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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평점 :
오래전에 출장으로 스톡홀름시립도서관, 덴마크왕립도서관, 암스테르담도서관 등 유럽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8박 9일 동안 매일 2~3개의 도서관을 방문하고 현지 사서들과 차담 또는 만찬을 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행복했다. 도서관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도서관의 서가와 책상은 나무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유럽의 도서관은 대부분 화이트 서가와 책상이었다. 또한 층별 공간 구획 없이 전체가 열린 공간이었다. 큰 규모의 도서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쾌적하고 접근이 용이했다.
우리 지역의 교육도서관들도 공간혁신 사업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벽을 허물고 서가나 소파, 바닥색으로 공간을 구획해 개방감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서가, 책상, 의자는 공간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 컬러로 변화를 주었다. 도서관은 책을 빌려가는 공간에서, 오래 머무는 공간 되었다. 특히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거나, 보드게임을 한다.
이 곳에 근무하기 전, 도서관 공간혁신 사업을 담당하면서 공간 구성,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진도서관을 견학하고,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공간을 자세히 관찰했다. 대형 카페도 도서관 공간 구성에 도움 된다. 노출 콘크리트 벽을 처음 접했을 땐 미완성인가 했는데 어느덧 자연스럽고 멋스러움을 발견하니 조금은 보는 눈이 생겼나 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건축 관련 책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건축가 유현준의 도서 '인문건축기행'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세계 여러 나라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이 한 권의 책 속에 내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감명받은 서른 개의 근현대 건축물을 모아 보았다.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건축물들이다. 이 건축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건축물은 파리 외곽에 위치한 주택 ‘빌라 사보아’다.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다. 그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또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을 만들었는데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이다.‘빌라 사보아’는 5원칙이 총결집된 결정체라고 한다.
두 번째는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 미술관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작품이다. 각종 설비 파이프라인이 노출된 미완성 같은 작품이다. 1970년대 건물이 지어진 당시에는 프랑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현재 프랑스 국민이 사랑하는 현대 건축물 2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2025년에‘퐁피두센터 한화 서울’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작품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주상복합아파트이며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아파트 1층에 필로티가 있고,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닮은 빨강, 파랑 노랑에 초록까지 사용한 입면이 아름답다.
그 외에도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리모델링하면서 돔을 유리로 지어 전망대로 활용한 점도 신선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도 독특하다. 리처드 마이어의 ‘더글러스 하우스’는 요즘 트렌드인 백색 인테리어다.
르 코르뷔지에를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도 가보고 싶은 공간이다.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이 책에서 소개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관람하는 여행도 좋겠다. 파리에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건축계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봐야 겠다.
르 코르뷔지에는 창문, 경사로, 천창, 색깔, 공간 나눔, 바닥의 기울기, 제단 제기의 디테일, 음의 잔향, 공간의 형태 등등 건축가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현란하게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경지에 이른 공간 교향곡의 작곡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진정한 마스터다.
요즘 다락방님 덕분에 '내게 공돈이 생긴다면 뭘 할까?' 생각했다. 일단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완전히 그만두는건 놀아본 다음에 선택해야지)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타고 파리를 직항으로 간다. 한달 계획으로 에펠탑이 보이는 5성급 호텔을 예약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에펠탑 야경을 감상하며 스텔라 장의 '아모르, 바게트, 파리'를 듣는다.
그리고 다음날엔 르 코르뷔지에를 연구한 박사급 가이드를 수소문해 렌트한 차를 타고 관광을 다닌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음 방값만 3천만원, 비행기 티켓이랑 여행경비 더하면 최소 5천만원은 들텐데.... 이런 사치 여행 괜찮은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건축에 대해 조금은 아는척 할 수 있겠다. 광고 기획가 박웅현은 "인문학을 배우면 밥이 나오는가? 하는 질문에 밥이 맛있어진다"고 우문현답을 했다. 책을 맛있게 읽은 느낌이다. 자연을 담은 건축과 인문학의 어우러짐은 지적 욕구를 충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