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을 몰랐다. TV 프로그램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개그 콘서트 정도만 보니 그가 2-30대에게 인기가 많은 대세남인지, 마녀사냥에 나온 연예인(?)인지 조차 몰랐다. 허지웅을 알게된건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상위에 링크된 책을 통해서다. 외모와 스타일이 궁금해 네이버에 물어보니 마녀사냥, 택시 등 그가 출연했던 방송을 보여준다. 외모는 살짝 유희열을 닮은듯하지만 훨씬 까칠해보이고 시크하며 거침이 없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여느 에세이처럼 잘 보이거나 꾸밈 없이 적나라하게 민낯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교수였음에도 엄마와 자신을 방치했던 아픈 과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벼랑 끝까지 갔던 과거가 있으니 더이상 잃을것이 없다는 논리도 작용했으리라. 참 솔직한 사람이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처세라고 믿는' 그의 표현은 비루하면서도 내 삶의 방식과 닮아 있다. 공무원이라는 허울 좋은 틀 속에 살아온 24년......앞으로 남아있는 13년....한번 뿐인 삶을 어쩌면 재미없게 우물안 개구리처럼 산다는 비난을 받을 지언정 난 꿋꿋하게 버틸 것이다. 다른 길이 없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나를 책임지고 챙긴 건 엄마였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지원해주기 위해 엄마는 친가 식구라는 사람들에게 뺨을 맞아야 했고 리어카를 끌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나를 만들어냈다. 우리 엄마는 내게 충분히 존중받아야만 한다.
책 읽는 삶에 관하여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책만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하루 십오 분이라도 시간을 쪼개어 읽어야 한다. 재미있는 건 하루를 아무리 바삐 보내보았자 결국 그 시간만이 온전히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는 거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아는 것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이퍼링크가 없는 웹상의 DB를 상상해보라.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TV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으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됩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책을 읽으세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입니다. p. 83
첫 부분은 자신의 가정사를, 그 후로는 정치, 사회, 영화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영화평론가이면서 전직 기자답게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영화 '킹콩', '록키', '설국열차', '도가니' 등 익숙한, 혹은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눈을 키워준다. 마치 '책은 도끼다'를 읽고 관련 책을 읽는 것처럼 영화를 보고 싶게 한다. 도서관 책이 아닌 내 책으로 소장하고 싶다. 에세이는 절대 읽지 않겠다는 말 무효다.
조금은 따뜻해진 공간
우리도서관 종합자료실은 어른이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선입견에 어울리게 참으로 썰렁하다. 발령 받은 날부터 고민하다 예산을 지원받아 카페 분위기로 만들 결심을 했다. 빈 공간에 책상을 짜 맞추고 의자를 구입했다. 사무실에 있던 화분을 갖다 놓았지만 썰렁한 벽 때문에 2% 부족했다. 수능이 끝나고 기특하게 도서관으로 책을 보러 온 고3 아이에게 물어 봤다. '허전한 벽을 어떻게 꾸밀까? 액자가 좋을까?' 아이는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액자 말고 나무 스티커랑 레터링 붙이면 좋겠어요' 한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자료실은 미니 카페가 되었다. 새로운 공간이 생겨 신기해하는 이용자에게 '커피 마셔도 되요' 하니 행복해한다. 우리도서관은 자판기가 없는 대신에 원하는 사람에게 봉지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사소한 기쁨이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초콜렛 대신에 가래떡을 구입해서 이용자에게 제공했다. 프로그램 수강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도서관으로 가래떡 드시러 오세요' 하고 보냈는데 지역 신문에도 두 줄 기사가 났다. 어느 친절한 분이 기자에게 알려주었나보다. 작은 이벤트가 기대 이상의 큰 보람을 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작은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다. 대출 회원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서관에 오면 즐거운 일이 생깁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 선착순 50 가족에게 머그컵을 주려고 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는 빨간색에 도서관 이름도 새긴..... 시골 도서관에 근무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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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가제 되기전 구입한 책들.
김선우 시집은 나를 위해,
그외 책들은 도서관에 오는 지인을 위한 선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