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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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뜻한다."는 저자 크리스티안 보뱅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신의 책을 설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이 프랑스의 시인이 쓴 작은 책, <작은 파티 드레스>는 위대하다. 


책을 읽는다는 일, 아이를 키운다는 일,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쓴다는 일, 이러한 일들을 시인의 언어로 해체하여 재해석, 재조립하여 고갱이만 남기고 나면 우리는 잊어버렸던 잃어버렸던 정작 소중했던 것들을 대면하게 된다. 진부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독자와 밀착되는 지점을 작가는 기민하게 간파하고 인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쓸모로 귀결되는 세계에서 비로소 우리는 무용하고 작고 잊혀져 가는 일들의 가치를 깨닫는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고 살고 죽는 이야기. 유년의 여름에서 황량한 중장년, 노년의 세계로 건너가는 이야기. 그 모든 잔해 속에서도 빛을 희구하고 마침내 찾아내는 이야기.


죽음 속으로 난 길은 갑자기 좁아져 지나가려면 모든 걸 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우리의 소유물을 사방에 흩뿌리며 우리가 이 종말에 대비하게끔 한다. 마당을 적시고 지나가는 한 차례의 빛줄기 같다. 우리 안엔 더없이 생생한 고독이 남는다. 조용한 자각이다. 유년기가 저무는 여름 끝 무렵의, 부드러운 한 줄기 빛이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안 보뱅


사랑이 결국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게끔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내버리는 연습이라는 발견이 놀랍다. 그리고 가까스로 이해된다. 왜 그리 사랑이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그 과정에서 가까스로 얻는 달콤함과 충일함의 대가가 그리도 대단한지. 그것은 생의 극치가 아니라 생의 종말의 작은 은유였다. 상대를 사랑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건 거대한 도박이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나를 죽이는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억지로 일부러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일이 아니다. 소멸과 사랑은 닮았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지점에서 타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절망스러운 포기는 아니다. 그것은 조용한 자각의 빛이다. 빛은 찰나에 영원을 담아 사라지더라도 절대적인 무로 축소되지 않는다. 위대한 비밀의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절망의 산문시다. 그것이 체념이 아니라 어떤 합일, 능동적인 수긍의 지점에 가 닿은 것은 작가의 사유가 농축된 빛나는 시어들을 닮은 언어의 태피스트리 때문일 것이다. 무심코 들어간 거리의 서점에서 이 책을 들고 나왔을 때 더위는 절정이었고 빛에 눈이 부셨다. 마스크로 답답하고 더운 날들, 파티는커녕 친구와의 오랜만의 약속도 위태위태한 나날들 속에서 '작은 파티 드레스'를 선물 받은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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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0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09-11 08: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9-10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blanca 2021-09-11 08:56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오후즈음 2021-09-1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넘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축하드려요~^^

blanca 2021-09-11 08:57   좋아요 0 | URL
오후즈음님, 이 책 저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답니다. 추천드려요. 감사해요.

초딩 2021-09-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아우, 가지고 싶다. 읽기보다 소장용으로. 세트로만 구입된다니 선택의 여지도 없고. 미니멀리즘은 점점 멀어지는가. 저 매력 돋는 표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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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27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건 또 뭡니까!! ㅎㅎㅎㅎㅎ

blanca 2021-07-27 10:05   좋아요 2 | URL
흑, 너무 해요. 다락방님도 가지고 싶어질 겁니다 ㅋㅋㅋ 읽은 거랑 안 읽은 거랑 섞여 있긴 한데 큐레이션도 기가 막힙니다.

다락방 2021-07-27 10:06   좋아요 2 | URL
책장에 꽂아 놓으면 진짜 뽀대날 것 같아요! 그렇지만...그렇지만.....

잠자냥 2021-07-27 10:16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 이거 한 세트 더 있어요... 밤세트 낮세트... 일케일케.. (아니 저건 그냥 20권짜리군요. 전 어젠 밤/낮 세트 따로 파는 것만 봤거든요... -_-)

잠자냥 2021-07-27 1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어제 봤는데, 열린책들 상술 너무하다.... 하면서도, 거의 다 읽은 작품들이면서도 자꾸 눈돌아가네요. ㅠㅠ

blanca 2021-07-27 11:02   좋아요 2 | URL
저는 낮세트는 다행히 30프로만 읽었다는... 이 뿌듯함은 뭐죠? 덜 읽어서 더 구입이 정당화되는...

