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어나더커버)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들의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가 되어 한 인간의 창의력을 일깨우는 일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들어있다. 잊고 살았던 정작 중요한 것들을 다시 되찾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 책, 자신들이 만든 그림책처럼 사진 속 작가들의 미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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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라는 건 언뜻 절대적일 것 같지만 상황에 따라 대단히 상대적이다. 모두 여성인 집단, 남성이 대다수인 집단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각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홍일점인 집단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하며 나는 내가 당하는 어떤 불합리, 부당한 일들을 대부분 내가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통과한 후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분명 그것과 상관 없는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그렇게 됐다. 그건 내가 평등하게 대우 받거나 평가 받지 못한다는 반복된 경험에서 비롯된 편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떤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나는 때로 그 경험의 소유자가 아니라 노예가 된다. 


몇 년 전 해외에 있으면서 백인들 속에서 나는 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점점 그들이 하는 말, 행동들을 내가 아시아 여성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건가? 내 피부 색깔이 이러해서 그런 건가? 내가 백인이어도 그랬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됐다. 분명 전혀 인종과 상관 없는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프리즘을 통과해서 사람들의 나에 대한 시선을 자꾸 해석하게 됐다. 심지어 내가 흑인이었다면? 이런 가정을 하게 된 적도 있다. 전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아직도 남성과 여성인 것이 사소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백육십 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피부 색깔은 여전히 중요했다. 의식하거나 미처 의식하지 못했거나 아시아 여성과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과 백인 남성의 삶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르게 흘러간다. 
















백인의 외모를 갖춘 흑인 여성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상상해 본다. 흑인 여성으로 사는 삶이 백인 여성으로 사는 그것과 전혀 다른 열등한 경로를 가고 마침 자신이 백인과 비슷한 용모를 갖추고 있다면 분명 유혹적인 상황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리그를 떠나간 친구가 마침내 다시 돌아왔을 때 느낄 이중적인 감정은 짐작이 간다. 아이린은 친구 클레어의 패싱의 비밀을 지켜주고 싶기도 하고 그것에 공모한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하며 한편 그녀가 파멸하기를 바라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패싱을 단죄하는 것 같은 결말이 씁쓸하다. 


안온한 자리, 절대적인 안정은 삶에서 없다. 고정적인 정체성도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지금 누리는 것들은 결국 지금 우리의 욕망의 상한선 아래에서 맴돈다. 노화와 죽음을 배제한 욕망은 환상 그 자체다. 그러나 그 환상 없이 일상을 지속하기란 어렵다. 이 모순의 줄타기가 삶이다.
















오십 대가 되어 추방당한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가기 전 카사노바는 한때 후의를 베풀었던 올리보의 영지에서 그의 조카딸을 만나 애욕을 품게 된다. 더 이상 젊음도 외적 매력으로도 젊은 여자를 유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과정은 비참하다. 모두가 카사노바라고 생각했던 그 화려한 성적 매력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우리이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도 우리는 스스로를 여전히 확인할 수 있을까? 그 진지한 물음에 정답은 없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이 된 <꿈의 노벨레>는 단지 부부의 성적 판타지의 화려한 향연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다. 의사 프리돌린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에서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우연히 참석하게 된 가장 무도회에서 만난 욕망의 대상이 딱딱한 시체로 돌아왔을 때 그가 느낀 허무와 놀라움에 대한 묘사도 그러하다. 우리가 딛고 선 생의 지반은 어쩌면 모두 허위인지도 모른다.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을 해체하고 정상과 비정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의 철책을 과감하게 허무는 슈니츨러의 글쓰기는 경이롭다. 마침내 프리돌린이 아내 곁에 누웠을 때조차 우리는 그것이 그가 원래의 삶으로 안온하게 귀가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좌절된 욕망의 집적이 생임을 암시하며 작가는 비정하게 떠나버린다. 이것은 <패싱>도 다르지 않다. 다른 세계로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는 곳으로 건너갔다고 생각한 순간 파멸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이야기는 대안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에 대한 환상을 그리는 것으로 그친다. 


