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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건강의 배신 -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 부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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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건강검진 대상이 되어 오랜만에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근래들어 속이 쓰려 위염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어질어질한 가운데 조직검사를 두 건이나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처음도 아니건만 문득문득 밀려드는 공포로 지옥이었다.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겁쟁이 쫄보였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안 좋다면서 몸을 관리하기 위한 연례 검진은 되레 극한의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경우가 많다. 몸안에 자잘하게 생기는 혹들도 알게 되는 순간 경과와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종의 질환으로 거듭난다. 추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실,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쉽게 무시할 것이 못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연 이렇게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아니, 우리가 과연 이렇게 검진을 통해 우리의 삶의 주기와 질을 관리할 수 있기는 한건가?


나는 몸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지지하는 최신 과학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몸은 잘 정비된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한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세포의 지속적인 갈등이 일어나는 장소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책의 끝에서(삶의 끝은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자아라는 것이 조화로운 몸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자아란 무엇인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건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으로 유명한 사회비평가다. 이색적으로 그녀의 전공은 세포면역학이다. 과학도였던 셈이다. 사회에 만연한 일반적인 현상에 도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지금의 웰니스 열풍, 건강검진의 연례화 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다.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질병을 마치 정복해야 할 하나의 문제로 간주하는 현상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세포생물학과 면역학에서 발견하게 된 과학자적 회의와 맞물린다. 특히 흔히 몸안에 침투하는 나쁜 세균이나 염증과 싸워 우리 몸을 사수해주리라 기대했던 대식세포의 반전은 놀랍다. 오히려 우리 몸을 정복하는 암세포의 확장과 전이를 돕는 편에 가담하게 되는 전환은 우리몸 자체가 디스토피아적으로 시간과 함께 파멸, 분해되리라는 암울한 전망을 지지한다. 의료화된 삶도 결국 이러한 몸의 반란 앞에서는 그 어떤 혁신적인 치료법을 쓴다 해도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승산없는 싸움의 패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와 이 책의 출간시기를 감안해 보면 일흔을 훌쩍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쉽지 않은 용단이다.


나는 예방 의료를 거부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의료화된 죽음'이라는 고문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의료화된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한다. 나의 결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단호해진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매월, 매일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창문 없는 대기실인이나 삭막한 검사실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죽기에 충분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취이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유는 축하할 가치가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건강의 배신]


피트니스 열풍과 극단적인 식이통제 등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이 마치 개인의 도덕적 의무이자 자기 관리의 표증인 것처럼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죄책감을 자극하는 요인들로 둘러싸여 있다. 건강관리는 심지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까지 작용한다. 저자는 이 정도가 이미 정상 수준을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마음챙김, 명상 열풍 또한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얘기한다. 자본주의와 맞물린 자신의 몸과 삶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맹신은 과학도가 보기에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차별적인 계층구조와 맞물려 있다. 빈곤층은 이러한 열풍에 동참할 재원과 시간이 부족하다. 


과학의 진보는 우리가 우리의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키우게 되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소비하고 향유할 것이 넘치는데 여전히 죽음을 직시하는 문제는 쉽지 않음을 반증한다. 우리는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 자기 소멸에 대한 불안감은 죽음이 넘쳐났던 과거에 비해 더 증폭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공포를 파고들어 상품화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지점을 직시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결국 이것은 저자가 사전에 예고했듯이 우리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에 대한 심원한 질문으로 심화된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모호하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지성의 지평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얘기의 잔영은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초조해하며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이 메시지가 가지는 위로는 적지 않았다. 이런 것들로 소진하기에 삶은 너무나 짧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작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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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10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왜 아니겠습니까) 블랑카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조직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블랑카님?