잠자냥 2021-07-27 11:05   좋아요 1 | URL
부러워요...;; 30%면 사셔도 될 거 같아요. ㅋㅋㅋㅋ

blanca 2021-07-27 11:06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건 다 잠자냥님 때문입니다. 결제로 갑니다.

새파랑 2021-07-27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ㅜㅜ 완전 가지고 싶네요 ㅜㅜ

blanca 2021-07-27 12:22   좋아요 2 | URL
이건 완전 소장각이잖아요.

유부만두 2021-07-27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두 세트라니…

blanca 2021-07-27 12:23   좋아요 1 | URL
한 세트만 하시지요.^^;; 저는 읽은 것이 적은 쪽으로...

수이 2021-07-27 1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디자인팀이 작정하고 사장들이랑 합심해서 요즘 디자인 쪽으로 밀고 가던데요. 두 명의 사장 중 한 사장의 디자인 감각이 탁월하다고 하던데 이것도 그 분 작품인 거 같습니다. 허허허허허허 하고 웃고 저도 지르러 갑니다 ㅋㅋ

blanca 2021-07-27 12:55   좋아요 1 | URL
아! 그런 거군요. 디자인이 탁월해서 뭔가 있겠거니 했어요. 결국 사고 말았어요. 또르르...

수이 2021-07-27 13:35   좋아요 1 | URL
울지 말아요 블랑카님 다 읽고 리뷰 써주세요 헤헤헤 신난다

페넬로페 2021-07-27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너무 갖고 싶어요
그냥 책꽂이에 떡하니 있기만 해도 좋을것 같아요^^

blanca 2021-07-27 12:56   좋아요 2 | URL
아, 요새는 책들이 다 왜 이런 거죠? 물욕은 끝이 없네요.

카스피 2021-07-28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견해는 맘이 움직이면 지르는 것이 정답입니다^^

blanca 2021-07-29 08:30   좋아요 1 | URL
ㅋㅋ 카스피님 말씀 듣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21-08-06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우 너무 아름답습니다.ㅎㅎ 일단 바구니에 담긴 했는데...보관함이 넘쳐서 바구니에 그냥 두고 조금씩 사다가 보니 이젠 바구니도 넘치네요...-_-:

blanca 2021-08-08 08:52   좋아요 2 | URL
종이책들이 오히려 더 예뻐지고 상품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의 물성이 주는 기쁨이 커요.

단발머리 2021-08-08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서 가격 보고, 두꺼운 책 3권 정도야~~ 하고 기뻐하려다가 아니... 두 세트요? @@
두 세트 가격이 그거였네요. (저 뭐 보고 온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1-08-09 08:24   좋아요 0 | URL
가격도 참 예쁘죠? ^^;;
 

한 지역을 중심으로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연작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사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다.
















여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여기에서 하나의 매개체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녀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다. 퉁명스럽고 직설적이고 소위 오지랖이 넓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타인과의 소통의 시발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냉담하고 타인에 관심이 없는 자기 중심적 인물이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엮일 일이 사실 별로 없을 것이다. 올리브의 성격은 마을 주민들의 삶에 싫든 좋든 끼어들기 좋은 설정이다. 작가가 그녀를 동원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독자들은 그녀에게 쉽게 감화된다.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번거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은 어떨까.


평범하고 젊은 기자다. 특이한 사항이라고는 어머니를 일찍 잃었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겉돈다.
















올리브의 역할을 하는 소년 조지 윌러드는 가상의 마을 와인즈버그 사람들의 외부적 관찰자이자 내부적 청자의 역할을 한다. 그가 직접 중심 인물이 되어 움직이는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그는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페르소나 역할에 충실하다.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한다. 


