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로파 벨라돈나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박민수.김은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절판


문이 열리자 등 뒤에서 불어온 눈발이 집 안으로 들이친다. 문지방에 서 있는 그녀는 집 안에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음을 알아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일층에 있는 방들 문이 나지막이 열렸다 닫히는 것뿐이다. 문들이 움직이는 것은 그녀가 몰고 온 바람 때문이다. 그것은 죽어 있는 움직임, 생명이 피해가는 그 무엇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안과 밖의 구분을 소홀히 할 때 생기는 움직임이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턱뼈는 낚싯줄에 걸려 그런 식으로 열리고 닫히다가 종내는 떨어져 나간다. 냇물에 빠진 책은 그런 식으로 물결에 쓸려 펄럭거린다. 이 섬에서 수천 개씩 줄에 꿰여 있는 생선 머리들 사이로 바람이 불면 물고기 머리들이 달그락거리며 텅 빈 듯한 소리를 낸다. 폴란드 여자는 문들의 움직임에서 그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멋진 방을 차지해도 탓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쪽

할머니는 그저 늙은 어떤 것, 사람이 아닌 늙은 동물이나 식물처럼 보인다. 나는 늙어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변신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쪽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많은 여행을 했다. 개중에는 다른 대륙으로 가는 장거리 여행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먼지가 많거나 추운 지역, 사나운 털북숭이 동물이 우글대거나 전망이 트인 대가로 숨을 쉬기 어려운 곳만 즐겨 찾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교회나 박물관이 있고 저녁에 멋진 식사를 할 수 있는 도시나 해변 아니면 적어도 호숫가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년 황량한 지방만 찾아가는 까닭을 알 수 없어서 도대체 그런 곳에서 뭐라도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었고 매년 듣게 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나는 아버지가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짐작한다. 아버지는 그런 곳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았던 게 아니라 오히려 무엇인가 잃어버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공이 경사면을 굴러가면 경사에 의해서 가속도를 얻기는 하지만 동시에 바닥의 마찰 때문에 힘을 잃는다. 그리고 경사면이 거칠면 공은 도중에 모든 힘을 잃고 정지할 수 있다. 아무튼 내가 동생에 관해 알게 된 것은, 그가 우리 집에서 불과 몇 구역 떨어진 곳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입금해주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찾아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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