다들 같은 마음인가봐요. 건강검진을 받아 몸의 이상을 체크하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검사를 앞두고서는 혹여 몸에 이상이 있을까 두려워하게 되잖아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그 초조함, 정말 스트레스가 크죠. 그런 한편 별 이상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크게 안도하게 되고요.
말씀하신대로 건강검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사실 다들 검진을 미루고 또 미루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미루고 있습니다..

blanca 2019-09-10 10:50   좋아요 0 | URL
괜찮다고는 나왔는데 위염이 너무 심해서 걱정이네요. 그 좋아하던 커피도 이제는 이틀에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먹는 데서 찾던 낙 다 포기해야 될 판입니다. 면도 엄청 좋아하는데 요새 못 먹고 우울합니다. 여튼 이제 모든 지수가 조금씩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네요. 다락방님 빨리 하세요. 이 책 저자야 일흔이 넘어 그렇다지만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요.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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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하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생로병사'는 부인할 수 없는 절대명제이지만 그래도 중년이 되기 전까지는 솔직히 '나'를 주어로 대입하여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프로이트가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는 사실 자신들의 불사를 믿고 있다고 한 지적은 일견 적나라한 진실을 반영한 면이 있다. 정말 이 힘겨운 나날들,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들에 헌납하는 시간들이 종국에는 '무'로 스러질거라는 걸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고 정말이야,라고 수긍할 수 있을까? 하나 분명한 것은 자주 잊어버려야 견딜 수 있다. 죽음이란 산 자의 입으로 백주대낮에 화제로 올리기엔 참으로 두려운 이야기다. 


그래도 때로 아니 종종 상기한다. 나의 부재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지금 이 시대를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도 계속될 이후의 분주했던 분주한 여전히 왕왕댈 거리를...... 등골이 서늘하지만 그런 가운데 얻는 것이 있다. 이 한정된 시간을 무한정 쌓아둔 것처럼 낭비하고 별 것 아닌 일들로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이다. '메멘토 모리'


이 책은 좀 잔인한 면이 있다. 죽음 자체를 중심 화제로 올리는 것도 그렇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간병하는 문제, 장례 절차,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 등에 대한 대단히 솔직하고 노골적인 논의가 인상적이다. 죽음 자체를 통제하는 것에 대한 환상도 이상화도 없다. 죽음을 둘러싸고 당면해야 하는 자잘한 문제들에 대한 회피도 지양한다. 유한한 삶의 전제를 망각한 채 거대한 소비의 환상을 주입하는 데에 골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단히 용기 있는 이야기를 저자는 서슴없이 한다. 그녀 자신이 실제 완화의료 분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죽어가는 자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그 이후의 실질적인 고충들에 조력자 역할을 한 경험은 현실을 보기 좋게 쓰기 좋게 가공하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허영이나 이상주의보다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지난하고 처절한 경험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데에 더 열중할 수 있게 해 준 것같다. 


우리는 위태로운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눈앞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삶에 간절히 매달린다. 우리는 나날이 빛나는 특별한 삶을 찬미한다. 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에는 죽음이 따른다. 아무리 다정하고 완벽한 만남도 결국엔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p.298


불교도로서의 철학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어떻게 그 갑작스러운 종결을 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울림 있는 조언으로 확장된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듯, 우리네 인생도 흘러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여린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서 견고하게 대지를 덮는다. 개개인은 잔물결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대한 파도이다. 우리는 무한히 깊고도 영원한 바다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높이 치솟았다가 초연히 스러진다. 이것은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반대쪽이다. 죽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안전하다.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p.207


당신도 나도 아프지 않고 안전하게 그 능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라블레가 죽음 직전에 남긴 말을 가지고 갈 일이다. 

"나는 엄청난 '어쩌면(perhaps)'를 탐색하러 간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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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애비뉴의 영장류 - 뉴욕 0.1% 최상류층의 특이 습성에 대한 인류학적 뒷담화
웬즈데이 마틴 지음, 신선해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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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뚱뚱한 여자는 없었다. 못생긴 여자도 없었다. 아무도 가난하지 않았다.

-p.227

 

살면서 속물이 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장담할 일이 아니다. 내 안의 욕망, 시샘, 질투, 비교를 언어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고결함만으로 설명되고 규정된다는 건 유달리 속물적 욕망을 드러내는 이를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속단하는 것만큼 한계에 갇힌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욕망 그 자체가 어떤 사람의 행동의 동인의 전부라 여기고 그 틀안에서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특히 아이를 가진 엄마는 참으로 복합적이고 다변적이고 언어화하기 힘든 섣불리 규정되기 힘든 존재가 아닌가 싶다. 이기심, 모성애, 이타성은 명확한 경계를 때로 불허한다.

