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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와 수류탄 - 생활사 이론
기시 마사히코 지음, 정세경 옮김 / 두번째테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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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오키나와 거주민들의 이야기를 청취하여 오키나와의 '역사와 구조'에 연결한 보고서다. 이렇게 요약하면 딱딱한 이론서처럼 들리지만, '약속으로서의 실재론'인 조사자와 구술자의 대화는 참혹한 역사적 관계에 우연히 엮여 들어간 평범한 인간 군상의 묘사로 감동적인 이야기들의 태피스트리다. 


표제작인 <망고와 수류탄>은 패전 후 일본군이 오키나와 민간인들에게 수류탄을 지급하고 자결을 명령한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할머니의 구술 이야기다. 당시 소녀는 엄마의 용기와 기지로 거기에서 탈출하지만, 미군이 쏜 박격포에 바로 옆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겪는다. 오십 년이 지나서야 소녀가 그날 뒤집어 쓴 게 아버지의 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손수 얼려서 이고 지고 온 망고를 이 연구에 참가한 젊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훈훈한 결말을 품은 이야기 중에 이렇게 슬픈 사연을 지닌 것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회학자에게 소녀 시절 겪은 역사적 참상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그 후에 깨달은 비극적인 진실까지 덧붙인 노인은 인간에 대한 불신과 삶의 잔인함, 비관을 한탄하는 대신 다음 세대에 대한 사랑의 마침표를 찍는다. 


1945년 저 섬에서 그녀는 일본군에게 두 개의 수류탄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2015년 이 공민관에서 수류탄 대신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준 것은 몇 개의 다디단 망고였다.



저자는 본인이 택한 생활사 이론의 질적 연구에서 조사자의 경계짓기, 범주화를 통한 이해에 어떤 편견과 폭력이 게재되거나 연구 대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거짓과 모순이 드러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 한계조차도 연구의 실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를 완성하는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즉 그 불완전함, 그 한계가 인간이 인간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것의 실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면서 잘못된 기억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진심 전체가 호도되고 그것을 들은 사람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어떤 진실의 핵이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말하고 듣는다,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감정의 상호교환이 있고 이것은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기에 특유의 가치를 지닌다. 누군가의 아픈 생애를 그 우연적인 역사의 폭력에 다친 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 자체로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 의미란 없다. 우리가 어떤 전쟁에 휘말려들게 되는 것에도, 어떤 계층의 집에 태어나는 것에도, 혹은 '남자'나 '여자'인 것 그 어느 것에도 의미는 없다. 우리들은 절대적인 외부에 연쇄하고 있는 무한한 인과관계의 흐름 안에 갑자기 던져졌고, 거기서 살아가야 한다.



사회학자인 저자의 연구 방법론에 대한 책에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살아내는 인간 군상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여러 명의 주인공들의 순간을 담은 아름답고 슬픈 단편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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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5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사두었는데 블랑카 님의 리뷰를 읽으니 얼른 이 책을 읽고 싶어집니다. 망고와 수류탄 이라는 제목부터가 참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잖아요? 그것들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이 리뷰를 통해 엿본 느낌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24-10-25 14:19   좋아요 1 | URL
저 이 책 망설이다 다락방님도 사셨다길래 산 거예요. 중간 방법론은 좀 지루한 대목들이 있긴 한데 전반적으로 정말 좋았어요. 땡스투를 사고 나서 해서 다락방님한테 제대로 갔을지 모르겠네요.
 
가족의 무게 - 가족에 의한 죽음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사탐(사회 탐사) 7
이시이 고타 지음, 김현욱 옮김, 조기현 해제 / 후마니타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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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안전할까, 위험할까. 바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시로 받는 평가, 비판, 책임의 무게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일 수도 있지만 그 구성원들도 각기 다른 개성, 욕망, 꿈을 가진 개인이기에 때로 다툼과 해결 못할 불화 속에 고통을 당하다 뉴스에 나오는 극단적인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족 살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벌어진 결과론적인 사건을 접할 때 언론은 그것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에 바쁘다. 그 이면에 깔린 가족의 전사, 사회의 책임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그 사건 당사자들을 철저히 타자화하면서 우리의 안전을 자족하기에 더 쉬운 일이니까. 우리도 언제든 그 비극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자각은 위험하니까.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만당한 것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의 붕괴는 특별한 사람들만 경험하는 특수한 경험이 아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영원히 건강하고 젊고 언제나 사회 구성원으로 적절히 제대로 기능할 수는 없다. 누구나 늙고 약해지고 병든다. 어쩌면 가족의 의미는 그때부터 다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위험하고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다. 저자 이시이 고타는 일본의 유명한 논픽션 작가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부터 6년간 일본내에서 벌어진 일곱 건의 가족 살인 사건을 직접 취재한 건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사랑스러웠던 아들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엄마를 공격하고 행복하게 사는 여동생에게 살의를 느꼈을 때 선량하고 성실한 사회 구성원이었던 아빠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를 학대했던 엄마가 정작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그걸 못 들은 척 하고 죽음까지 방조, 방관했던 자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아무리 전방위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해도 끊임없이 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자매의 정신병은 과연 누가 잠재울 수 있을까?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고 학대 당하고 유기 당했던 유년을 간직한 여성은 과연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결말들을 담고 있다. 


