 비난받는 지역의 사람들은 반대로 상대 쪽이 싫은 이유를 댔을 것이다.
사람 사는 데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쪽

그곳의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의 서양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주던 그가 나에게는 고압적이고 퉁명스러웠다. 그는 내 뒤에 있던 일본인들에게도 그런 태도를 취했다. 순간 어떤 인종적인 편견을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대표하지는 않았다. 기차표를 팔던 매표소 직원은 매우 친절해서 나를 감격시켰고 매점의 중년 여인 또한 다정하게 대해주었으며 유스호스텔 직원들도 쾌활하게 대해주었다. 그러므로 빈은 여느 대도시처럼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기에 누가 나를 경멸하거나 구박해도 나는 쉽게 민족성을 들먹거리거나, 사람들을 미움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비판을 떠나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쪽

동양인들이 조금 왔을 때인 과거에는 호의를 갖고 대했으나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면서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권이 다른 곳에 툭 떨어지면 처음에는 누구나 헤매게 된다.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도 여행자들, 특히 동양 여행자들에게는 혼란스럽다. 또 언어 문제도 있었을 테고. 그 어리숙한 모습들만 보고 동양 사람들을 깔보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긴 중국에서 나는 그 반대의 현상을 보았다. 아무리 똑똑한 서양인도 중국에 오는 순간 바보가 되었다. 말이 안 통하고 문화 관습이 다르니 조금만 뭐해도 불평하고 억울해하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역지사지로 이해하기란 인포메이션 직원들에게 무리였을 것이다.
또 한 부분은 우리들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해외여행 초창기, 서유럽의 많은 한국 여행자들은 건실하게 여행했지만 가끔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하철을 무임승차하고, 유적지를 입장료 안 내고 개구멍을 통해 입장한다든지, 유스호스텔 방안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든다든지…… 그런 행위들로 인해 파생된 이미지가 전체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낳는 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만 억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와서 인종적인 이유 때문에 푸대접받는 동남아 사람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생각하면…….
딱정벌레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상처와 미움은 전염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피해자도 가해자를 닮아간다. 이 빡빡한 세상에서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하면 괴물이 되는 것이다.-.쪽

보헤미아는 감자처럼 생긴 체코를 위에서 아래로 절반을 싹둑 잘랐을 때 왼쪽 ㅈㄱ 서쪽 부분을 말한다. 프라하를 포함해 서부의 5개 주를 통합한 보헤미아 지방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다.
이곳에는 집시들이 많이 살아서 한때 프랑스인들이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 불렀는데 19세기 후반부터는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분방한 예술가나 방랑자들을 보헤미안이라고 일컬었다.-.쪽

무명 예술가들이라고 왜 자존심이 없으며 한때의 푸른 꿈이 없었을까? 또 실력은 있지만 운이 나쁘거나 풀리지 않아서 그런 쓸쓸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도 흐라드차니 언덕을 올라오던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만약 그들이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분노하는 표정을 지었다면, 나는 그들에게서 추함을 보았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그들만은 아니었을 테니까. 누구나 세상에서 다 이해받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조금은 억울한 심정을 갖고 살아가며 알고 보면 누구나 다 불쌍한 법이다.
쓸쓸하지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그들의 미소가 따스했다. 그 미소 속에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한 사랑이 어려 있었고 그 사랑이 스쳐 지나가던 나를 감동시켰다.-.쪽

문득 지나간 방랑의 시절들이 그리워졌다.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활짝 열려져 있었고, 빈곤했지만 시간은 넉넉했으며, 혼자여서 쓸쓸했으나 자유로웠던 그 시절…… 아, 이제 그 시절은 지나간 것이다. 아니, 먼훗날 다시 방랑을 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현재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 돈 없으면 먹지도 못하고 비행기도 못 타는 세상에서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