 

어쩌면 내밀한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속물적인 이야기다. 인류학을 공부했지만 인류학자라고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는 저자 웬즈데이 마틴이 '맨해튼 엄마들의 세계' 속에 들어가 '동화'되어 완벽한 거리두기에는 실패한 상태에서 그들을 학문적으로 고찰하고자 시도한 이야기다. 그녀 자신이 거기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들만의 배타적인 세계에서 왕따도 당해보며 객관, 중립, 주관을 왕복하며 풀어내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아이의 놀이약속을 잡아보려다가 숱한 거절을 당한 체험, 마침내 우연한 기회로 그 집단에 받아들여졌을 때의 어쩌면 좀 속물적으로 보이는 환희, 소위 에르메스의 '버킨백'이 남성들의 고급 자동차처럼 작용하는 세계에서 그 가방을 어렵게 구하려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실제 그 세계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  "협오스럽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정면 응시였다.

 

'생태학적으로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안전성은 확보된 지 오래라 생존 그 자체의 문제로 분투할 필요가 없는 이 최고급 동네의 생래적 자유이기도 하고, 더불어 양가적인 구속이기도 하다. 물질적 제한에서 해방된 자리에는 극도의 불안, 질시, 경쟁이 게재된다. 최고의 자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파크애비뉴 70번대 가의 엄마들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술을 마시며 그 불안을 잠재운다. 저자는 내심 그러한 그녀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 안쓰럽기도 하고 경멸스럽기도 하다. 최고급 학력을 지닌 이 동네의 많은 여자들은 직장을 다니며 일하지 않는다. 최고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만 가정내에서의 위치에는 그녀들이 학창시절 누렸던 평등의 개념은 사변적으로 전락한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권리, 의무,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 가족 내에서 풍요로운 물질을 둘러싼 미묘한 불평등, 긴장이 팽배하다. 그러니 그녀들은 불안하다. "명예와 수치의 문화"는 "낯을 잃을까" 두렵게 만든다. 보이는 것들을 최고급으로 유지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는 그녀들의 정체성을 공고화하는 게 아니라 그녀들의 정체성 자체를 타의적이고 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실제 저자 자신이 아이를 잃는 경험을 하며 거만하고 도도해 보였던 그녀들의 호의, 연대를 경험하며 현대 사회의  "모성집약적인 양육 문화"가 어떻게 엄마들을 짓누르는지를 상기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실제 그녀들이 경험했던 숱한 남녀평등의 신화는 자의든 타의든,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의 공격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에너지와 지성, 능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최고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그녀들을 한정하게 된다. 삶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숱한 긴장과 알력 관계는 이들을 박제화했던 것이다.

 

건설적이거나 절충적인 해법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적 고찰은 관찰자가 그 집단에 동화됨으로써 수시로 기우뚱거린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의 미덕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나'는 끊임없이 최고의 사교계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분투하지만 그러한 속물근성은 결국 고전이 되었다. 대단히 고결하고 대단히 이상적인 것은 지향이 될 수는 있지만 삶의 역동과는 때로 빗겨간다. 그렇다고 모든 속물적 욕망이 정당화되거나 이상시되는 것도 존재와 삶을 한 차원 전락시키는 것이 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예술은 글쓰기를 포함해서 인간의 저급한 욕망과 고결한 이상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균형의 무게추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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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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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베네수엘라가 3년 새에 열악한 공중보건으로 신생아 사망률이 백프로 증가했다는 외신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했던 정부의 붕괴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예측 변수가 '높은 유아 사망률'이라는 지적의 예증 같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높은 유아 사망률이 정부가 허약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라는 것과 통한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역할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유독 이 책에서 열대국가들의 문제를 공중 보건 정책의 관점에서 조명한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얘기인 셈이다.

 

<총,균.쇠>의 저자로 각광받은 저자는 언뜻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어려운 얘기를 하는 석학으로 비쳤다.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이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지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대단히 광활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노교수의 육성이 들리는 듯할 정도로 생생하고 쉽고 지루하지도 않다. 세계적으로 불평등과 테러와 환경 오염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역사적이고 지리학적인 저자의 식견에 근거한 해법은 사변적이지 않으면서 진지하고 통찰적이다. 저자가 지리학 교수인 만큼 지리학적 위치가 어떻게 그 나라의 경제와 제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결론적으로 부의 불균형을 낳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국과 유럽의 원정대를 비교하며 결국 중국이 세계의 선두적 위치를 차지했을 수도 있었을 과거의 기회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에 역사적 분석도 인상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오히려 여기에서 '사공이 많아 배는 계속 나갈 수 있었다'로 치환되어도 무방할 듯하다. 정화의 원정대는 황제가 함대의 파견을 중단하는 것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유럽의 원정대는 여러 통치권자들의 지원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어 계속 이어져서 세계 정복의 동인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편 현대의 중국의 영향력과 미래 전망에 대한 모호하고 상대적으로 짧은 언급이 아쉬웠다.

