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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정독
부남철 역주 / 푸른역사 / 2010년 4월
평점 :
사서로 근무하면서 마음먹은 일중 하나는 도서관에 학부모 독서회를 만드는 것이다. 도서관이 바뀔 때마다 독서회를 조직하고 리더 역할을 하면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은 보람된 일 중 하나다. 지난 9월, 우리도서관에 인문학 서평쓰기 모임을 개설했다. 제목이 거창해서 신청자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12명이나 모였다. 개강 첫날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귀농해서 답답했는데 도서관에 독서토론 프로그램이 생겨서 좋다’는 뜨거운 반응이다. 첫 책으로 다소 무거운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을 선정했는데 책에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는 모습에 감동했다. 지난 모임에는 친분 있는 김이설 작가에게 재능기부를 부탁하고 강연회를 열었는데 미리 책을 읽고 온 회원들의 질문과 사인회, 각자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시간은 따뜻했다.
금년 마지막 토론도서는 동양철학의 고전인 ‘논어정독(부남철 역주/ 푸른역사)’을 선정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저자 신정근은 ‘공자의 논어는 커피로 치면 부드럽고 여러 맛을 깊게 느끼게 하는 카페모카의 맛’이라고 했다. 논어에는 “절차탁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과유불급“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했던 글이 나온다.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던 논어가 의외로 쉽게 읽히는 이유다. 동양철학의 기본은 논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동양철학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잊게 해주었다.
공자는 제자들과 중국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자신을 등용해줄 왕을 찾았으나 아무도 불러주는 이가 없었다. 정치에 뜻을 두고 끊임없이 정계 진출을 꿈꿨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잘하지 못함을 근심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본인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구나” 하며 한탄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어느 현명한 왕이 공자를 등용해서 함께 정치를 도모했다면 태평성대를 누렸을텐데......
논어의 핵심은 인(仁)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인은 글자 그대로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서로 피가 통하고 신경이 통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하나의 몸이 될 수 있도록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자기가 주도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일차적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자존심, 자신감, 자기 몸과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등이 그런 것이다” 사랑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이며, 부모님과 가족, 나아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가 공부이며 첫 장이 학이(學而)로 시작하는 이유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여전히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뚜렷한 자기관을 정립하기 어렵다. 친구, 이웃, 사회생활의 관계 맺음에 어려움을 느낀다. 논어를 읽으면서 관계맺음, 직장생활의 애매모호했던 것들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제가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저에게 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가하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는 선배 또는 상사로서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다. "관직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직무를 맡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근심하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실력을 구비하라."는 조금은 나태해져 있는 나를 채찍질하는 말이다. 직장생활에서 특정한 일을 하고 나면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고 때로는 알아주지 않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나를 들어내지 않아도 보상이 따르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조급할때가 있다. 논어를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 나간다. 이제는 매사에 좀 더 느긋해지고, 좀 더 이해심이 많아질 것을 믿는다.
<근사록>에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논어를 읽으면서 참 행복했고 몇 구절은 기억하려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소리내어 읽었다. 카프카의 도끼처럼 논어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잠을 깨운 책이다. 당분간 논어에서 헤어나지 못할듯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논어를 추천하며, 논어의 글들을 인용해서 아는 척을 할 것이다. 내 지인들은 어쩌면 지겨워 할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