조지 윌러드는 마을에 소속되어 있고 마을의 전형적인 인간형이었으며, 그 자체로 마을의 정신을 현현한다고 느껴졌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


그가 올리브와 다른 점은 이야기를 통해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미 중년을 넘긴 올리브와는 다른 성장 단계에서 그를 통과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년의 극적인 성장과 개안을 이룩한다.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그로테스크함을 발견한다. 삶을 알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단일한 진실은 없다는 점, 개개의 삶마다 다른 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이 때로 사람을 망친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다. 셔우드 앤더슨이 이야기하는 성장은 이런 점에서 슬프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이 무로부터 생겨나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주어진 삶을 다 살고 무로 돌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행진하듯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숙의 슬픔이 소년을 찾아온 것이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도 앤더슨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의 초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것에서 자신의 개별성과 유일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자신도 그들의 무리 중 일원임을 깨닫는 것, 거기에서부터 성장은 이루어진다. 지상에서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로 스스로를 실감했던 그 찰나 같은 시간들은 엄연히 박살나기 위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씁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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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단 한 대의 피아노가 주인공이 되는 일대기. 어떤 극적인 드라마도 사건도 없이 그저 400명의 노동자가 조연이 되어 묵묵히 일 년 가까이 88개의 건반과 240개가 넘는 현이 만들어 낼 소리의 잠재태를 위하여 투신하는 이야기.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마음이 한없이 먹먹해지는 이야기. 
















저자인 [뉴욕 타임스] 기자인 제임스 배런은 K0862의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스타인웨이 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피아노의 거대한 림을 만드는 출발점부터 조율을 거쳐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하는 '독립'의 피날레까지 전과정을 밀착 취재하여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이민 노동자들 개개의 서사, 스타인웨이 가문의 전사까지 더불어 치밀한 태피스트리처럼 엮어낸다. 피아노를 만드는 과정은 기술의 혁신, 사람들의 관심사 변화와 더불어 많이 진화했지만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가 가지는 어떤 고전성을 수호하는 여전한 수작업과 오랜 시간 공력이 들어가는 지난한 시간의 경과를 화석처럼 품고 있고 이것은 다른 제조업 노동자들과는 다른 자부심을 각 공정의 노동자에게 불어 넣는다.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정형화된 자동 매뉴얼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형태를 보고 그것을 체현하는 형태의 도제 시스템을 통해 하나의 악기의 분업화된 업무를 전수한다. 스타인웨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서로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고 가족을 영입하기도 하며 하나의 단단한 결속력을 가진 부족처럼 끈끈해진다. 


효율과 능률과 IT 기술이 선봉에 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과는 거리가 먼 영역에서 여전히 느리고 진중하지만 과거의 가치를 믿고 수호하려 애쓰는 분투의 현장의 목격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렇게 완성된 K0862의 연주자의 이름이 낯익다.
















피아니스트 조너선 비스의 언어는 마치 잘 다듬어진 선율처럼 독자를 설득한다. 그의 음악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근사한 연주회를 다녀온 듯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언어와 음악이 가지는 한계를 서로 상쇄하며 이루어내는 절대 경지의 표현과 소통의 처절한 앙상블이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손으로 꼽는 값진 경험 중 하나가 어렸을 때 무리해서 배운 피아노다. 재능이 없는데 재능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던 엄마와 소곡집 연습만 해도 대단한 연주를 듣는 듯 감격했던 주변인들의 과장된 박수가 얼마 안 되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설명할 수 없는 증폭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 실현하지 못한 꿈들, 그리고 결국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그럼에도 여전히 그러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손가락의 기억에 대한 신비로움이 한데 섞인 것이다. 울림 페달을 밟으면 나의 원래 실력보다 한 뼘쯤은 더 그럴듯하게 들렸던 그 기만의 연주에 취했던 그 어리석었던 과장의 시간들은  가감 없이 직시하는 현실의 황량함과 대비되어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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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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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공허해지기 쉽다. 그래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악의 형상화에는 신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사의 골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자칫 그 악행 자체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우리의 현실에 악은 만연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악이 승리하거나 선의 무기력함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악을 다루는 이야기의 도착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윌리엄 트레버는 그러한 점에서 대단히 명민한 작가다. 악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의 여정의 끝에는 선이 있다. 이것은 대단한 스포일러가 아닐 수 없다.

