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에는 하나의 운명적 상황이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물질과 자본, 산업과 인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없었더라면 영미 동맹은 히틀러의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1941년 6월 22일은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것은 진주만 침공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미 대서양에서 독일을 상대로 실질적인 해전상태에 돌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스탈린그라드의 방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를 함락시켰다 할지라도 영국과 미국과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 국가가 전 유럽을 지배하려 한 마지막 시도이자, 독일로는 두 번째 시도였다. 나폴레옹의 전쟁은 유럽 전역을 석권하려 했던 프랑스의 마지막 시도였다. 이 두 번의 러시아 침공은 결과적으로 침공국의 패망을 가져왔다. 그 결과 연합국은 1815년과 1945년에 러시아와 함께 승전의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 1945년에는 유럽이 분할되고 스탈린이 동부 유럽을 점령하면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냉전이 벌어지게 되었다.-.쪽
히틀러는 레벤스라움(Lebensraum, 독일 민족의 생활권)이라는 국가적ㆍ지정학적 아이디어를 자세히 설명했다. 레벤스라움이란 간단히 말해서 독일 민족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러시아령 동유럽 지역의 일부를 정복하고, 거기에 독일 정착촌을 건설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개념이다.-.쪽
1941년, 스탈린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처칠과 루스벨트의 파트너가 될 판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1941년 독일군의 진군을 멈추었더라면 스탈린은 기꺼이 그의 하급 파트너가 되고, 필요하다면 제국의 일부를 히틀러에게 넘겨주었을 것이다. 유럽의 다른 지역이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군이 러시아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40년에 히틀러는 독일군이 영국을 정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었다. 당시 그의 완전한 승리를 가로막는 자는 스탈린이 아니라 처칠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처칠을 증오했고, 죽을 때까지 영국 국민들을 미워했다. 반면에 스탈린은 증오하지 않았다. 러시아 침공이 주춤거리자 히틀러는 스탈린을 존경하며 그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것이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니, 인간 심리의 연금술이 이런 조화를 부리는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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