처음 가족을 꾸릴 때 사람들이 했던 생각과 의도는 비극의 서막처럼 들리고 지극히 평범하다. 누구나 좋은 아내, 남편, 엄마, 아빠, 아들, 딸이 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자녀의 혹은 부모의 문제는 경제적인 부담과 함께 맞물려 그 책임감을 통해 개인을 짓누른다. 이 책에서의 가족 살인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나누고 개입할 수 있는 부담을 철저히 개인이 소화해내려 애썼다. 개인이 극도의 피로감과 책임감에 짓눌리다 보면 이성적 판단이 어려워진다.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이 찾아내야 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구조다 보니 끝까지 가족들이 가족 구성원의 장애, 질환을 간호, 간병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돌봄의 무게는 시시포스의 돌처럼 회귀한다.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현상만을 보여주는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처음에는 이 책이 그런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게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회의했다. 그러나 그 가정 내에 들어가 그 가족의 서사를 다시 재구축할 때 비극의 단초를 탐색하고 어떤 타이밍에서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나를 조망할 수 있는 읽기는 많은 시사점을 품고 있었다. 아무도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개인이 모든 걸 안고 갈 수 없다는 깨달음은 우리 사회와 복지 시스템이 기능해야 하는 지점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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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2-04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산 책이에요. 읽기도 전에 마음이 무거워요ㅠㅠ;

blanca 2023-02-04 14:30   좋아요 1 | URL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고요. 평범했던 가정이 일순간 뉴스에 대서특필되는 가정이 되는 게 사실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고,병,노쇠에서 촉발되는 이야기들이어서 읽고 나서도 두렵기도 하고 그랬어요. 저자 어조가 내용과는 달리 참 담담해요. 그래서 더 와닿는 것도 같아요.

바람돌이 2023-02-04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르포성 책들은 많이 나와줘야 할거 같아요. 그래야 사회적 반향도 일으키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 끔찍한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포착하고 사회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니까요.

blanca 2023-02-04 14:31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사회가 개입하고 나눠야 하는 짐을 온전히 가정 안에서 감당하려다 벌어진 사고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stella.K 2023-02-04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면 마음이 무겁겠어요.
우리나라는 찾아가는 서비스란 점이 그나마 일본 보다는
좀 낮지 않나 싶네요. 기능하는 사회란 그런 것이어야 하겠죠.

blanca 2023-02-04 17:34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좀 그래요. 태어나 살고 늙고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는 게 참 삶의 숙제 같고 주변에 폐를 안 끼치겠다는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게 비극적이고. 시간만 가면 더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배워야 하는 것 투성이인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3-03-13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3-03-14 18: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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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인 가해자의 서사가 횡행하는 곳에서 영원히 잊힐 뻔한 무명의 희생자의 삶을 구체화하여 그들도 사랑하고 소망하고 꿈꾸고 실망하고 슬퍼했던 딸, 여동생, 어머니, 아내, 연인이었음을 기억하게 해 준 이야기. 저자가 소망했던 이들의 존엄의 구원은 마침내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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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지음 / 모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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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부터 제대로 읽으려던 건 아니었다. 법정에서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다룬 이야기라 생각해서 흥미로운 대목들만 골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 정도부터 읽다 결국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와서 에필로그까지 정독했다. 법조인들의 문장력이 대체로 좋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박주영 판사의 문장은 잘 쓰기 위해 멋을 부린 게 아니라 적확한 어휘를 제대로 포집하기 위한 노력과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사려깊음이 그대로 느껴져 특히 좋았다. 쉽게 쓱쓱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은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에너지의 밀도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촘촘하고 깊이 있고 사색적이지만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은 좋은 글이다.