 

<펠리시아의 여정>의 펠리시아는 아일랜드의 십대 소녀다. 영국군에 맞선 전장에서 순직했던 선조들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스크랩한 아버지가 영국군에 입대한 청년의 아이를 가진 펠리시아에게 보일 반응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여정은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집에서의 탈출로부터 시작된다. 펠리시아는 아이의 아버지 조니가 일한다고 했던 잔디깎이 공장 창고를 찾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난다. 이 여정에서 그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하게 된다. 전적으로 선하다고 그렇다고 오직 악하다고만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도움을 얻게 된다. 그 중에 공장 구내식당 매니저인 오십대의 독신남 힐디치가 있다. 그는 <펠리시아의 여정>에서의 중요한 기착지다.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시종일관 단서를 찾아 헤매어야 할 정도로 혼란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펠리시아에게 미칠 영향 그 자체에 대하여 유보된 판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무엇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트레버는 분주하게 시점을 이동한다. 그의 시선이 힐디치에게 가닿았을 때 우리는 어떤 끈끈한 암시를 읽는다. 직장과 사는 고장에서 힐디치는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체구가 건장한 친절하고 따뜻한 중년의 이웃이다. 그러나 그러한 외피 밑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어두움은 조각조각 퍼즐처럼 군데군데 그의 고독하고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의 회상들로 덮여 있다. 그는 싱글맘에게서 자라고 그녀가 끊임없이 초대했던 내연남들로부터 왜곡된 관계의 거친 원형들을 전수 받는다. 필요와 위장과 욕망에 의해 접근하는 사람들,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그들 뒤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심지어 아들에게까지 성적 욕망을 발산한다. 힐디치의 끔찍한 어린 시절은 현재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그의 모습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과거를 품고 그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펠리시아에게 은근하게 접근한다.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끊임없이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에게는 그 전에 이미 여러 명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들은 그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라졌다. 트레버는 이러한 일들을 대단히 간접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암시할 뿐이다. 우리는 힐디치를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그의 번민과 고뇌, 유보된 욕망들은 그의 전체를 구성하지 못한다.

 

펠리시아가 끝내 그에게서 탈출한 곳은 의외의 곳이다. 그녀가 다시 그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오빠들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여정이 가지는 의미를 시사한다. 어쩌면 따뜻하고 안전한 집으로 가지 않고 거리에 남는 일을 택함으로써 결국 펠리시아가 얻어낸 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각자가 해석해야 한다. 구질서에서 억압에서 제도권에서 가부장적 구조에서 떠나는 것 자체가 그 모든 것의 극복이자 탈출과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그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펠리시아는 놀랍게도 이 여정의 끝에 만족한다. 안전한 귀환만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놀라운 깨달음이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고, 목적 없는 여정에서도 더 이상 의미를 찾지 않는다. 시간과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을 찾지 않는다.

 -윌리엄 트레버 <펠리시아의 여정>


펠리시아의 여정을 규격화하거나 재단하는 대신 열린 것으로 해방시킴으로써 트레버는 그녀를 다른 방법으로 성장시킨다. 대부분의 영웅담이 결국 집으로의 귀환의 여정으로 그려진 것과는 달리 소녀의 여정은 거리로의 탈출로 확장된다. 힐디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남으로써 그녀가 도착한 곳은 드물긴 하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선의의 손길이다. 그것은 악보다 더한 선의 미스터리. 트레버가 악의 이야기를 통해 당도한 곳의 소박한 거리의 선은 악의 치밀함보다 더 관대하다. 위대해진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피하려 했던 가부장적 질서와 악의 만연의 해방구로서 그곳에 함께 당도하게 되는 독자들의 여정은 그러니 뭉클할 수밖에 없다. 시야는 확장되고 고정관념은 부서진다. 위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쓰는 이도 이야기 속 인물도 읽는 이들도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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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31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중지련, 멋있는 제목입니다.
축하드려요~^

blanca 2021-08-31 18:04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가뭄의 단비처럼 저도 모처럼 기분이 좋네요.

초란공 2021-08-31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또 읽어보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08-31 18:04   좋아요 2 | URL
초란공님, 부끄럽네요. 저는 한번 쓴 글은 부끄러워 못 읽겠더라고요 ㅋ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