결국 돌아오는 곳은 여전히 우리가 도망가려고 애썼던 바로 그 현실이다. 여전히 욕망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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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는 로알드 날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흠뻑 빠졌다. 작가 로알드 달이 이미 죽었다는 얘기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짜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세계의 건설자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여기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야기의 화자가 저 세상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읽기는 죽음이 가지는 불가해성의 정점을 통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최근에 아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김희준 시인은 1994년생인데 불의의 사고로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유고가 된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은 깊고 넓고 새롭다. <행성표류기>는 산문인데 우주 여행자인 '나'를 화자로 하는 만큼 소설로도 읽힌다. "내 몸에는 은하가 흐르고 유전자에는 외계가 섞여 있다."는 시인의 고백을 근거로 삼자면 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천계도감을 끼고 살았던 우주의 별이 되어버린 시인 그 자체로도 보인다. 


목동자리, 처녀자리, 궁수자리, 백조자리, 오리온자리마다 얽힌 시인의 언어로 재해석되어 재창조된 신화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거대한 산문시이자 인생에 대한 오묘한 철학책처럼 읽힌다. 별자리마다 지도를 구해 다음 행성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현실을 떠나 있는데 어쩐지 '생의 곡진함'을 품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성운은 오리온대성운에 속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별이 성운 안에서 태어나고 늙어간다. 생과 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니 성운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어느 곳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김희준 <행성표류기>


스콜처럼 하늘에서 편지가 내려 살아있는 글씨가 손바닥에 묻는다는 백조자리의 이야기는 김희준 시인의 편지가 읽는 이에게 어떻게 내려 꽂혀 인장을 만드는지에 대한 은유처럼 들린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시인의 언어가 살아 있다. 그녀의 세계는 이렇게 허무하고 신산한 현세의 삶을 해체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를 진정으로 그리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마무리는 분명히 있어, 엄마.

                                          2020년 6월

예언 같은 말. 그것은 어쩌면 시인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하나의 거대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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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대신 플래너에 매일매일 일어났던 중요한 일들과 단상을 적는다. 아마 스무 살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느다란 펜으로 이제는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깨알 같은 글자들로 대단치도 않은 일에 겁나 호들갑을 떨며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을 디테일들로 채워졌다면 이제는 "오늘 ~가 왔다. 후회한다, 두렵다. 기쁘다. 좋다." 등등 초 단답형의 단문들로 내 일상들이 설명된다. 그마저도 너무 피곤할 때는 공란이다. 그래서 분명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을 한 주가 통으로 공백일 때가 있다. 그 공간은 나의 피로와 권태를 설명한다. 이제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 특별한 일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일기를 쓸 거리들로 충만했던 과거들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때로 너무 벅차서 이를테면 기쁘면 너무 신이 나 잠이 오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긴장되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이 모든 감정들이 과대하게 부풀어 올랐던 그 시기의 격렬함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단 한번이면 충분한 걸까? 그런 시간들은.

















아, 정말 최고였다. 너무 좋아서 잠시 저자 문보영의 일기 구독 서비스를 신청할까도 해봤지만 지금은 신청 기간이 아니다. 남의 일기를 읽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줄 몰랐다. 사생활 염탐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모든 익숙한 사물들, 풍경들이 저자의 시선을 통과하면 그녀의 언어를 통해 전혀 낯선 신비로운 것들로 돌변한다. 새로울 것 없는 방의 구조도를 삐뚤빼뚤하게 그려서 그 방 안의 동선을 통해 한 편의 글을 써낼 수 있는 작가라니. 재기와 재치가 글마다 뿜어져 나온다. 대학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시인의 강의를 시작으로 그가 운영하는 종각에서의 시 수업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시를 배우며 등단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뜻 김연수의 <세상의 끝 여자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종각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시를 퇴고하고, 오는 길에 오십 번씩 읽었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결국 등단하게 된 그녀가 쓴 <일기시대>가 깊고 여러 층위를 가지게 된 연원을 짐작하게 해준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결국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면에서 숙성하는 것이 있고 그것은 마침내 무르익어 바깥으로 드러난다. 그녀의 이야기는 사적인데 시시콜콜하지 않고 무겁지 않은데 진지하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시선과 정제된 언어로 재편된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나는 너무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이 아닌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나 자신을 응원하고 싶다.-문보영 <일기시대>