업무로 법정을 드나들 때 법복을 입은 판사들은 나에게 엄청난 갑처럼 보였다. 그들의 넓고 긴 소매는 그들의 권력과 일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적어도 한 뼘쯤은 더 위에 있는 그들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내리는 선고 하나로 울고 웃는 민원인들의 모습 속에 삶과 유리되어 무언가를 심판할 수 있는 권력을 단지 시험 성적으로 특정 소수에게 준다는 데에 솔직히 회의가 들었다. 충분히 살고 겪어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저들은 대체 어떻게 판단하고 심판하나 나는 의심했다.

그 우려는 저자의 지난한 사실 증거들의 수집 과정과 합리적 의심이라는 '바'로 통제하는 심증에 대한 엄중한 숙고, 피해자와 피고인의 삶의 서사로 파고드는 공감력,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읽고 쓰려는 그 성실한 공부의 과정에서 불식됐다. 물론 모든 판사가 박주영 저자 같진 않을 것이고 말과 글로 보이는 모습이 그의 전부이거나 그와 반드시 일치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법정에서 만난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삶은 그들이 그런 상황으로 치달은 데에 대한 사회 공동의 책임의식의 환기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공모한 젊은이들이 끝내 공감한 유일한 대상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안면도 없이 만나 죽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낸 타인이라는 사실, 극한의 빈곤으로 내몰려 정당하거나 적법한 생계 수단을 찾아 헤매어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 최선을 다해 키워내려 했지만 결국 아이와 동반자살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아의 어머니. 우리는 범죄의 현장이라는 극단에 가서야 그 얼굴 없던 법정의 얼굴들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을까, 깊은 비애가 들었다.


저자의 글이 공감을 얻는 지대는 그가 그들의 바깥의 외부 관찰자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삶은 연약하여 어떤 운명의 비극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우리가 단지 이 법정의 얼굴들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어떤 범죄를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의 사적인 드라마로 머물고 단죄될 때 사회는 그것을 단지 선정적인 스토리로 소비하고 뒷짐을 질 수 있는 편리한 위치로 물러난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회와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는 공통된 안정감은 구성원의 결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든 힘든 일이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될 때 우리는 타인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다. 결국 공익은 사익으로 확산된다. 


"사법절차가 생각보다 무력하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저자의 건강문제로 인한 갑작스런 휴직으로  "후회는 없었지만 좋은 판사가 되지 못해 아쉽긴 하다"로 맺어 마음이 무겁다. 박주영 판사의 글로 인해 나의 좁은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얕은 넓이가 깊이로 확장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도록 글을 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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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22 15: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유퀴즈에 박주영 판사님 나오신 걸 봤어요. 저는 그전에 <어떤 양형 이유>를 읽었습니다. 특별한 기억이 남진 않지만 글을 아주 잘 쓰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구나 생각했었어요. 이번 책도 사두었는데 블랑카 님 역시나 읽으셨네요. 저도 곧 따라 읽도록 하겠습니다.

blanca 2022-06-22 15:09   좋아요 2 | URL
저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박주영 판사님 글 읽게 된 거예요. 감사드려요. 그리고 사실 여자인줄 알았어요 ㅋㅋ 챕터를 드문드문 읽는데 문장이 남자 문장이 아니라 여자처럼 섬세하고 눈물도 많고 해서 여자 판사구나, 엄마구나, 이랬다니까요. ㅋㅋㅋ 특히 페미니즘 관련 글. 다시 오십대 남자분이라는 걸 알고 나니 정말 다르게 비범하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어떤 양형 이유> 읽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얄라알라 2022-06-23 1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blanca님과 ˝법정˝스님 댓글 주고 받은 후 놀러왔는데, 제목에 ˝법정˝^^

저도 간혹, 문학 외 특정 분야의 경지에 오르신 혹은 인정받는 전문가분이 쓰신 글이, 문학가의 것인양 좋을 때 놀라서(질투나서) 꼼꼼하게 읽습니다.

blanca님 리뷰 읽다보니 ˝~~한 바,˝ ˝바˝는 일상의 단어가 아니라 법조계의 언어구나, 생각이 듭니다.