 

'건설적 편집증'이라는 저자의 용어는 꼭 국가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개인의 삶에 적용할 만한 지침이 된다. 현대인들은 테러, 전쟁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음주, 흡연, 낙상 같은-은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은 개인 생활에서의 위기 관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조언이 된다.

 

현대의 각종 테러, 난민 문제를 세계적인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만 단순화하여 선진국의 경제 원조와 지원의 해법을 제시한 것은 문제를 평면적으로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당연히 경제적으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다른 안전하고 풍족한 국가를 공격하거나 그곳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에 난민이 되고 테러를 가한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국민들을 잠재적 난민과 테러분자로 낙인 찍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개인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들보다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반드시 무겁고 어렵게 이야기되지 않아도 된다,는 전범을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위기 문제의 해결이 개인의 삶에서의 위기 상황 타개에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부분을 여러 예시와 접목시켜 보여주는 대목은 개인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문제 해결과 역사의 과정이 분리될 수 없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방식에 어떤 노력과 시도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은 결국 닮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일인당 평균 인간영향'이라는 용어는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자원량과 생산하는 평균 폐기물량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화석연료 소비와 비례하므로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살면서 소비하고 쏟아내는 모든 것이 지구를 황폐화하는 데에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매주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한 가족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지 놀라게 된다. 내가 지구를 차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적게 소비하고 적게 오염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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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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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뒤늦은 한파가 몰아닥쳤다. 오후에 외출하기 전에 아이는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했다. 금요일 오전에 병원에 다녀온 후 아이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해열제로 버텼다. 계속 예감이 안 좋았다. 그냥 감기가 아닌 독감이나, 신종플루, 폐렴이 연상되었다. 수요일 외출부터가 잘못 끼어진 단추였다. 자아비판은 계속된다. 그 때 그렇게 안 했더라면, 맞아! 왠지 그랬어! 역시 엄마의 직감이 맞는거야. 내 생각대로라면 주말에 응급실에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치료했으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야. 갑자기 나의 직감력에 대한 신뢰는 고양되고 주변에 비난할 구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사후판단 편향은 사태가 벌어진 후 뒤늦게 그 불가피성을 확신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후판단 편향 때문에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식한다.
-p.266

 

말콤 글래드웰한테 들켰다. 나는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사후판단 편향이 초래하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다른 미래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p.272

 

말콤 글래드웰이 <뉴요커>에 실었던 글 중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과 관련해 흥미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가려뽑았다(머리말 중 인용)는 이 책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태들이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뜻 가벼운 칼럼집 정도로 치부되어 평가절하될 수도 있는 그의 글들에는 다른 모든 모호함을 봐 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고 진중한 경구들이 군데군데 튀어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이니까 가능한 얘기이다. 아마도 그건

 

아이디어를 찾는 비결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p.9

 

이러한 그의 자세 덕택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이디어의 원천 탐색에만 그칠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그들 각자 나름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자세는 삶을 대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자세이기도 하다. 염색약 광고, 개 심리학자, 유방조영술과 항공사진 판독의 한계,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의 몰락, 토니상 후보에도 올랐던 <프로즌>의 표절 논란,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 등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는 이윽고 이 에피소드들을 색다른, 때로는 이단아적인 시선으로 해부한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했던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때로 모호한 결론으로 이어져 좀 맥 빠지게 하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그의 재기와 기지는

여전히 빛난다.

 

지적 재산권에 의외로 열정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을 뽑는 데 더 많은 돈을 들이는 사회를 비판하며 채용을 개인과 회사가 맺는 낭만적인 관계로, 면접관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헛된 약속이라고 중얼거리는 말콤 글래드웰, 그를 나는 지극히 편파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미래를 망쳐버릴 지도 몰랐던 나를 구원해 주는 지점에 그가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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