아, 바로 이거였다. 나도 너무 사람이어서 너무 사람만 되려 해서 문제였던 거다. 그래서 내 플래너의 몇 주는 텅텅 비어버린 것이겠지. 이젠 사람이 아닌 곰탱이도 되고 나무늘보도 되고 돼지도 되면서 버티지 말고 그냥 즐겨야지. 


그래도 일기를 다시 쓰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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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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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배명훈, 편혜영, 장강명,김금희,박상혁, 김중혁, 일곱 명의 소설가가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쓴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어떤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그것도 이미 자기 세계가 뚜렷이 정립된 유명 작가들이라면 자칫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흐르기 쉬운데 저마다 자신의 색깔이 드러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매력과 설득력이 충만한 매력적인 단편집이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키워드에 천착한 흔적 대신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도착하는 곳에서 '즐거움'의 테마로 모여드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유희의 쾌락이 아닌 궁극의 본질적 즐거움을 어떻게 찾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김초엽의  글로버리는 궁극의 즐거움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설계자들은 그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하여 살인 사건을 가상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다. 자매 관계도 죽음도 허구다. 그런데 이 허구를 진짜로 오인할 때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집착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진짜 관계와 애정에 대한 갈망을 노출한다. 


편혜영의 <우리가 가는 곳>은 사라지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의뢰를 받은 여자의 동행이 의외의 경유지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반전 어린 얘기다. 우연히 목격한 농막과 그 농막이 세워지는 마을에서 받은 조건 없는 호의가 이 차갑고 절망적인 여자들의 인생에 끼치는 따사로움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길다. 편혜영 특유의 긴장감 어린 서사 구조의 결말이 이렇게 따뜻한 곳으로 향했던 적이 있는지 작가가 앞으로 갈 향방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작품이었다.


장강명의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는 언뜻 소설이라기보다는 장강명 작가 본인이 소설가로서 겪는 어려움과 그 탈출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처럼 읽혀서 흥미로웠다. 카이스트 교수가 개발한 소설기계처럼 글을 쓰게 하는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게 되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참,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를...


김금희 작가의 <첫눈으로>는 예능국의 막내 작가 소봄이 '맛집 알파고' 프로그램 제작을 둘러싼 회사의 요구와 개인의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그려져 있다. 김금희 작가 특유의 밝음과 어두움이 적절히 혼재한 일터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이 생생하다.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일터는 기능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를 완전히 죽여야 하는 거짓 페르소나로 일관해야 하는 생존의 전장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김중혁의 <춤추는 건 잊지 마>는 적절한 마침표처럼 읽힌다. 보더라인에서 근무하는 인물. 전기 철조망 근처에서 난민의 탈출을 감시해야 하는 그가 숲과 교감하며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집착하느라 정작 잃어버린 진짜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서 심오하다.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 영속적인 좋음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도정에 놓인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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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8-0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혹은 아는) 작가 풍년이네요. 이 한권으로 그 작가들 다 만날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저는 제일 먼저 장강명편을 읽을 것 같고, 그 다음에 김초엽, 그 다음에 김중혁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자 배구 져서 아쉬워서 알라딘 들어왔어요. 더워도 좋은 하루 되세요, 블랑카님!!!!

blanca 2021-08-09 08:2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입추를 기점으로 아침,저녁 바람결이 달라졌어요! 시원해져서 좋긴 한데 한 살 더 먹을 날이 가까워져 온다니 급 우울해지네요.