박주영 판사님께서 blanca님 이 리뷰 꼭 읽으셨음 좋겠어요


blanca 2022-06-23 13:00   좋아요 2 | URL
헉, 이런 우연의 일치가! 맞아요, 저도 그래요. 진짜 읽어주심 좋을 텐데요...

mini74 2022-07-08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정용어는 너무 어렵게 쓰는거 같아요. *^^* 당선 축하드립니다 *^^*

blanca 2022-07-09 09: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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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깝게 혹은 다행히도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IMF가 터졌고 졸업 전후까지 이 여파로 여러 대기업 공채들이 취소되거나 규모를 줄여 취업난을 호되게 겪기도 했다. X세대로 명명되어 거침 없는 자기 표현, 문화의 소비 주체로 인식된 시기를 잠시 겪기는 했지만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어떤 세대의 명명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된 감이 있다. 그 세대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결과는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모두의 삶은 개인적인 것이고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는 얕은 사견이 깨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노동자로서의 삶,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체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오한 인식이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반면 오늘날의 세대의 명명은 진지한 만큼 더 어두운 그 세대만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나 IT 기기를 필수품처럼 접하며 자라난 세대.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집중 육아로 자라나는 가운데 미래의 꿈을 선언하며 그 꿈에 가 닿는 직진 경로로 교육을 통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던 세대. 그러나 막상 사회로 나왔을 때에는 약속 받았던 직장도 미래도 실종된 곳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은 시간 고되게 일하며 번아웃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 본인이 속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저자 피터슨이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확장하고 상술하려는 시도의 결과물"로서 "우리 자신을, 우리의 번아웃에 기여한 체제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어휘와 틀을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미국에 사는 밀레니얼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2022년 이 지구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느라 분투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열렬히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존재가 시장 논리 안에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징한 분석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이 아니어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시적인 그림 안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프리즘을 제공해준다. 


밀레니얼들은 수십 년 동안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우리 개개인은 잠재력으로 가득하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잠재력을 부모와 달리 돈 걱정 없는 완벽한 삶을 만드는데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들을 일자리에 맞추어 기르고 최적화하는 사이에 그런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호 장치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해체시켰고, 직장에서 없애버렸다. 

-pp.165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밀레니얼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대치 자체를 무한하게 끌어올림으로써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비전을 주고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최대한의 이윤을 내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노동자들을 절감해야 하는 비용으로 치환 시켜버렸다. 우리는 산업 현장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청년들을 착취한 사례를 잊을 만하면 듣게 된다. 그들의 비참한 처우는 사고가 나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표면화되지 않은 은밀한 착취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는 양육 과정 자체를 근사한 이력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뛰어들었던 마음과 그 시장 가치가 곧 존재 가치로 치환될 때 무시할 수 있는 인생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즉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은 이야기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화되는 경향성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하나의 부수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요즘 애들"을 양육하며 그들을 통해 키웠던 그 자본주의적 계층 상승의 꿈과 떨어져 이야기될 수 없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요즘 애들"과 우리 모두의 번아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모한 결과라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 책의 한계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노출함과 동시에 결국 거대 담론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것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각성 시키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탈진할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일에 쏟고 그 틈새에  SNS의 타인들의 자기 과시적 삶을 순회하며 비교와 불안으로 소진되는 하루하루가 삶을 채우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의 통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급진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겠다는 절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생존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사는 일은 많은 것들을 합리화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내지 않는 일은 실패로 규정된다. 그리고 그 이윤을 가장 쉽게 가시화시키는 것은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건비가 될 때 근로자들의 삶은 간과된다. 더 많은 사적인 시간을 포기하고 회사의 공적인 삶에 자신을 복무시킬 때 그것은 미덕으로 간주된다.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물가가 안정되기를 바라고 주식 투자자가 되면 배당을 받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이면의 노동자의 착취를 의도적으로 간과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면 자녀가 이왕이면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이름 있는 대학 졸업장을 들고 취업을 잘 해서 빠른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이런 사회적 시스템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지점에 저도 모르게 자녀를 던져 넣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이왕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상충하는 욕망들의 집합소가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존재들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세대의 번아웃은 출구가 없는 영원한 쳇바퀴다. 우리의 자식은 누군가의 근로자가 된다. 입으로 대의와 노동자의 기본권을 외치지만 정작 자영업자가 되어 아르바이트생의 노동에 기대다 그들이 어느 순간 4대 보험 보장을 요구하면 난감해 한다. 이렇게 자신의 번아웃을 주장하며 저도 모르게 타인의 번아웃을 조장하게 된다. 결국 피터슨의 냉소는 하나의 단서이자 전조가 된다. 

자신의 번아웃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당신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다. 

-pp.367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그 말만큼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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