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품절


"근데 무슨 죄를 저질렀어?"
그러자 누군가 비꼬듯이 말했다.
"아마 죄가 없을걸."
"죄목이오? 없는데요."
그의 대답에 모두들 실실 웃음을 흘렸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죄가 없을 거라고 했지."
"내가 꽤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을 해서 아는데, 지금까지 '나는 이런 죄를 지었소'라고 말하는 놈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니까."-.쪽

사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야샤르 야샤마즈였다. 그는 이층침대 아래층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구슬픈 목소리에 죄수들은 훌쩍훌쩍 울음을 삼켰다. 사실 야샤르의 목소리는 그리 멋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사즈 연주 솜씨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감금 상태로 인한 고통과 슬픔 때문에 야샤르의 목소리와 사즈의 연주소리가 천상의 노래처럼 다가와 심금을 울렸을지도 모른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갈증에 목이 바짝 타는 사람에게는 썩은 물도 막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야샤르가 연주를 마치자 감방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쪽

정상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날 그분이 하신 말씀은 정말 감동적이었죠.
"인간은 물이 가득 담긴 채 불 위에 올려놓은 솥과 같거든. 물이 끓으면 솥뚜껑이 열리듯 인간도 감정이 쌓이면 폭발하고 만다고. 증기기관도 보면 수증기를 빼려고 밸브를 장착해두잖아. 일정 양의 수증기만 기계 안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밸브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고. 이렇게 해서 균형이 잡히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기계는 폭발하고 말걸. 인간의 이치도 똑같아. 열을 받거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발생하는 감정을 밖으로 분출해야 폭발하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증기기관의 밸브처럼 인간에게도 안전장치가 필요한 거라고.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정상인은 뭔가가 조금은 부족한 사람이지. 완벽한 척하는 이른바 엉터리 정상인들은 어느 날엔가는 갑자기 폭발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결국에는 회복불능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말씀이지."-.쪽

"두려운가? 얼굴이 창백해졌군. 하지만 두려워할 것 없네."
"아니, 이보다 더 두려운 게 또 어디 있습니까? 저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판국에 스파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는 절 교수형에 처할 거라고요!"
"하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전사한 사람을 어떻게 교수형에 처하겠나?"
"그건 당신이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그들은 제게 조금이라도 이로운 일이면 '넌 죽었어'라고 하고, 자신들이 아쉬우면 '넌 살아 있어'라고 한다니까요. 학교에 가려고 하니까 '넌 죽었어'라고 하고, 군대에 데리고 갈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원하니까 '넌 죽었어'라고 했고, 세금을 징수할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했어요. 소송을 걸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소송을 거느냐고 했고, 정신병원에 가둘 때는 전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스파이와 친하게 지내는 게 알려지면 절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즉각 교수형에 처할 게 뻔하다고요."-.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