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연휴가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 아쉬움과 함께 알라딘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프야언니의 책 <앵두를 찾아라> 를 읽는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 우리 5공주는 어떤 제목으로 할까? 표지는?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결국 내용을 가장 잘 아는 프야언니가 원하는 제목과 표지로 결론을 맺었다. 언니가 보내주신다는 책을 기다릴 수 없어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세상에나 책은 총알 배송이 무색하게 4일후에 도착했고, 다음날 언니가 보내주신 책도 왔다. 도서관에는 내년도에 비치할 예정이니 또 한 권은 지인에게 선물해야겠다. 언니 책이 나올 무렵 도서관은 이미 4/4분기 구입도서가 들어온 상태였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비슷한 실정이라 내년도 3월에나 구입 신청할 듯하다. 참으로 아쉽다!
프야언니는 단아한 외모처럼 글도 어찌나 정갈한지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봐야할 듯한 느낌이다. 에세이는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야 하는 부담이 있을텐데 적당히 절제하고, 적당히 드러낸다. 글 속에 우리 말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고, 우리 글의 고운 결을 잘 살려냈다. 제목의 앵두가 물고기임을 '앵두를 찾아라' 전문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앵두는 물 속에 산다'는 첫 장의 글을 읽으면서도 앵두는 그저 빨간 열매라고 생각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딸의 성화에 대신 키운 앵두를 세밀히 관찰하며 물고기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프야님의 혜안이 그저 감탄스럽다.
앵두는 물속에 산다.
자정이면 작은 의식을 치른다. 세상의 불을 끄는 일이다. 불을 끄기 전, 하루치 세상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p.64
앵두는 진정한 웰빙족이다. 밤이 되면 아직 놀고 있는 친구들과 조용히 거리를 두고 물풀 뒤쪽이나 바위 뒤에 자리를 잡고 홀로 잠을 청한다. 고독은 즐길 만한 값진 정서가 아닌가. 수면 가까이에 몸을 반듯이 누이고 세상의 평화를 안고 잘 때는 고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침이면 친구들은 자고 있어도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먹는 것에는 그리 매달리지 않는다. 먹이를 주면 반색하는 기색도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친구들이 다 먹고 돌아서면 유유히 다가와 입을 벌린다. 소식으로 만족하고 경쾌하게 꼬리를 돌려 미끄러져 간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친구들에 비해 몸집이 크게 불어나지 않고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 p.67
프야님은 때로는 마치 우리 친언니 같다. 나는 엄마에게 혼날때면 도망가기 바쁜데, 친언니는 가만히 앉아 엄마가 내려치는 빗자루 세례를 다 맞았다. 도망갈 법도 하지만 그저 고개만 숙이고 커다란 눈에서 굵은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약 먹기 싫어하는 프야언니를 우물가에 데려가 무섭게 벌 주는 아버지나, 벌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 언니나 대단하다. 우리 친언니까지 포함해서...
고등학교때 폐결핵에 걸렸을때 요양을 하기보다는 기숙사 생활을 선택하고 직접 주사를 놓아준 엄마, 선뜻 방을 내어준 가게집 주인아저씨...산다는 것은 끝없이 빚을 지는 일이라는 글과 빚꾸러기라는 제목이 와 닿는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 대신 희생을 한 시부모님께 요즘 참 무례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 빚을 갚을 날이 올까?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를 보며 소설가 박상륭의 글을 인용한다.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의 어원을 '앓음다움'에서 찾았다. '앓음'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애쓰는 상태를 말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이 된다. 허허한 웃음과 내용 없는 가벼움이 득세하는 시대에 아름다움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써야만, 진정으로 앓아 봐야만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자마자 빠져든다. 마치 소설처럼 가독성이 좋다. 그녀의 다음 책은 소설이어도 좋겠다. 에세이를 읽으며 밑줄을 이리 많이 그어보기는 처음이다. 간결하면서, 우아한, 고급스러운 문체는 읽는내내 프야님이 그리워진다. 그녀는 어느새 영화평론가로서, 여행 작가로서 마치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는 듯하다. 자그마한 몸짓에서 뿜어나오는 열정, 끼는 참으로 굉장하다. 단아한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절대 오산이다.
우리 5공주(나비언니는 오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월 7일(목요일) 오후 3시 야나문에서 만난다. 내 맘대로 번개를 쳐본다. 마녀고양이님, 페크언니 그리고 또!
야나문 북카페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40 2층 (부암동)
02-394-0057
일은 느닷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인연의 바람이다. 손돌바람에 널브러지는 때도 있지만 산들바람에 하늘을 나는 날이 더 많음에 감사할 일이다. 선연도 악연도 인연이다. p.57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 p.67
꽃만큼 유한한 것이 없다. 꽃만큼 무한한 것도 없다. 시간이 가면 추레해지는 게 어디 꽃뿐일까. 그 얄궂은 피조물이 갸륵해 보이는건 끝과 시작이 동시에 보여서다. 절정의 미로 피어오른 꽃봉오리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의 안간힘을 잊지 못한다. 피고 질 때를 아는 세상 모든 꽃들은 지고 피고 지는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순간과 영원의 애련한 이중주다.
살갑게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는 늘 꽃을 피워 왔다. 하나의 꽃이 아니라 다른 두 개의 꽃을. 나란히 앉아 있되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의 그 출발지를 생각해 본다. 향기도 색깔도 다른 두 개의 꽃다발을 하나의 화병에 담고 싶어진다. 노랑 곁에 보라, 보라 곁에 노랑. 보색의 어울림이 생각만해도 근사하다.
"할머니, 아이리스도 한 단 주세요."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